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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찬 감독 인터뷰
2001-07-31

“정말 무서운 건 귀신이 아니라 인간관계”

+ <소름>은 미국 유학 시절 만든 단편 <메멘토>가 출발점이다. 두 영화, <메멘토>와 <소름>을 낳은 이야기의 배경이 궁금하다.

= <메멘토>는 70년대 LA의 빈민가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야기는 이렇다. 이민온 지 얼마 안 된 젊은 한국인 부부가 갓난아이와 함께 빈민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흑인이 아파트 수위로 일하고 있었는데 며칠간 이들 부부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애우는 소리만 들렸다. 걱정이 된 수위가 문을 따고 들어가보니까 부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며칠간 굶주린 애가 울음을 그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아사 직전인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 살린 뒤 자기 자식으로 여기며 살았다. 후일 교민사회에 이런 사실이 알려졌고 TV다큐멘터리로도 방영됐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가 흑인 수위의 자식이 되는 것은 운명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부모의 무책임이 초래한 결과일까? <메멘토>나 <소름>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됐다.

+ 개인적이며 모던한 느낌의 <메멘토>와 달리 <소름>은 훨씬 어둡고 사회비판적이다. 전혀 공포물이 아닌 <메멘토>와 달리 공포영화라는 점도 다르다.

= <메멘토>에 대해 스스로 비판한 것은 지나치게 현학적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다 IMF사태가 터진 뒤 한국에 돌아왔는데 한국사회 자체가 굉장히 불안하고 어수선했다. 과거엔 뭔가 타도할 대상이라도 있고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젠 그런 논리조차 먹히지 않는 사회가 된 거 같았다. 완전히 단절된 사회라는 느낌이 들었고 4년간 밖에 있었을 뿐인데 그런 한국사회가 무섭고 끔찍했다. <소름>에 그런 기운을 담아보고 싶었다. 귀신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공포, 그게 소름끼쳐서 <소름>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 익숙한 공포영화를 연상한 관객에겐 난해하게 다가갈 수도 있다. 뭔가 새로운 영화를 찍고 싶었다고 했는데 <소름>은 어떤 면에서 새롭다고 생각했나.

= 일단 이야기가 단선구조가 아니다. 풀어놓으면 단순한 이야기이지만 어떤 안내자가 등장해 자세히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관객이 스스로 찾아가는 구조를 택했고 관객이 해석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뒀다. 추리영화의 탐정 같은 등장인물을 만들면 아주 쉽게 설명될 수도 있겠지만 약간 답답하고 고지식하더라도 안내자 없이 끌고가야 영화적 무게가 산다고 판단했다.

+ 운명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정말 영화 속 아파트에는 죽은 여인의 귀신이 있는 것인가.

= 이것은 운명일까, 우연일까? 귀신은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내가 단언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마지막 장면에 주인공이 보고 있는 것이 귀신인지, 그저 강박관념으로 인해 헛것을 보고 있는지, 나도 궁금하다.

▶ 소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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