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먼 옛날, 교직을 천직으로 알던 아버지가 학교를 떠났다. 아들이 무슨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권고사직을 당한 것이다. 체력은 국력이랬건만. 아버지는 소질과 무관하게 건축업에 입문한다. 살던 집을 고쳐서 부가가치를 높인 다음, 그 집을 판 뒤 다시 땅을 사서 새 집을 짓고 다시 팔고, 또 짓고 하는 것이 영세한 사업의 내용이었다. 그로부터 아주 먼 뒷날, 자식 하나가 이제는 볼 수 없는 아버지 대신 집들이라도 보고 싶어서 그 동네를 찾아갔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다. 사라졌거나, 혹시 남아 있더라도 지도가 바뀌어버렸다. 그것이 어디 그 특정 도시의 사정이더냐. 개발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부산국제영화제가 처음 시작되던 해, 영화제도 영화제지만 남포동 주변 거리는 경이로웠다. 그렇게 얽히고 설킨 골목들, 신식 상가 뒤쪽을 조금만 발로 헤치면 다가오는 나이 먹은 건물들. 갈비 굽는 냄새와 재첩국 냄새를 옷에 묻히며 거리를 걷는 일이 즐거웠다. 한국전쟁의 포화가 미치지 않았으니 세월이 전반적으로 지워진 이 나라에서 이만큼이라도 시간이 머물 수 있었던 게지. 연륜 예찬을 늘어놓다가, 사는 우리는 얼마나 불편한지 아느냐고 부산시민의 핀잔을 먹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반성을 할 줄 모르고, 그 불편한 거리들을 사랑하고야 만다. 전어회 한두어 접시도 부산국제영화제의 기억에 반드시 끼어 있다.
은빛 비늘의 이 작은 생선은 생선이라고 부르기에도 어딘가 안쓰러울 만큼 자그마하다. 뼈채 얇게, 쏭쏭 썰어내는 이 전어회를 올 부산영화제 때는 만나기 어려울 거라고 백은하 기자는 말한다. 전어는 가을이 제철이란다. 백은하 기자는 부산에서 나서 자랐다.
올해는 부산영화제가 시작된 이래 가장 추운 영화제가 될 것 같다. 지난해에도 그랬지만, 부산의 명물로 꼽히는 수영만의 야외상영프로그램도 건너뛸 수밖에 없다. 추석대목에는 극장을 잡을 수 없어서 추석 4주 뒤에야 영화제를 열기로 해놓았기 때문이다. 아마 부산은 전세계에서 개최시기가 가장 유동적인 영화제일 거다. 확정된 것이 좋다는 구획주의자는 아니지만, 부산에는 언제 가면 된다고 캘린더에 적어넣을 수 있는 게 낫지 않을까. 도시 특성상 바닷바람이 미워지기 전, 해변에서 별도 보고, 영화도 볼 수 있을 때, 전어가 한창일 때 열리는 편에 나는 손을 들고 싶다. 부산시가 내년쯤 용역을 주어서 그 문제를 검토할 계획이라고는 하는데, 부산국제영화제가 전용극장을 갖게 되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영화제의 근거지는 남포동을 떠나게 될 텐데, 그 그리운 골목들을 어떻게 하나. 성급하고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