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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의 시네마 디스패치] 지역과 여행 섹션: 완벽한 애틀랜타의 하루

영화가 우리를 가끔 어딘가로 이끄는 도구라면, 잡지는 종종 그 도구를 통해 어딘가로 소환된 사람들의 흔적이다. 두 번째 취재를 위해 어디든 가야 했지만 아무 곳도 갈 수 없었다. 마감까지 주어진 시간은 기사를 송고한 후부터 20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기한 안에 무엇이든 써내야만 한다는 사실은 인간을 집 안에만 처박히게 만든다. 지역과 여행 기사에서 중요한 것은 더이상 정보가 아니다. 물론 해외여행이 신기했던 때만 해도 누군가의 여행기와 유학 성공기를 텍스트로 읽으며 다른 지역에 대한 정보를 얻고 선망을 키워왔겠지만, 정작 내가 그곳에 도달했을 때 대부분의 여행기나 유학 성공기는 8할이 거짓임을 깨달았다. 이제는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새로운 지역, 아무도 가보지 못한 여행에 대한 정보는 유튜브에 널려 있다. 사람들은 이제 더 큰 진실을 위해 실시간으로 집 안에서 수많은 여행기(영화도 마찬가지다)를 다시 보고, 돌려 보고, 멈춰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행과 영화에 진실이 그렇게 중요한가. 그렇다. 나는 거짓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서재에 꽂혀 있는 한권의 잡지를 꺼내기로 한 것이다. 음, 사실 잡지라기보다는 진(zine)에 가깝고, 정확하게는 영화 제작사 A24에서 한국에 소개해 달라며 보내준 잡지다. A24는 종종 영화를 만든 후에 감독에게 편집장을 맡겨 진(zine)을 제작한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감독은 ‘택스 시즌’(tax season)을 주제로, <더 웨일>의 감독은 배우 ‘브렌던 프레이저’를 주제로 만들었다. 내가 선물받은 잡지는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이 ‘패밀리 비즈니스’(Family Business)를 주제로 만든 잡지였다. ‘패밀리 비즈니스’는 고모가 항상 내게 하던 말이다. “라이언, 이 세상에서 믿을 건 가족뿐이야. 뭐든 사업은 가족이 함께여야 한다는 소리야. 우리가 똘똘 뭉쳐 헤쳐나가면 뭐든 이루지 않겠어?”

패밀리 비즈니스

애틀랜타는 모든 것이 평탄한 도시다. 마틴 루서 킹 주니어의 발상지이자, 남부의 할리우드. 언제나 쨍쨍한 햇볕이 내리쬐는 동네의 사람들과 조금은 촌스러운 패션. 독실한 한인교회 신자들. 놀러 갈 만한 곳이라고는 월드 오브 코카콜라뿐인 곳. 이게 내 기억 속 애틀랜타의 한때다. 그곳에서 고모는 이민이라는 풍랑 속에서도 등대처럼 빛나던 사람이었다. 고모는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이었다. 고모부는 경제부 기자였는데 미국 시민권을 받기 위해 2년간 닭 머리를 치는 공장을 다녔다. 그러고 나선 벌이를 위해 트럭 운전사를 했다. 그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진 예수라고 여겼지만 매번 사고를 쳤고 제대로 된 벌이를 하는 건 고모뿐이었다. 심지어 고모부는 자신의 꿈을 이루겠다며 미시시피에서 개척 교회를 열었다가 1년도 안돼 쫄딱 망했다. 이유는 고모부가 단 한번도 새벽 예배 시간에 일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고모부는 교회가 망한 이유를 신자들의 믿음이 부족해서라고 믿고 있다. 고모는 모세처럼 가족을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애틀랜타로 향했고 그 시기에 내가 등장한다.

