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대중교통을 떠올리면 기억나는 사람들이 있다. 전철에는 흘러간 노래의 모창 CD나 온몸으로 매달려도 끊어지지 않는 허리띠, 손전등이 합쳐진 귀이개와 같이 잡다한 물건들을 파는 행상이 있었다. 고속버스에는 휴게소에 정차하면 험상궂은 사람들이 올라와 재빨리 경품을 추첨하고 행운(?)의 당첨자에게 제세공과금이라며 물건을 강매했다.
시내버스에는 “목마른 사슴이 우물을 찾듯~” 구성지게 사연을 읊으며 도움을 청하던 청소년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삐뚤빼뚤 손으로 쓴 자신의 절절한 사정이 적힌 쪽지를 앉은 승객의 무릎 위마다 올려놓던 손은 곤궁함으로 거칠었다. 돌아보면 그 종이 위의 삶은 한없이 불행했다.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적 부모를 잃고 혈혈단신 도시로 올라와 배운 것 없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는 올리버 트위스트 같은 이야기는 소설과 닮았지만 실재했기에 더욱 고단해 보였다. 화불단행(禍不單行), 화는 홀로 오지 않는다는 말처럼 남들에겐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관계와 자산이 그 어느 것도 허용되지 않을 때의 절망감은 상상조차 힘들다.
그런 극적인 불행이 아닐지라도 일상은 언제나 위태하다. 최근 고열로 며칠을 앓았다. 원인 모를 열병은 몸 안의 기력을 짜내어 비 오듯 흘리는 땀과 무뎌지는 감각의 무기력을 생산했다. 잔뜩 쌓인 과제와 의무들도 에너지가 전제되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하루를 보내는 것조차 이렇게 어려운 일임을 느끼며 어느새 다른 이의 어려움에 눈이 열림을 느낀다. 나의 어려움을 통해 타인의 사정을 돌보는 계기가 만들어진다면 번거로운 열병 또한 또 다른 스승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고 보면 세상의 어려움은 전방위로 펼쳐지고 있다. 사회의 얼개가 바뀌며 기존의 역할이 대행되거나 축소되어지며 영문도 모른 채 직업을 잃는 분들이 생기고 있다. 전세계적인 협력이 이루어지며 지역의 제한된 경쟁력이 더이상 가치를 갖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 것도 벌써 꽤 오래전부터다. 이렇듯 그간 무탈히 잘 지내온 분들마저 어떤 위험이 닥칠지 알 수 없는 변화가 무쌍한 세상이 오고 있다.
연결되어지고 현명해지고 자동화되어지는 세상은 인류에게는 효율을 선사하지만 나에게는 빠른 적응을 요구하고 있다. 도태되고 싶지 않다면 새로운 것을 배우라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미디어의 리포트와 화려한 성공의 사례들로 가득 찬 동영상을 보다보면 불안감을 느끼고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에 휩싸인다. 챌린지에서 루틴, 꿀팁으로 무장한 철두철미한 자기 관리의 일정표는, 어릴 적 방학이 시작되면 동그란 피자의 한 조각을 잘게 쪼개 만들었던 생활계획표보다 촘촘히 새롭게 만들어진다. 새해를 맞는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지켜내리라 다짐하면서 말이다. 다시 하는 각오가 소중한 것은 어쩌면 성취를 탐하기 때문이 아닐 수 있다. 것보다 열병 속 얻은 무기력이 또다시 나를 침습하지 않기를 바라서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