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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섞여들지 않는 눈빛, 안젤리나 졸리
김현정 2000-01-04

아웃사이더의 표지를 타고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결코 세상에 섞여들 것 같지 않은, 희망 같은 것은 존재한 적도 없다는 듯한 눈빛을 한 채 세상에서 떨어져 있다. 안젤리나 졸리(24)도 그런 부류이다. 어깨와 팔에 새긴 문신도, 나이프를 수집하는 취미도 그녀를 크리스털 그릇처럼 마냥 예쁘기만 한 여배우들과 구분짓는다. 비슷하게 삐딱한 이미지를 가진 <트레인스포팅>의 ‘식보이’ 자니 리 밀러와의 결혼식에서도 졸리는 자신의 피로 밀러의 이름을 휘갈긴 흰 셔츠를 입고 서로의 피를 교환하는 파괴적인 의식을 치렀다. 그러나 그처럼 요란한 행동이 아니더라도 졸리는 질서에 젖은 사람들이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는 배우가 아니다. 쉴새없이 요동치는 감정과 수그러들지 않는 오만함으로 무장한 채 자신의 이미지 그대로 험한 역들을 거쳤다. <미드나잇 카우보이>에 출연한 배우 존 보이트의 딸로 평가받고 싶지 않아 성을 버리고 나타난 그녀는 영화 속에서도 마치 홀로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근원도 목적도 없어 보이는 무국적자의 풍모.

졸리가 처음 두드러진 역할로 출연한 영화는 <해커즈>이다. 자니 리 밀러, 매튜 릴라드 등 후에 주목받는 배우가 될 또래들과 출연한 졸리는 짧게 깎은 머리와 딱 달라붙는 바지의 중성적인 소녀를 연기했다. 밀러의 대사처럼 “엉덩이가 기가 막히게 예쁜” 이 소녀는 모호한 성적 분위기로 오히려 도발적이었으며, “내 구역에서 나가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는 위협적인 대사로 쉬 지워지지 않는 잔상을 남겼다. 그뒤 여고생들을 사로잡는 “제임스 딘 같은” 레즈비언을 연기한 <폭스파이어>를 비롯 여러 인디펜던트영화에 출연했으나, 스스로에 가장 가까운 모습을 연기했던 작품은 TV영화 <지아>였다. “누구나 그 아름다움을 보았으나 누구도 그 아픔은 보지 못했던” 지아. 스물여섯에 에이즈로 사망한 모델 지아의 인생을 재현한 이 작품은 졸리에게 비슷비슷한 청춘스타들과는 전혀 다른 정체성을 심어 주었다. “그녀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내면을 가졌다. 잔잔하고 섬세하며 영리했으나, 사람들은 지아를 단지 야성적이고 아름다운 여자로만 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오해받았던 지아처럼, 스스로를 감당못해 망가지는 스타의 이미지는 졸리에게 고스란히 덮어씌어졌다. 그러나 졸리는 쉽사리 함몰되지 않는다. “지아를 알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녀에게 배우기도 했다. 나는 절대로 지아처럼 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세상의 시끄러운 입들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 졸리의 입술로부터 단호함보다 관능만을 읽어내는 영화 제작자와 관객은 마피아의 유혹적인 정부로 출연한 <플레잉 갓>과 같은 영화들만을 기대할 것이다. 이번에 개봉한 <본 콜렉터>에서도 졸리는 세계의 조화와 충돌하는 불온한 기운을 거세당한 채 수동적인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천재적인 법의학자 링컨 라임(덴젤 워싱턴)이 아무리 그녀의 재능을 칭찬하더라도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움직이는 아멜리아는 라임의 신체를 대신하는 인형일 뿐이었다. 졸리의 미래는 그런 값비싼 흥행작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위노나 라이더가 제작한 <처음 만나는 자유>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정신병동에서 나름의 사회와 우정을 창조하는 사춘기 소녀들에 관한 영화 <처음 만나는 자유>을 위해 라이더는 한번에 졸리를 지목했다. 졸리는 리사라는 이름의 소녀를 연기하며 성장에 배어 있는 고통을 예민하게 표현해야 했고,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졸리가 언제까지나 상처받은 소녀의 모습으로 머물지는 않겠지만, 단지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젊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안젤리나 졸리는 쉽게 어른이 되지 않을, 그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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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유로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