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떤 고등학생이 중퇴를 하고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냐는 상담을 청해왔다. 이미 카메라를 샀다고 했다. 내 대답은, 이왕 학교 나와버린 건 하는 수 없고 검정고시를 봐서 대학 영화과나 영상원에 들어가라는 것이었다. 혹시, 이 학생이 정규교육 따위를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천재일까. 또는 정규교육이 예술적 상상력과 창의성을 갉아먹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떠나는 것이 나았던 건 아닐까. 그렇다고 해도 하는 수 없다. 현실은 빤히 눈에 보이는 거니까. 지금 충무로에서 활동하는 젊은 세대 영화감독들은 거의 모두 대학을 나왔거나 일단 대학을 들어가기는 한 사람들이다. 오직 김기덕 감독 한 사람이 예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1/100의 예를 따르도록 충고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한국은 완고한 학력계급사회다. 예술쪽은 예외를 허용할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 가령 프랑스 50, 60년대의 누벨바그가 전형적인 지식인 감독들의 작품이었다면, 80년대 이후 프랑스영화의 새 물결은 전적으로 고교 중퇴생들의 작품이다. 레오스 카락스, 뤽 베송, 마티유 카소비츠는 모두 16∼17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20대에 데뷔작을 찍었다. 누벨바그가 엘리트주의 모더니스트들의 예술운동이었다면, 누벨이마주는 사회적 부적응의 예술적 승화라고 할까. 사고방식과 작품스타일로 치면, 지성인 감독 대 양아치 감독 구도다. 이들 ‘양아치 감독’들이 주류를 침범할 수 있는 건, 분명 프랑스 문화의 폭과 두께를 말해주는 것이다. 좀 다르기는 하지만, 마틴 스콜세지, 프랜시스 코폴라, 조지 루카스, 스티븐 스필버그 등 70년대 이래 미국영화에 새로운 공기를 불어넣은 이른바 영화광 1세대 감독군이 모두 뉴욕대나 UCLA 등 대학에서 영화적 야심을 키웠다면, 미국영화의 90년대 아이콘 쿠엔틴 타란티노가 “나는 영화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비디오숍에서 배웠다”고 선언한 건 확실히 좀 도발적이었다.
학교교육은 융통성 없기로 유명하지만 그 교육의 효력은 막강하기로 유명한 데가 한국이다. 한데 요즘 정보통신산업 폭발과 벤처기업 붐은 뜻하지 않게 학력사회의 틀을 흔들고 있다. 가령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처럼 대학을 중퇴하고 일약 컴퓨터업계의 신화가 된 이들도 있거니와, 바야흐로 한국에서도 일찌감치 사회로 진출하는 컴퓨터 영재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을 보면서, 전문적인 기능과 비즈니스 경쟁력만 챙기면 학교는 필요없다는 것인가하는 의구심이 고개를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학력보다 재능이 평가받고 경력만큼 적성을 중요시하는 건, 우리 환경에서는 파격이자 진일보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