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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의 오늘은 SF] 마침내 빽 투 더 퓨쳐2

두 영화를 연달아 보면 누구나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고, 실제로 두 영화를 비교한 글도 이곳저곳에 이미 많이 올라와 있겠지만, 나는 <헤어질 결심>과 <현기증>이 닮은 점이 많은 영화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언급하면서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다. <현기증>은 널리 걸작으로 평가받는 1958년작 미국영화로 형사 역할을 하는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을 몰래 감시하다가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는 내용을 다룬다. 여기까지만 해도 바로 보이듯이 <현기증>과 <헤어질 결심>은 이야기의 기본 구도가 같다. 관객이 비교적 그 심경을 쉽게 알 수 있는 남자주인공이 수수께끼가 많은 여자주인공의 진실을 서서히 파헤쳐나간다는 줄거리 흐름도 같다. 이야기 중반에 남녀주인공이 못 만나게 되는 전환점이 있다는 점도 같고, 하다 못해 범죄영화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으면서도 동시에 뛰어난 개성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유명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는 점도 일치한다.

그외에도 <헤어질 결심>과 <현기증> 사이에는 자잘한 닮은 점이 많다. 남자주인공 곁에 현실적인 성격의 여성 조연이 있다는 점도 닮았고, 높은 곳에서 추락하는 사건을 중요하게 활용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숲속 풍경과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 풍경을 멋지게 담아낸 장면을 잘 활용한다는 점도 닮았다고 할 수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비슷한 모습의 남자주인공에 비해 여자주인공은 화려하고 강인한 모습과 그에 비해 현실감 있고 소박한 모습, 두 가지 서로 다른 모습을 드러낼 기회가 있다는 점도 두 영화의 비슷한 점이다. 무엇보다, 수수께끼가 풀어지고 복잡한 이야기 속에서 비밀이 밝혀지는 가운데 정상적인 관계에서는 쉽게 보여줄 수 없는 복잡하고 이상한 남녀간의 감정을 강하게 펼쳐놓는다는 중심 소재가 동일하다.

그런데 영화를 볼수록 나는 두 영화의 닮은 점보다는 서로 다른 점을 견주어보고 싶어졌다. 예를 들어, 앨프리드 히치콕이 연출한 <현기증>은 수수께끼가 괴상하게 꼬여 있는 대신 그 풀이는 명쾌하고 감정이 강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박찬욱이 연출한 <헤어질 결심>은 수수께끼는 조금 더 단순한 편이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과 그 수수께끼를 둘러싼 여러 상황과 사건의 표현이 오밀조밀 장식이 많고 살펴볼 거리가 많다. 이런 생각도 들었다. <현기증>은 처음 볼 때보다도 여러 번 볼수록 더 다양한 감상으로 점점 깊은 감상을 느낄 수 있는 영화인 데 비해 <헤어질 결심> 역시 여러 번 보는 재미가 있으나, 이 영화는 맨 처음 보았을 때의 감상이 가장 깊은 느낌을 주는 것 같다.

닮아 있는 두 영화를 비교해보다가, 마침내 나는 두 영화에 표현되어 있는 기술의 차이도 눈여겨보게 되었다. 바로 여기서 두 영화에 관한 이야기가 SF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현기증>에서 기술 요소가 드러나는 장면이라고 하면, 남녀주인공이 자동차를 이용해 느릿느릿한 추격 장면을 벌이는 것 정도다. 과학기술의 범위를 좀더 넓게 생각하면, 1950년대 미국에서 급격히 성장한 정신과 의학에 대한 관심이 드러나 있다는 것 정도는 덧붙여볼 수 있겠다. <현기증>은 고소공포증, 현기증 같은 소재를 아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현기증>으로부터 64년 뒤에 나온 <헤어질 결심>은 첨단 기술 제품을 중요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보기에 그렇게까지 대단한 기술은 아니다. 그러나 휴대전화라는 소형 디지털 단말기를 이용해서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장면은 영화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중요한 소재로 활용되었다는 점을 짚어볼 만하다. 스마트 워치를 이용해 생각을 녹음하는 장면은 고전 누아르영화 주인공의 독백을 21세기판으로 되살려 연출할 수 있는 방편이 되기도 했다. 스마트폰은 휴대전화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전화 주인의 행동이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기능도 갖고 있는 컴퓨터라는 사실은 영화의 전환점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현기증>에 비해 <헤어질 결심>은 초소형 반도체와 21세기 IT 기기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차이점이 선명하게 보이는 영화다. 모든 사람이 고성능 컴퓨터를 들고 다니며 그 기계를 이용해 일상생활과 의사소통을 하는 21세기 사회를 배경으로 할 때 가능해지는 추리극이 <헤어질 결심>이라는 이야기다. 나는 아마도 히치콕 감독이 생전에 <헤어질 결심>을 보았다면, 이 영화를 영락없는 SF물이라고 이야기했을 거라고 본다.

기술 문명이 빠르게 발전하는 사이, 우리는 어느새 전 세대의 사람들이 SF 소재라고 생각하던 세상을 현실로 느끼는 시대에서 살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런 기술과 문화의 발전에 초점을 맞춰 옛날 영화, 옛날 SF영화를 본다면 색다른 재미를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1980년대 후반에 나온 <빽 투 더 퓨쳐2>는 이런 관점에서 보는 재미가 있다는 사실이 자주 언급된 영화다. <빽 투 더 퓨쳐2>는 영화 개봉 당시인 1980년대에서 주인공이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후의 미래로 가서 기술이 발달한 SF 도시를 모험하는 이야기다. 지금 우리에게 각별히 기이한 점은 바로 그 미래라는 시간 감각이다. 영화에서 미래라고 나오는 시대는 2015년이다. 그러므로 2022년을 사는 현실의 우리 입장에서 보면 영화 속 미래가 오히려 7년 전의 과거다. 그래서 <빽 투 더 퓨쳐2> 속에서 펼쳐진 미래 장면 하나하나가 지금 보면 따져보고 분석하는 재미를 줄 수 있다. 영화에 나오는, 자동으로 몸에 맞춰지는 옷이라든가, 저절로 확대되는 즉석 피자 같은 제품은 2022년의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에, 영화 속에 나오는 화상회의와 재택근무 장면은 오히려 지금이 영화 속의 상상에 비해 훨씬 더 발전되어 있다. 그렇다면 어떤 기술은 왜 예상보다 더 발전하지 못했고, 어떤 기술은 예상 이상으로 빠르게 발전해 퍼져나갔는가를 따져보는 일은 우리가 누리는 문명을 돌아보기 좋은 기회가 된다. 나는 이렇게 옛 SF영화를 살펴보는 재미가 <헤어질 결심>과 <현기증>을 견주어보는 감동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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