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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 없는 방만한 이야기, <삼나무에 내리는 눈>
이유란 2000-02-15

스콧 힉스의 야심은 장대했다. <샤인>으로 선댄스를 시끄럽게 했던 감독은 차기작 <삼나무에 내리는 눈>에다 여러 장르를 비벼넣는다. 살인사건을 던져놓고 그 비밀을 풀어가는 걸 보면 미스터리이고, 법정에 선 무고한 혐의자 가츠오가 가까스로 누명을 벗는 과정을 놓고보면 법정드라마다. 이쉬마엘과 하츠오의 가슴 저릿한 로맨스가 그려지는가 하면, 2차대전 당시 일본이 진주만을 습격했을 때 미국에 사는 일본인들의 수난사가 또 그 사이를 비집는다. 이렇게 방대하고 산만한 이야기들을 스콧 힉스는 이미지로 엮어낸다. 이쉬마엘이 겪은 2차대전의 참상이나 일본인의 수난사가 몇개의 장면으로 요약 발췌된다. 말하자면 감독은 짧은 이미지로 긴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했다. 빛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한 촬영은 오랫동안 올리버 스톤과 작업했던 촬영감독 로버트 리처드슨의 솜씨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지가 영화의 거의 전부가 돼버렸다는 데 있다. 방만한 이야기는 하나로 묶이지 못한 채 제 갈길로 뻗어가버리고, 다양한 시공간을 오가는 편집 또한 산만하다. 이리저리 더듬어도 무엇이 영화의 기둥인지 종잡기 어렵다. <빌리지 보이스> <뉴욕 타임스> 등도 이 ‘알맹이 없음’을 꼬투리잡았다. 스콧 힉스는 “한폭의 그림 같은 아름다운 눈보라 풍경”은 스케치해냈지만, “나를 매료시킨 미묘하게 얽혀진 사건들의 조화성”으로 관객을 매료시키지는 못했다.

<삼나무…>는 95년에 발행된 데이비드 구터슨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재미교포 배우 릭윤이 가츠오로 출연하며, 짐 자무시의 <미스테리 트레인>에 출연했던 일본배우 유키 구도가 그와 부부를 이룬다. 하지만 주연들을 제치고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배우는 <제7의 봉인> 등에 출연했던 노장배우 막스폰 시도. 가츠오의 변호사로 분했다. 끊임없이 눈이 내리는 피에드라는 가상의 마을로 브리티시 콜롬비아에 있는 그린우드에 3개월에 걸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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