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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루카스의 '포스' [1]

<스타워즈>는 어떻게 할리우드를 정복했는가

"<스타워즈>는 그저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는 영화일 뿐이다. 섹스와 같다. 섹스는 사랑과 달리 한순간의 쾌락이다. 하지만 그 쾌감이 20년 이상 지속된다면, 그것은 '최고의 ' 섹스이거나 낭만적인 사랑이다." <스타워즈>는 이미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다양한 세대의 아드레날린을 들끓게 하고 있다. <스타워즈>가 위크엔드 무비인 것은 분명하지만, 어쨌든 모든 세대를 관통하는 ‘사회현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아마도 <스타워즈>에 베이비붐 세대의 집단 기억들이 들끓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름에서 보이듯 루크는 조지 루카스 자신이고, 조지 루카스와 그의 친구 스티븐 스필버그는 베이비붐 세대의 욕망과 향수를 대리만족시켜주는 이야기꾼인 것이다.

옛날 옛적 미국에서…

영화홍보에 가장 까다로운 감독을 꼽자면, 첫손가락에는 얼마 전 작고한 스탠리 큐브릭이 꼽힌다. 스탠리 큐브릭은 미국은 물론 해외에서 자신의 작품을 개봉할 때도 모든 것을 챙겼다. <메탈 자켓>이 국내 개봉했을 때 스탠리 큐브릭은 광고 문안은 물론 한글을 모르면서 디자인까지 일일이 체크했다. 스탠리 큐브릭은 자신의 영화를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철저하게 통제하면서, 관객에게 자신의 영화를 전달하려 했다. <스팔타커스>가 자신의 의도와 달리 편집되는 고역을 치른 뒤, 스탠리 큐브릭은 자신의 작품에서 완전무결한 신이 되기를 원했다. 스탠리 큐브릭이 운명을 달리하자, 새로운 강적이 등장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의 조지 루카스(55). <보이지 않는 위험>의 배급을 맡은 폭스는 수익의 10%만을 갖는 굴욕적인 조건은 물론 조지 루카스의 일방적인 가이드라인을 철저히 준수해야만 했다. 홍보용으로 슬라이드컷도 조지 루카스가 결정했고, <보이지 않는 위험>의 정보도 조지 루카스가 정해주는 만큼만 공개할 수 있었다. 게다가 개봉 후 6주간 예매 금지, 본 영화 시작 전 광고 불가능, 예고편도 제한 등 갖가지 엄격한 조건이 따라붙었다. 깐깐하기로는 조지 루카스도, 결코 스탠리 큐브릭 못지 않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영화를 보호하기 위하여, 독재권력을 마음껏 휘두른다.

하지만 두 사람의 동기는 현저히 다르다. 스탠리 큐브릭은 오로지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는 자신의 영화가 ‘장사꾼들’의 손에 더럽혀지는 것을 거부한다. 물론 조지 루카스도 <스타워즈>를 보호한다. 하지만 그 이유는, 더 많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다. 두 사람 모두 은둔자이긴 하지만, 스탠리 큐브릭은 예술적 완성도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었고 조지 루카스는 자본과 기술력을 갖추기 위해서이다. 조지 루카스는 목적을 위해, 철저히 자신을 관리하고 최대의 이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조지 루카스가 스탠리 큐브릭보다 하급 인생이란 이야기는 아니다. 조지 루카스에게는 자신의 인생이 있고, 자신의 영화가 있다. 조지 루카스 역시 자신의 데뷔작 <THX 1138>이 제작사 워너에 의해 무참히 난도질당하고 제한상영당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영화를 완전히 자신이 통제하는 야망을 꿈꾸었다. 지금 그 꿈은 이루어졌고, 그것이 바로 스스로를 “독립영화감독”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루카스와 아버지, 루크와 다스 베이더

