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길티>에는 시체에 단서를 남기는 연쇄살인마나 그를 집요하게 쫓는 형사가 없다. 음습하게 젖어오는 안개나 무거운 어둠, 차갑게 내쏘는 형광등도 없다.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탈출하는 긴박한 순간도 없다. 대신에 성공한 변호사와 감옥에서 갓 나온 젊은이, 성공하고 싶은 젊은 여성과 눈먼 보스가 지휘하는 갱단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들이 잔뜩 등장한다. 그러나 전혀 상관없어 보이던 그들이 기묘한 운명의 끈으로 연결되면서 그들의 세계는 살인과 배신, 음모로 가득 찬다.
인생은 묘한 것이야. 캘럼은 말한다. 그는 여직원을 강간하고, 해고했다. 여직원은 그가 연방판사직을 수락하면 언론에 알리겠다고 협박한다. 그녀의 입을 막을 방법은 없다. 그녀가 죽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누구에게? <더 길티>는 시작부터 이곳저곳, 이 사람 저 사람을 연이어 보여준다. 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드러내는 순간, <더 길티>의 사건이 시작되고 반전이 일어난다. 주차장에서 만난 강도를 때려눕힌 낯선 청년. 캘럼은 청년에게 살인을 청부한다. 그 젊은이가 아버지를 찾으러 온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도, 더구나 여직원의 집에 기거중이라는 것도 그는 알지 못한다. 자, 이들의 질긴 끈은 어디서 어떻게 풀리거나 잘려나갈 것인가. 살인이 일어나기까지 <더 길티>는 냉정하고 치밀하게, 그리고 적나라하게 각각의 행적을 보여준다.
<더 길티>의 약점은 스릴이 없다는 것. 그러나 그건 어쩌면 감독 앤서니 월러의 의도이다. 살인을 목격한 벙어리 여인이 낯선 범인들한테 쫓기는 데뷔작 <무언의 목격자>는 숨막히는 스릴로 가득하다. <파리의 늑대인간>은 현란한 특수효과로 빚은 ‘액션’을 즐겼다. <더 길티>에서 앤서니 월러는 얽음과 반전에 집중한다. 지도의 양극에 있었던 것 같은 인물들이 어떻게 엮이고, 배신하고, 궁지에 몰아넣는지를 어지럽게, 그러나 정교하게 펼쳐보인다. <더 길티>는 앤서니 월러의 재능이 스릴러와 공포, 드라마로 이어지며 종횡무진 뻗어나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위정훈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