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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이 사랑한 감독들 [5] - 오가타 아키라

<소년 합창단> 감독 오가타 아키라

“우리가 진정 원했던 것이 혁명이었을까”

영화는 15살 소년 미치오가 아버지를 여의고, 미션 스쿨 독립학원으로 전학오는 데서 시작한다. 아버지를 잃은 충격으로 말더듬 증세가 심해진 미치오는 따돌림을 당하지만, 중성적인 외모에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합창반 소프라노 야스오가 그의 곁에 선다. 친구가 된 두 소년은 합창반 지도 교사를 믿고 따르는데, 사토미라는 여인의 방문으로, 그가 과거 학생운동 전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폭탄 테러를 벌이고 도움을 청하러 온 사토미가 경찰에 쫓기다 그들 앞에서 자폭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방학 동안 목소리를 잃고 학교로 돌아온 야스오는 합창대회에 나가 혁명가를 부르자며 학생들을 선동하기 시작한다. 미치오는 그런 야스오의 목소리가 돼준다.

<놀라운 20세기>라는 TV 다큐시리즈를 만들던 93년부터 오가타 아키라 감독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생각 하나가 있었다. “이렇듯 잔인한 역사가 개인의 정신에 그리고 행동에 대체 얼마만한 영향을 끼친 것인지.” 결국 그는 당시 함께 일하던 작가를 부추겨, 60년대와 70년대에 휘몰아친 학생운동의 꿈과 좌절을 그린 <소년 합창단>을 만들었다. <소년 합창단>은 오가타 아키라의 첫 장편. 후쿠오카대 재학 시절 만난 이시이 소고 감독의 조연출을 지내며 영화와 연을 맺었고,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추천으로 피아영화제에 단편을 소개한 이후, 주로 CF와 TV드라마, 뮤직비디오, 다큐멘터리 등을 만들어왔다. <소년 합창단>은 베를린 현지에서 입소문이 꽤 났던 작품으로, “가장 뛰어난 데뷔작”이라는 평과 함께 알프레드 바우어상을 수상했다.

-극 영화 데뷔작이다. 어떻게 이 작품을 택하게 됐나.

=영화는 내 유년 시절에,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자연스럽게 영화감독이 돼야겠다고 생각했고, 10년 정도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봤다. 영화 속 배경인 60년대 후반에, 난 주인공 소년들과 같은 나이였고, 당시 격렬했던 학생운동을 경험했다. 그 기억들이 영화에 아이디어를 준 거다. 초등학교 때 합창단원으로 활동했던 개인적인 경험들도 가미시켰고. 나와 더불어 지난 10년간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온 아오키 겐지가 원안을 내고, 시나리오를 썼다.

-두 소년의 관계가 우정 이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직접적인 표현이 없어서, 과연 사랑이었는지 의문스럽다.

=이들은 둘 다 부모를 잃고 학교 기숙사에서 살아가는 15살 소년들이다. 한 소년이 목소리를 잃자, 다른 한 소년이 그의 목소리가 돼준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동성애를 느꼈을 수도 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처해 있는 상황들, 그리고 그뒤에 불어닥친 변화의 바람 같은 것들은 매우 특수했다. 이들은 그래서 더욱 가깝게 서로에게 밀착된 것이다.

-음악 교사는 혁명의 꿈을 이루지 못한 좌절감에 세상을 외면하고 성경 공부에 몰두하는데, 그것이 당신이 생각하는 대안인가.

=모르겠다. 사람들은 당시 혁명을 꿈꿨다. 하지만 그게 진정 우리가 원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중국이나 러시아처럼 일본사람들이 간절하게 혁명을 바랐다고 볼 수 있을까. 폭탄을 투하하는 것, 종교에 빠져드는 것, 어느 쪽이 옳은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영화에서도 어느 한쪽의 손을 들여주려 하지 않았다. 뭐든 성취하려면 행동으로 옮겨야 했다. 당시 급진적인 경제성장을 비관하고 회의하던 일본인들은 다른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소년들의 행동 수단이 목소리였다면, 교사의 행동 수단은 성경 수업이었다.

-지금의 10대 배우들이 30년 전의 상황을 연기하는 데 별 무리는 없었나.

=맞다. 배우들이 다 어려서, 내가 가장 연로한 스탭이었다.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지금의 15, 16살 소년들에게 상황을 이해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자료화면을 보여주고, 내 부모 세대의 어른들과 만나게 했다. 당시의 대의가 혁명이든 아니든, 혁명이 옳든 그르든, 기본적으로 아이들에게 알려야 했던 건, 우리가 당시로선 매우 가치있고 중요한 일을 하려 했단 사실이다.

-영화 스타일이 매우 클래식하고 동양적이다. 의도한 것인가.

=영화를 만드는 순간엔 내가 아시아인이라는 의식을 많이 하지 않는다. 어려서 영화를 많이 접할 수 있었던 건 TV 덕이었는데, 대개가 서양 영화들이었다. 일본영화를 비롯한 아시아 작품을 대한 것은 성장한 다음이고 영화를 시작한 다음이었다. 그때 본 아시아영화들이 내 머릿속에 잠복해 있다가, 스타일에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시간을 거슬러올라가 합창 경연대회 장면을 에필로그로 배치한 이유는.

=처음부터 의도했다. 영화는 초반의 상당 부분을 소년들의 감정, 그리고 노래에 할애한다. 합창 경연대회라는 목표가 생기지만, 솔로가 목소리를 잃어버리고, 인물들 사이에 갈등이 심화되는 등의 이야기가 나머지다. 리더의 목소리가 온전한 상태에서 함께 노래하고 대회에 나가는 상황은 실재하지 않았지만, 비극적인 결론에 이어붙이면 더욱 효과적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도가 제대로 전달됐는지는 모르겠지만.

-합창곡을 비롯해, 영화 속 음악은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는데.

=선곡은 시나리오 단계에서 이뤄졌고, 특별한 의미를 담았다. 소년들의 합창곡으로 러시아 민요가 많이 나온다. 60∼70년대 일본음악계엔 미국이 상당한 영향을 끼쳤고, 대중적인 인기도 누렸다. 그럼에도 러시아 민요로 제한한 것은 두 가지 상황을 대조하고 싶어서다. 미국 음악에 대항해 강박적으로 러시아 민요를 듣고 부른다는 것이, 당시 젊은이들이 처한 상황으로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합창단의 리더인 야스오의 미성이 인상적이다. 어떻게 캐스팅했나.

=야스오를 연기한 도마는 영화 속에서처럼 그런 미성을 내지 못한다. 노래를 잘하는 소년들도 많았지만, 비범한 연기력을 요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목소리보다는 이미지와 연기력쪽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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