사실 조지 루카스는 어느 모로 보나, 천재가 아니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제작자 릭 매컬럼은 “루카스는 평균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다. <인디아나 존스>와 <스타워즈>의 엄청난 성공이, 오히려 그를 혼란에 빠트릴 정도로”라고 말한다. 조지 루카스의 사춘기는, 자전적인 영화 <청춘 낙서>의 주인공과 똑같았다. 로큰롤과 자동차, 기계에 열광하고 여자애들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던 시절이었다. 스스로 ‘난 참 바보 같았다’라고 말할 정도로. 당시 조지 루카스는 영화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단거리를 질주하는 자동차경주에 열중했다. 자동차경주는 결국 루카스의 인생을 바꿨다. 18살의 조지 루카스는 경주 도중 심각한 사고를 당한다. 며칠간 사경을 헤매다 깨어난 조지 루카스는 무언가 인생에서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의 본능을 믿기로 했다. 대학에 가거나, 영화학교에 가는 일이 모두 본능에 의한 것이었다. <스타워즈>를 만들 때도 그랬다. 친구는 나보고 미쳤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반드시 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마디스토칼리지에 들어간 주지 루카스는 영화에 빠져들었고 친구의 8mm 카메라를 들고 자동차경주 등을 찍기 시작했다. 촬영감독 헤스켈 웩슬러를 만난 것도 그때였고, 조지 루카스는 특히 카메라 테크닉에 반했다. 조지 루카스는 USC 영화과에 가겠다고 선언하며, 지방 도시의 사업가였던 아버지를 놀라게 했다. 91년 사망한 아버지와 조지 루카스의 관계는, 적이었지만 결국 포용하고 같은 길을 걷게 되는 <스타워즈>의 루크와 다스 베이더의 관계에 투영돼 있다. 어린 시절의 조지 루카스는 아버지를 싫어했지만, 결국 세상에 대한 태도는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 할리우드, 도박꾼, 은행가, 법률가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아버지의 보수주의의 영향이고, 탁월한 재정감각 역시 아버지에게 물려받았다. 조지 루카스는 “나 역시 언제나 보수적”이라고 말한다.

루카스는 USC를 졸업한 후 프랜시스 코폴라의 <피니안의 무지개>(1968)에서 인턴으로 영화일을 시작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알자마자, 영화에 대한 애정까지 깨달았고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프랜시스 코폴라는 자청하여 루카스의 데뷔작 <THX 1138>(1971)의 제작을 맡았다. 제목은 한때 조지 루카스가 소유했던 전화번호에서 따왔다. <THX 1138>은 조지 루카스가 학생 시절 만든 20분짜리 단편을 장편으로 늘렸다. 25세기를 배경으로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오웰의 <1984>의 세계를 독특하게 그려냈고, 특수효과를 최소화하면서도 그의 영화 중 가장 창의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워너는 필름을 재편집하고, 제한개봉한다. <THX 1138>은 흥행에 실패했지만, 컬트팬의 찬사를 받았고, SF감독으로서도 인정받는다.

낙심한 조지 루카스를 구한 것은 자전적인 <청춘 낙서>(1973)였다. ‘62년에 우린 어디에 있었을까’란 생각에서 출발한 <청춘 낙서>는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일이면 대학으로 떠나야 하는 주인공의 하룻밤을 차분하게 그려냈다. 이때부터 조지 루카스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주제는, ‘향수’였다. <스타워즈>의 시작이 ‘옛날 옛적 은하계에서’란 자막으로 시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청춘 낙서>는 60년대에 사춘기를 보낸 세대의 심금을 울렸고, 단 75만달러의 제작비로 무려 1억2천만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비평적으로도 찬사를 받아 아카데미에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현대의 신화로

<청춘 낙서>는 모두 난색을 표하던 <스타워즈> 제작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교통사고로 병원에 있던 시절, 구상을 시작한 <스타워즈>는 조지 루카스 필생의 작품이었다. “나는 서부극을 대체할 현대의 신화를 찾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의 인식 바깥에 있었다.” 조지 루카스는 동화, 신화, 속편 영화들과 사회심리학 등을 철저하게 연구한 뒤에 <스타워즈>의 구체적인 구상에 들어갔다. 시작은 파시스트 악당이 세계를 지배하려 하고 민주적인 시민이 영웅이 되어 굴복시킨다는 공식을 따르는 평범한 스페이스 오페라였지만, 조지 루카스의 야심은 그 이상이었다. “비평가들은 나와 스티븐(스필버그)이 기본적으로는 B급영화에 불과한 블록버스터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에 곤혹스러워한다. <죠스>는 거대한 공포영화다. <스타워즈>는 거대한 SF영화다. 그들은 이 영화들은 <엑소시스트> <대부> 같은 70년대의 위대한 영화들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들 역시 B급영화였을 뿐이다. 그리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소프 오페라일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평론가들은 <스타워즈>의 ‘얄팍한 주제’를 공격한다. 그러면 조지 루카스는 잠깐 움츠러들어 “<스타워즈>는 토요일밤의 팝콘 무비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조지 루카스는 자신의 영화에 대단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스타워즈>는 그저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는 영화일 뿐이다. 섹스와 같다. 섹스는 사랑과 달리 한순간의 쾌락이다. 하지만 그 쾌감이 20년 이상 지속된다면, 그것은 ‘최고의’ 섹스이거나 낭만적인 사랑이다.” <스타워즈>는 이미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다양한 세대의 아드레날린을 들끓게 하고 있다. <스타워즈>가 위크엔드 무비인 것은 분명하지만, 어쨌든 모든 세대를 관통하는 ‘사회현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아마도 <스타워즈>에 베이비붐 세대의 집단 기억들이 들끓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름에서 보이듯 루크는 조지 루카스 자신이고, 조지 루카스와 그의 친구 스티븐 스필버그는 베이비붐 세대의 욕망과 향수를 대리만족시켜주는 이야기꾼인 것이다.

