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티의 거실에서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베티의 남편이 마약을 빼돌렸고 청부 살인자들이 그를 응징하러 찾아왔다. 이건 현실이다. 베티의 방은 사뭇 다른 분위기다. 베티는 지금, 달콤한 휴식이자 짜릿한 하이라이트인 일과를 수행중이다. 병원을 무대로 한 연속극 <사랑하는 이유>를 보는 시간. 이건 환상이다. 거실에서 남편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순간, 베티는 현실에서 빠져나와 환상세계로 발을 들여놓는다. 어이없게도 연속극이 현실이라고 믿게 된 것이다. 베티의 환상은 이렇게 그녀의 현실에 침투해 인생을 뒤바꿔놓는다. <너스 베티>는 백일몽을, 존재하지 않는 환상을 꿋꿋이 좇는 이들에게 바치는 힘찬 응원가 같은 영화다.
<너스 베티>의 환상은 도피라기보다 자각이고 실현이다. 포복절도할 상황 속에서도 폭소를 터뜨릴 수 없고, 웃음 뒤에도 씁쓸한 뒷맛이 남는 것은, 모든 일탈 행위가 결핍감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베티는 즐겨보던 연속극이 진짜 현실이라고 믿게 되는데, 그 연속극은 사랑에 굶주리고, 꿈이 꺾여버린 베티가 가슴에 품은 이상향이다. 극중에서 유능한 외과 의사이자 헤어진 아내를 잊지 못하는 순정파 데이비드는, 단순 무식하고 폭력적인 베티의 남편에게는 바랄 수 없는 미덕을 지녔다. 공교롭게도 베티의 꿈은 간호사다. 진심은 통하는 법인지 사람들은 드라마 속 남자를 약혼자라 우기는 베티를 비웃지 못하고, 그녀의 환상 속으로 말려든다. 베티의 남편을 죽인 찰리가 베티에게 가장 깊이 휘말린다는 것도 아이러니. 찰리는 베티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녀를 순수하고 고상한, “도리스 데이 타입”의 여성으로 이상화한다. 퇴물 킬러 찰리에게 베티의 존재는 타락한 영혼을 구원하는 절대 순수와 고결함이 된다. 베티를 “연속극에나 빠져들 여자가 아니다. UN에서나 일할 여자”라고 믿듯, 찰리 역시 베티의 실체가 아니라 자기의 환상을 숭배하고 있다. 환상을 좇는 이들 돈키호테형 인간들은,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다. 찰리는 뒤늦게 회개하고, 베티는 “연속극의 의사도, 그 배우도, 남편도 아닌” 자기 자신을 찾는다. <너스 베티>는 여타 여성영화처럼 남성을 응징하거나 자멸하는 대신, 혼란스런 여행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무해하고 영리한 결론을 취한다. 베티가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의 메리처럼 소극적인 피사체로 남길 거부함으로써 거둔 성과다.
