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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뎐>과 임권택 [3] - 정일성 촬영감독 인터뷰
사진 이혜정허문영(영화평론가) 2000-02-01

어려웠지만, 행복했다

-<춘향뎐>이 가장 난해한 촬영이었을 것 같다. 색채부터 화려하기 그지 없다.

=난해하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로서는 완전히 새로운 걸 했다. 이전엔 한번도 내 스타일을 바꾸려했던 적이 없었다. 난 70년대부터 카메라를 들었고, 어두운 시대에 살면서 아름답게 찍고 싶진 않았다. 그러다 보니 묵화의 느낌이 강한 화면이 됐다. 움직임도 별로 없고, 빈 공간이 많은 쓸쓸한 화면. <춘향뎐>에선 아름다운 한국적인 색을 마음껏 표현하겠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했다. 소품과 의상까지 본래의 색을 최대한 선명하게 잡겠다는 생각이었다. 낮은 톤을 버리고 우리 색의 느낌이라면 극단적으로 화려해보자는 것이었다. 필터도 코럴파스칼을 특별히 주문해서 썼다. 그것도 모자라서 필터 3, 4개를 겹쳐서 썼다. 색감을 충분히 드러내기 위해, 흐린 날 촬영은 거의 피했다. <춘향뎐>의 색이 토속적이면서도 화려하고 인공적인 느낌이 든다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느낌을 줬다면 난 만족한다.

-판소리의 리듬을 쫓아가는 일도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을 것 같다.

=리드미컬하고 힘있게 보이고 싶었다. 처음엔 영화의 리듬을 중심에 놓고 생각했다. 그런데 촬영 시작하고 두달 지난 뒤 보니, 그게 아니었다. 판소리의 리듬을 가운데 놓고 영상이 그걸 따라가야 하는 것이었다. 다시 시작했다. 마치 핸드홀드로 찍는 것처럼 유연하고 리드미컬하게 카메라가 움직여야 했다. 남원 촬영장의 지형이 우리를 괴롭혔다. 좁고 경사진 산길에서도 레일을 깔고 움직여야 했으니 모든 과정이 고통스러웠다. 스테디캠도 실험해봤는데, 마음에 맞는 앵글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트래킹으로 스테디캠의 효과를 내는 쪽으로 갔는데, 그 때문에 작업은 더욱 힘들어졌다. 조명도 카메라의 움직임을 계산해서 설치해야 했고.

-촬영팀의 손발이 판소리의 리듬에 따라 한몸처럼 움직여야 했을 텐데.

=처음부터 줄곧 귀명창이 되라고 주문했다. 그것 외에는 우리도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그 리듬이 몸에 익어 따라오지 않으면 어떻게 시켜도 안 된다. 리듬이 만들어낸 자발성이 힘이 됐던 것이다. 이번처럼 민주적으로 촬영이 진행된 적이 없었다. 어떤 장면은 나와 임 감독이 오케이했는데도, 촬영조수가 다시 찍자고 해서 다시 찍었다. <춘향뎐>의 촬영이야말로 모든 촬영부와 조명부의 공동작품이다.

-임 감독과는 오랜 파트너 관계다. <춘향뎐>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1978년부터 20여년 동안 열여덟 작품을 같이 했다. 나는 느낌이 통해야 화면이 잘 나오고 영화도 좋아진다고 생각한다. 젊은 감독들은 당대의 문제만 본다. 임 감독과 나는 동세대다. 아무 말 안 해도, 오늘의 이야기에서 우리 아버지의 삶, 우리 할아버지의 삶을 떠올린다. 그래야 작품 해석이 제대로 되고, 그 느낌으로 찍는 거다. 내가 생각한 앵글을 임 감독이 동의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같은 해석과 같은 느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춘향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영화보다 어려웠지만, 어떤 영화보다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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