어쨌든 폭스가 1100만달러의 제작비로 계약한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는 SF영화 역사만이 아니라, 할리우드의 물줄기까지 바꾸었다. <제국의 역습> <제다이의 귀환>의 시나리오를 함께 쓴 로렌스 캐스단은 “그것을 조지의 실수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와 스필버그가 모든 스튜디오들의 영화에 대한 개념을 바꿔놓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작품 자체보다 비즈니스가 더욱 중요해진 것”이라고 말한다. 조지의 실수가 아니라고는 해도, 조지 루카스의 혜안이 할리우드의 지각변동을 가져온 원인인 것은 분명하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상업적인 영화’를 만드는 감각이 탁월하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대중의 관심을 끌 만한 소재를 그럴듯하게 치장해내는 천부적인 솜씨를 지니고 있다. 반면 조지 루카스는 영화산업 전체의 흐름을 짚어낼 수 있는 직관 혹은 스스로 말하듯 ‘본능’이 있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원조

<스타워즈>의 제작비가 예상을 넘어서자, 조지 루카스는 제작사 20세기폭스와 새로운 계약을 맺는다. 연출료 일부를 포기하는 대신 <스타워즈>의 캐릭터 상품과 속편의 권리를 따낸 것이다. 조지 루카스의 생각은 간단했다. SF영화팬들은 우주선 모형이나 로고가 새겨진 T셔츠도 모으니까, 어느 정도 부수입을 올릴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었다. 1977년 이래 <스타워즈> 관련 상품의 수익은 45억달러를 넘었고, 올해 <보이지 않는 위험>도 펩시사, 장난감회사 헤즈브로, 레고 등에 이미 30억달러 이상의 판권료를 받기로 계약했다. 블록버스터를 만들어 바람몰이를 하고, 관련상품을 팔아먹는 할리우드의 불가사리 전략은 조지 루카스의 작은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지 루카스에게는 개인적인 야심도 있었다. 조지 루카스는 자신의 이상이 담긴 <스타워즈>를 반드시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스타워즈>가 흥행에서 실패한다면 폭스는 절대로 속편을 만들지 않을 것이고, 권리를 넘겨주지도 않을 것이다. 조지 루카스는 자신이 판권을 소유해 저예산영화일지라도 애초 구상대로 <스타워즈>를 완성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대로 <스타워즈> 시리즈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할리우드는 <스타워즈>의 공식을 따라갔다. 블록버스터가 시작됐고, 예술보다 산업과 경영을 중심에 놓았고, 영화 자체보다 마케팅과 관련상품에 열정을 쏟았다. 할리우드의 주요 타깃은 10대와 20대 초반으로 낮춰졌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이야기구조와 볼거리에 치중하기 시작했다. “블록버스터는 이미 <국가의 탄생>에서 시작”되었고 “할리우드가 내 영화를 베끼는 것”이라고 해도, 태풍의 중심은 분명 루카스와 스필버그였다.