TV에 빠져 환상과 현실을 분간 못하는 여성을 다루면서도, <너스 베티>는 미디어가 창출하는 허구 세계를 탓하기보다, 쉽사리 영웅을 만들고 버리는 미디어의 속성과 시스템을 에둘러 비판한다. <너스 베티>의 화살은 오히려 환상이 아닌 현실을 향해 있다. 감독은 베티의 남편이 무참히 살해당하는 장면과 TV드라마를 교차편집해 보여주면서, 현실이 사랑타령뿐인 그렇고 그런 드라마보다 유해하고 비상식적이고 비현실적일 수 있음을 강조한다. 현실의 폭력을 좀더 충격적으로 드러내려는 감독의 욕심이 그려낸 타란티노풍의 유혈낭자한 화면은, 기발한 유머와 풍자의 경쾌한 템포, 환상과 현실 로맨스의 부드러운 결을 뚝 끊을 만큼, 생뚱맞아 보이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러나 황당한 일련의 사건들이 마뜩찮고 못 미더우면서도 빠져들게 되는 건,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이력이 증명하듯 현실과 환상, 유머와 비애와 풍자가 균형을 이루는 시나리오의 힘이다. 영화 한가운데 ‘접는 선’을 걸쳐놓아, 초반과 후반이 겹쳐지게 만든 구성은 내용과도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처음과 끝은 TV에 빠져 있는 누군가의 모습, 초반과 후반엔 난장판인 거실과 고요한 방에서 각각 교차돼 벌어지는 극적인 상황, 중반부엔 데이비드의 구애를 받는 베티의 환상, 베티와 다정하게 춤추는 찰리의 환상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겹쳐진다. 이 대칭구조는, 베티가 현실에서 환상으로, 다시 환상에서 현실로 빠져나오는 의미심장한 통과의례를 보여주는 효과적인 장치다. <너스 베티>의 또다른 성과는 배우들의 호연이다. 꿈꾸는 소녀의 분홍빛 뺨, 진실하고 간절하게 빛나는 눈, 수줍게 오물거리는 입술로 무모함까지 사랑스럽게 표현해낸 르네 젤뤼거는, 골든글로브에서 여우주연상을 따냈다. 모건 프리먼은 타깃인 베티를 연모하는 킬러 찰리로 분해 극 전체에 적당한 무게감을 실어줬고, 다혈질에 사고뭉치 킬러 웨슬리 역의 크리스 록, 베티의 ‘드림 러버’ 데이비드(조지가 아니라)를 연기한 그렉 키니어를 비롯한 조연들의 뒷받침도 든든하다.
박은영 기자 [email protected]
닐 라뷰트 감독
불편한 웃음, 독한 발언
작가이며 배우이기도 한 닐 라뷰트(38)는 냉소와 편견의 독설로 악명 높은 감독이다. <너스 베티>에 앞선 두편의 영화는, 신랄한 풍자와 비판으로 가득한 대사의 말맛, 평범한 일상에서 충격적인 소재를 이끌어내는 이야기솜씨가 돋보인다는 호평에도 불구하고 불편하고 불쾌해하는 관객이 많았고, 평단에서도 엇갈린 반응을 보내왔다.
닐 라뷰트의 뒤틀리고 무거운 유머의 근원을 짐작할 만한 대목은 있다. “미국사회엔 문제가 많다. 그런데 허영과 허식으로 그것들을 덮어버린다. 그게 싫다.” 브리검영대학과 NYU에서 기본기를 다진 닐 라뷰트는 97년 선댄스영화제에서 데뷔작 으로 영화작가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이 작품은 두명의 친구가 쾌척한 교통사고 보험금 2만5천달러로 만든 초저예산영화. 귀머거리 여인을 재미삼아 농락하는 남자들이 등장하는 이 영화는 공개되자마자, 여성 관객의 거센 반발을 샀다.
두 번째 영화 <나스타샤 킨스키의 스와핑>(Your Friends & Neighbors>은 개봉 과정부터 순탄치 않았다. 성적 취향이 다른 친구들이 서로 속고 속이며 만족을 찾아헤맨다는 내용의 이 영화에, MPAA는 남자 주인공이 10대 소년과 항문 성교하는 장면을 문제삼아 NC-17등급을 매겼다. 누드와 폭력 장면없이 NC-17등급을 받은 희귀한 케이스. 개봉이 요원해지자 감독은 재촬영과 편집을 거치는 데 동의, R등급을 받아냈다. <너스 베티>는 직접 시나리오를 쓰지 않은 첫 연출작. 전작들에 비해 온화하고 경쾌하며 주류에 가까운 감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자작 시나리오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최근 감독은 연극과 TV 등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데, 칼리스타 플록하트가 출연한 연극 와 TV드라마 를 연출하기도 했다. 현재 기네스 팰트로, 아론 에커트와 함께 빅토리아 시대 시인들을 모델로 한 로맨스영화 을 작업중이다. 아론 에커트는 닐 라뷰트의 전 작품에 출연한, 감독의 페르소나 같은 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