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편집장이독자에게
[편집장이 독자에게] 즐거운 밀레니엄 소동
2000-01-04

1982년 내가 신문기자가 되겠다고 했을 때 대학교수인 한 어른은 “앞으로 10년 안에 신문이 없어지고 방송만 남을 텐데 왜 신문사에 들어가려느냐”고 했다. 기자가 된 뒤엔 한때 “전자신문이 등장하면 장차 종이신문은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므로 실직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90년대 들어 PC가 대중보급되고 모든 직장이 곧 재택근무체제로 이행할 것처럼 이야기할 때, 출퇴근을 즐기는 편인 나는 벌써부터 서운해졌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한 사람의 인생을 여러 차례의 기술혁명들이 가로지르고 기술진보가 교과서에서 배워 익힐 수 있는 수준을 훌쩍 추월해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엔 미래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큰 만큼 성급하고 과격한 예언들이 남발하고 또 금세 부인되곤 한다. ‘공식적으로’ 틀린 예언들은 이것들만이 아니다. 20세기 안에 석유자원이 고갈되리라는 예고도 틀렸고, 공황에 의한 자본주의 자멸설도 어긋났다. 컴퓨터 한대가 커다란 학교 교실만했던 1940년대엔 어느 누구도 그 교실이 노트만해질 것이라고 상상하지 않았고, 심지어 70년대까지만 해도 컴퓨터회사에서조차 집집마다 컴퓨터를 갖게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감히 생각하지 못했다. 핸드폰은 또 어떤가. 참으로 대단한 기술혁명시대다.

대망의 2000년은 Y2K 밀레니엄버그의 공포 속에 밝았다. Y2K 소동은 새로운 천년의 상징처럼 보인다. 에코가 ‘새로운 중세’라고 표현했던 기술혁명시대, 그 문명의 은총과 어리석음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고나 할까. Y2K이벤트 정도를 빼면, 사실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바뀌는 무렵이라 해서 부쩍 미래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용솟음칠 필요는 없다. 사회문화적인 변화의 경계로 따질 때 21세기는 공산권이 붕괴되고 생명복제기술이 출현하고 인터넷이 등장한 1989년부터로 구획지어야 한다는 자크 아탈리의 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무의미한 연도를 기념해 각종 미래학들이 창궐하는 현상이 모처럼 사회적 브레인스토밍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 같아 재미있다. 그것은 거의 전적으로, 뉴스가 없으면 만들어내는 매스컴(<씨네21>을 포함해서)의 공작 탓이긴 하지만 말이다.

예수재림이나 천년지복설과 같은 예정된 역사를 믿었던 사람들에게나, 봉건왕조와 농경사회처럼 수천수만년 동안 본질적으로 변화가 없는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미래란 아주 단순명쾌한 것이었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란 아주 현대적인 특징이다. 어찌보면 미래에 대해 기대하고 불안해할 수 있는 건 중세적 억압과 미몽에서 벗어난 현대인들의 특권이기도 하다. 시간이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열려 있다는 건 매력적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