어떻게 보면 조지 루카스의 개인적인 야망은, 철저하게 시류를 타고 흘러갔다고 할 수 있다. 조지 루카스의 말대로 ‘본능’이 그를 이끌어간 것이다. <스타워즈>식으로 말한다면 ‘포스’가. 특수효과 전문회사 ILM(Industrial Light & Magic)의 설립 역시, 본능이 이끈 것이다. 오리지널 3부작을 만들면서 조지 루카스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미지를 영상으로 옮길 수 없다는 것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상상 속의 외계인을 마음대로 만들 수 없었고, 매트 촬영은 분명히 가짜처럼 보였다. 결국 조지 루카스는 나머지 3부작을 만들 조건이 성숙할 때까지 기다린다. 아니 스스로 조건을 만들어낸다. ILM은 아카데미에서 시각효과상을 열네번, 기술상을 열두번 수상하며 할리우드의 특수효과 기술을 선도했다. 그리고 “ILM이 디지털 티 렉스를 만들어냈을 때… 드디어 지난 10여년간 추구해온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았고, <보이지 않는 위험>의 준비가 끝난 것이다.

94년 11월 조지 루카스는 3명의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와 서재로 갔다. 그는 <스타워즈>를 쓸 때부터 가지고 있던 노란색 바인더에 <보이지 않는 위험> 시나리오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1996년 초 루카스는 ILM의 심복들을 불러 무려 3500장의 스토리보드를 보여주었다. 전투 장면, 레이싱 장면, 행진 장면은 물론 수천명의 캐릭터 모습까지 들어 있었다. ILM의 사람들은 거의 혼비백산했다. 하지만 조지 루카스는 모든 일을 철저하게, 차근차근 진행했다. 모든 캐릭터와 디자인은 직접 체크하며 완성했고 모형 제작까지 간여했다. 제작의 전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을 예술가라고 부른다면, 조지 루카스도 그 이름을 얻을 자격이 있다. 하지만 조지 루카스는 예술가보다, 사업 전체를 틀어쥐는 비즈니스맨 같은 느낌이 더욱 강하다. 조지 루카스는 한편의 영화를 만드는 과정 전체를 관장하는 것은 물론 마케팅과 배급에도 전권을 쥐고 있다. 철저하게 <보이지 않는 위험>의 정보를 차단했던 조지 루카스는 올해 초 <뉴욕 타임스> <타임> <배네티 페어> 등 10여개의 신문, 잡지와 접촉해 독점 인터뷰를 제공하는 대신, 조지 루카스의 이미지를 개선시켜달라고 요구했다. 미래의 환상과 기계문명에 푹 빠진 ‘테크노 마니아’가 아니라 ‘어머니 없이 아들을 키우는 정많은 아버지’이며 동양 사상과 문화에 관심많은 풍부한 학식의 소유자임을 선전해달라는 것이었다. 69년 편집기사였던 마르샤 그리피스와 결혼했다가 83년 이혼한 조지 루카스는 언론까지 능숙하게 요리하는 철저한 ‘사업가’의 면모를 보여준다.

팍스 아메리카의 유희, 미국 신화의 아버지

아마도 <스타워즈>가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닐까. “내 영화가 대중적인 이유는, 내가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라는 조지 루카스의 말처럼, 그의 영화에는 평균적인 미국인들의 윤리감각과 생활감각이 배어 있다. 조지 루카스의 좌우명은 “열심히 일해라. 너 자신을 믿고 인내하라”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말고 너 자신의 소리를 듣고 따라라. 그럼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 그것이 구식의, 진짜 미국인이다.” 조지 루카스에게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인생에는 자신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임무나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수행하기 위해서 힘든 일과 자기희생, 우정, 충성과 고상한 목적을 이루어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제다이가 되기 위해 먼길에 나선 루크와 아나킨이 겪어야 했던 세월이다. 평론가들이 <스타워즈>를 “혐오스러운 할리우드영화를 있게 한 주범”이라고 비난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중이 열광적으로 <스타워즈>를 소비한 것은, 이혼율이 급증하고 사회의 모든 가치가 무너졌던 70년대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다. 미국 대중은 현실 대신 꿈과 피난처를 택했고, 자유와 평등 대신 강력한 ‘팍스 아메리카’를 요구한 것이다. 조지 루카스는 미국 대중에게 꿈을 주었고, 동시에 자신의 꿈을 이룩했다. 아이로니컬하지만, 가장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이상’에 도달한 것이다. <스타워즈>의 세계는 어쩔 수 없는 공상이다. 조지 루카스는 과거의 이상향, 청교도들이 신대륙에 건너와 꿈꾸었던 그런 세계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역사가 없는 미국인에게, 가상의 역사와 향수의 원천을 제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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