고모 가족과 함께 살 때 일종의 카메라가 된 느낌이었다. 고모는 항상 바빴고, 고모부는 매우 독실했으며, 사촌들은 혼란스러웠고, 미국에서 태어난 막둥이는 여유로웠다. 고모는 불리할 때는 한국인이었지만 유리할 때는 미국인이었다. 백인 친구를 집에 데려오는 날에는 고모 가족은 근엄한 미국 전통 가정처럼 행동했다. 흑인이나 중국인인 경우에는 아는 척도 안 했다. 에이든과 엘렌은 불리하면 한국에 가겠다고 소리쳤지만 진짜 한국에 가고 싶은 마음은 단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러면서도 한인타운에서만 놀았다. 완전한 미국인인 조셉과 완전한 한국인인 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 낄낄댔다. 아마 조셉은 나이가 어려서 모든 것을 이해하지는 못했겠지만.

그들의 활동을 모두 두눈에 담으며 커왔지만, 자랄수록 명확해진 것은 나는 그들이 될 수 없었다는 진실이었다. 나는 이민 1세대처럼 치열하게 살지도 않고 1.5세대만큼 혼란스럽지도 않았으며 2세대만큼 당당하지도 않았다. 그들과 나는 정확하게 미국과 한국으로 나뉘어 있었다. 고모도,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인이 된 에이든과 엘렌도, 미국에서 태어나 원래부터 미국인인 조셉도 고민이 있을 때마다 내게 털어놓았는데 정작 들어보면 별 고민은 아니었고 여정의 시작부터 끝까지 남느냐 떠나느냐 그것이 문제였던 나의 고민은 아무도 해결해주지 못했다. 결국 학교 문제로 떠난다고 했을 때 고모는 나를 붙잡고 뉴욕에 가지 말고 이곳에 있는 학교에 다니라고 했다. 가족은 떨어지면 안되는 거라고. 믿을 수 있는 건 가족뿐이라고. 그때 고모의 말을 들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결국 나의 선택은 배우가 아닌 카메라로 남는 것이었다. 이 선택으로 여전히 국적에 관해서라면 나는 마치 고아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아침부터 영화관에서 <미나리>를 보고 질질 짜다 웃다 고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결에 전화를 받은 고모와 삶이 벅찰 때마다 함께 오랫동안 걸었던 날들과 그때 나눈 대화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 홍대 거리는 너무 밝았고 고모와 본 지도 너무 오래되어 그냥 가족 모두가 함께 떠난 플로리다에서 우리가 잡은 물고기를 고모부가 제대로 보관하지 않고 대충 트렁크에 방치했다가 모두 썩어버렸고 그래서 돌아오는 내내 차에서는 썩은 내가 진동했고, 경찰이 검문하다 악취 때문에 연쇄살인마 가족인가 싶어서 심각한 내부 수색을 당한 건에 관해 이야기하며 웃었다.

언제나 주님께서 너와 함께할 거란다. 라이언.

고모, 저는 종교를 믿지 않는데요.

아멘이다 아멘이야.

모두에게 안부 전해주세요.

아멘이라고 해야 전해줄 거야.

아멘.

기억으로부터

기사를 보내고 나서 이 여행기가 진실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 생각했다. 종종 나는 다녀온 곳들을 그대로 묘사하지 않기 위해 애쓴다. 그렇다고 없었던 것을 거짓으로 쓴다는 소리는 아니다.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의 목적은 언제나 구현이 아닌 재현이기 때문에. 물론 이 글에는 내 삶의 중요한 요소들이 담겨 있고, <미나리>를 볼 때마다 국경과 시간을 넘어 유년기의 어딘가로 소환되지만, 그것은 분명 실제는 아닐 것이다. 심지어 내가 진실이라고 믿고 쓴 기억 역시 거대한 착각일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여전히 어떤 기억은 계속해서 회상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회상을 통해 누군가는 또 언젠가의 하루를 회상한다는 것이다. 그 하루는 종종 변질되고 때론 윤색된 채로 소환되지만 그건 마치 희미하고 흐릿한 영화처럼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참고 및 인용

-<씨네21>, 정이삭 감독 인터뷰, ‘<미나리>는 보편적인 모든 인간들을 위한 영화다’

-<미나리> 각본집(정이삭, A24)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리처드 브라우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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