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서 매번 각색의 어려움에 대해서만 이야기한 것 같은데, 한번쯤은 반대로 영상 매체로 각색되었으면 희망하는 작품들을 한번 추천해보고 싶다. 읽는 것만으로 머릿속이 시각적인 이미지로 충만해지고 스크린에 실물로 형상화된 모습을 꼭 두눈으로 마주하고 싶어지는 소설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듀나의 <대리전>이다. 지구인의 몸에 원격 통신으로 접속한 외계 관광객들이 ‘부천’에 모여 온 우주의 운명을 건 전쟁을 벌이는 이야기로, 한국 SF가 한국이라는 무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작품인 것 같다.
지금에야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한때는 한국을 배경으로 SF를 쓰는 일이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은 한국인이 아닌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거나, 한국인이 주인공이더라도 한국이 아닌 다른 국가나 우주, 먼 미래를 배경으로 소설을 썼다. 어쩌다 현대 한국을 배경으로 할 경우에도 과학자 주인공이 연구실을 벗어나지 않는 식으로 일상과의 분리를 꾀했다. 연구실 밖이 무대일 때는 당대의 한국과는 조금 다른 역사를 지닌 세계이거나 특수한 정치 체제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반면, <대리전>은 이들과는 정반대의 전략을 취한다. 토속적인 디테일을 최대한 빼곡하게 채워나가는 것. <대리전>은 부천의 실존하는 지명과 지형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어색함을 지우고 현실감을 더한다. 우리의 주인공이 위협적인 우주 관광객들을 상대로 추격전을 벌이는 동안 독자의 눈앞에는 무나키샬레 아이스크림 가게, 상동역, 부천시청, 홈플러스 같은 부천의 익숙한 풍경들이 휙휙 지나가는 것이다. <오늘의 SF #1>에 게재된 전혜진 작가의 에세이를 보면 소설 속 장소들을 실제로 걸어볼 수도 있는 모양이다. 등장인물 역시 유사한 방식으로 채워졌다. 외계인의 정신을 자신의 몸에 받아들이는 일명 ‘숙주’들은 전철역 인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숙자들과 노인들이고, 특수 요원처럼 부천 곳곳에 암약하며 회사의 문제를 처리하는 ‘해결사들’은 자외선 차단 모자를 쓴 중년 여성들이다. 한명 한명의 캐릭터가 살아 있어서 정말 부천에 그런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만 같다. 이들의 몸에 외계인이 빙의해 삼정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무기로 개조된 손전등과 지구방위대 광선총 장난감을 쏘아대는 풍경을 상상해보시라. 이토록 독창적이면서도 묘하게 실재감이 드는 장면이 또 있을까. 게다가 이 세련된 이야기는 거의 20년이 흐른 지금 읽어도 여전히 유효한 미스터리 구조와 메시지들을 담고 있다. 시대를 앞섰다고 해야 할지, 세상의 발전이 더디다고 해야 할지.
사실 <대리전>은 이미 한번 영상화된 적이 있다. 2012년 독립영화단체 브루털라이스 프로덕션에서 단편영화로 제작되었는데, 어째선지 현재는 유튜브에서 영상이 비공개로 돌려진 상태다.
조금 다른 이유로, 임태운의 <화이트블러드>의 영상화도 꼭 이루어지면 좋겠다. 이 작품은 유전자 개조된 초인들이 미래 병기를 난사하며 초광속 우주선에 창궐한 좀비 사태에 맞서 싸우는 액션 활극으로, 비디오게임을 연상시키는 시원시원한 질주감이 매력적인 소설이다. 임태운은 소설이야말로 가장 시각적인 매체라 주장하고 싶은 듯 예산과 촬영의 제약에서 벗어나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장면을 글로 담아내 보인다. 그는 매체간 장벽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SF 작가 중 하나다.
이 소설의 영상화를 기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만약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 수 있다면 한국영화계가 앞으로 그 어떤 장면도 영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증명이 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화이트블러드>에는 우주복을 입은 좀비들에게 점령된 초광속 우주선은 물론 인류 최후의 도시, 궤도 엘리베이터, 테라포밍, 인공지능, 냉동 수면, 홀로그램, 유전자 개조, 강화복, 단분자 블레이드와 레일건, 무중력 스케이트, 초인들의 화려하고도 처절한 전투 액션까지 온갖 아이디어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그야말로 SF 블록버스터의 흥행 요소를 집약해놓은 총체 같은 이야기.
마지막으로는 정말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김보영의 <얼마나 닮았는가>를 살짝 언급해보고 싶다. 솔직히 말해 이 소설은 적어도 내 상상력의 범위 내에서는 영원히 영상화가 불가능할 것 같다. 이유는 죄송하지만 알려드릴 수 없다. 언급하는 것만으로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이다. 살짝만 힌트를 드리자면 작품 자체에는 아무런 각색의 장벽이 없다.
단지 인간이 너무 한심하고 편협한 동물이어서 그렇다. 이 소설이 영화로 개봉되는 날이 온다면, 아마도 그건 우리가 지금보다 월등히 훌륭한 존재로 성장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혹은 연출자가 정말로 천재이거나.
혹여 관심이 생기셨다면, 혹은 도전 정신에 불타고 계시다면 <얼마나 닮았는가>를 꼭 한번 읽어보시길. 왜냐하면 정말 좋은 소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