한국의 배우와 영화인들이 가장 자주 드나드는 장소를 꼽으라면 아마 <씨네21>이 다섯손가락, 적어도 열손가락 안에는 들 것이다. 한주에 평균 2명의 배우를 포함한 7,8명 안팎의 영화인이 사진을 찍으러 우리 회사를 방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씨네21>에서 사진을 찍기로 약속이 잡히면 배우들은 공포에 떤다고 한다.(‘공포’는 약간 과장이지만 어쨌든 그런 소문이 있다). 우리 스튜디오가 워낙 대단한 곳이기 때문이다.
스튜디오가 자리잡은 곳은 한겨레신문 2층 한구석, 윤전기 바로 옆이다. 근처라도 가본 사람이면 아실테지만, 1시간에 수만부의 신문을 찍어내는 윤전기는 가공할만한 굉음과 열기를 함께 토해낸다. 우리 스튜디오는 간이벽으로 이루어진 가건물이다. 얇은 칸막이를 가볍게 통과한 엄청난 기계음이 오후 4시경부터 밤늦게까지 스튜디오에 충만하다. 소음과 열기가 앙상블을 이룬 한여름엔 극기훈련장으로 써도 전혀 손색없다. 정말 대단한 곳이다.
이런 곳에서 사진도 찍고 인터뷰도 한다. 그러기 위해선 기자와 배우 모두에게 큰 목청, 선택적 청취능력, 밝은 성격이 필수적이다. 적어도 이 스튜디오를 거쳐간 한국의 배우들은 모두 그런 사람들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주로 배우들이 차지하는 표지 사진은 길게는 3시간 넘는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남다른 점 한가지가 또 있는데, 그건 스튜디오 한쪽 구석에 있는 1평 남짓한 탈의실 겸 분장실 겸 창고이다. 이곳에서 당대의 꽃미남 꽃미녀들이 무릎을 벽에 부딪혀가며 옷을 갈아입고 분장을 했다.
<씨네21> 창간 멤버들이 강력히 주장해 이 스튜디오가 ‘건립’됐을 때, 사람들은 “아, 이제 우리에게도 스튜디오가 생겼다”며 감동했다. 그리고 7년동안 이 곳에서 당대의 스타들의 이미지를 필름에 새겨왔다. 우리는 가학증 혹은 피학증 환자가 아니므로 이 일은 대단히 즐거우면서도 괴로운 일이었다. 한겨레신문은 원래 검소하니까,라고 이해를 해주시겠지,라고 속편하게 생각하는 것도 7년쯤 되니 낯짝이 없어진다.
그 괴로움을, 이제 덜게 됐다. 2월14일, 우리에게 새 스튜디오가 생긴 것이다. 옥상에 만들어진 새 스튜디오는, 적어도 우리 눈으로는, 궁전 같다.(실제로 꼭 그렇진 않다). 커튼을 젖히면 빛이 사방에 흘러넘치고 문을 나서면 옥상에 조성된 아늑한 정원이 (약간) 펼쳐진다. 첫손님으로 류승완 감독과 전도연씨가 왔다. 누구 못지 않게 옛 스튜디오 체험을 많이 한 전도연씨는 “아, 쾌적해”하며 춤을 췄다. 앞으로 <씨네21>에서 사진 찍게 될 배우들이 이젠 공포에 떨지 않을 수 있게 된 일이 무엇보다 기쁘다. 대단한 옛 스튜디오 시절 몇시간이고 의연한 몸짓과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던 배우들 감독들 스탭들에게 다시한번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