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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그 인력과 척력
2001-11-16

편집장

9일, 부산 시네마테크. 기다리던 영화는 자막과 함께 시작됐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는 15만명의 북한군 포로가 수용되었다. 이 영화는 한국전쟁으로 반세기 동안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 삶을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다.

1952년의 거제도. 북으로 보낼 포로와 남에 남기 원하는 포로를 가르는 송환심사가 진행되던 중 거기 반대하는 폭동이 일어나던 때, 포로들 사이에서도 남과 북의 전쟁이 치열하게 진행되던 곳으로 가기 위해 영화는 스릴러의 호흡과 속도를 취한다. 스릴러라는 장르에 대한 매혹을 감독은 여러 차례 밝혔지만, 그때의 일에 무심한 오늘의 관객을 거제도로 유인하기 위한 작전 또는 배려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념과 인간에 환멸을 느낀 장용학의 누혜가 자살을 택한 곳도, 남도 북도 아닌 제3국을 택한 최인훈의 명준이 갇혀 있던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4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고, 세기가 바뀌었다. <흑수선>의 주인공들은 우선 살아남았다.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 삶’이라는 단서가 처음부터 제시됐듯이. 최인훈은 오래 전 어느 인터뷰에선가 지금 같으면 죽이지 않았을 거라고 말한 바 있지만, 어쨌든 이명준은 소설이 태어나던 그 시대의 공기 속에서 살아갈 힘을 발견하지 못했었다. 살아남았건, 살아남지 못했건 손지혜와 황석은 이명준과 비슷하게 탈이념의 길을 간다. 50년 복역기록을 ‘세운’ 장기수 황석이 전향각서를 쓰지 않는 것도, 손지혜가 자신을 희생하는 것도 모두 사랑 때문이다. 다시 다른 점으로 돌아가기. 명준은 처참한, 아니면 치열한 시대상황과 싸움 끝에 제3의 길을 택한다. <흑수선>은 그러한 시대의 개입을 어느 순간 배제한다. 사랑이라는 소재가 주인공들처럼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이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일까. 그런데 그 역사의 내장이 제거되면서, 사랑도 함께 박제될 위험에 처한다. 탈역사의 시대(라고 생각되는 시대)와 역사의 인력과 척력, 그 사이에서 영화가 살아남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