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목 <3과 1/2 펑크>. 펠리니의 <8과 1/2>이 떠오르기도 하고, ‘펑크’ 관련된 음악영화가 연상되기도 하는 이 제목은 인디밴드 크라잉 넛이 출연하는 영화의 가제다. 왜 하필 ‘3과 1/2’인지는 주인공들도 모르고 있지만, 밴드나 음악이 주가 되는 음악영화는 아니다. 그럼 어떤 영화? “코믹함, 판타지, 로맨스, 다큐멘터리가 다 들어 있는 세기말 모험담”인데 “악마가 나오기도 하고, 비만에 걸려서 맞아죽기도 한다”. 그게 어떤 영화냐고 재차 물으면, 시나리오를 만들면서 찍고 있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는 답이 날아온다. 크라잉 넛의 멤버 4명이 각각 마봉식, 복남이 등 극중인물로 출연해서 모험도 하고 사랑도 한다는 것이다. 펠리니 같은 판타지와 펑크처럼 직설적으로 분출되는 젊음에 관한 영화라고 상상력을 동원해보는 수밖에. 하긴 즉석에서 집어든 소품에 맞춰 색색의 표정을 연출하며 사진기자의 카메라 앞에서 노는 크라잉 넛을 보고 있자면, 그 분방한 에너지와 스크린의 만남이 사뭇 궁금하기도 하다.
4명으로 구성된 크라잉 넛은 홍익대 앞 언더그라운드 라이브클럽 드럭의 하우스밴드. 보컬 박윤식, 베이스 한경록, 쌍둥이 형제인 기타리스트 이상면과 드러머 이상혁 4명은 용띠 동갑내기에 초등학교부터 동창들이다. 중학교 때 음악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해 고교부터 같이 한 밴드 이름만 줄잡아 10개가 넘는다. 대학에 들어간 95년부터 홍익대 앞 라이브클럽 드럭 무대에 서기 시작했는데, “섹스 피스톨즈처럼 좀 쉬운” 외국밴드 카피를 하다가 자작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경쾌하면서도 ‘내 멋대로’라는 분방함이 살아 있는 크라잉 넛의 펑크음악은 20대 초반과 10대 청중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다. “이러다가 늙는 거지/ 그땔 위해 일해야 해/ 모든 길은 막혀 있어/우리에겐 힘이 없지 닥쳐…. 닥치고 내 말 들어. 우리는 싸워야 해”라는 허무주의와 선동이 공존하는 <말 달리자> 등 투박하지만 진솔한 가사와 단순하고 폭발적인 펑크사운드, 모두가 함께 어울려 뛰노는 난장판 무대로 후련한 해방구를 마련했던 것이다. 96년 10월에는 이 자작곡들을 담아 국내 인디음반 1호 <아워네이션 Vol.1>을 선보였고, 이 음반을 자체 제작한 드럭은 국내 첫 인디레이블이자 언더그라운드 록 문화의 메카로, 크라잉 넛은 대표적인 인디밴드로 떠올랐다.
만3년이 지난 지금은 첫 독집이 5만장 넘게 팔리고, 각종 록페스티벌은 물론 대학축제다, 방송이다 여기저기 불려다닐 만큼 인디록계의 스타가 되어 있다. 하지만 TV에도 나가고 하는 것이 이른바 변절이라 생각진 않는다. “우리나라 시스템에서는 인디가 마니아층의 소화에만 머물면 음악하기 힘든” 현실을 직시하고, 주류 대중음악계와 소통하면서도 자신들의 음악을 하고 싶다는 게 크라잉 넛의 바람. 인디란 음악적 공간의 틀을 넘어서는 것처럼, ‘펑크’란 형식에 얽매일 생각도 없다. 최근 발매된 2집 <서커스 매직 유랑단>에서는 펑크는 물론 폴카, 스카, 뽕짝, 보사노바 등을 종횡무진하며 성숙한 만큼 좀더 심각해진 얘기를 들려준다. "나름대로 심각하긴 한데 도를 지나쳐서는 안 된다. 내가 심각하다고 남에게 강요하는 것도 싫다"며, 그저 자신들의 작은 얘기가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면 좋겠다는 생각. 그래서 "달려가다 잠깐 쉬고, 앉아서 술을 마시듯 일에 찌든 사람들에게 광대가 되어 즐거움과 위로를 주기를" 바란다.
지난 11월달에 촬영을 시작한 <3과 1/2 펑크>는 “슈퍼울트라극초저예산영화”. 원래 충무로 메이저에서 <정글 스토리>보다 규모가 큰 음악영화를 구상하며 미국에서 공부하던 예비감독 임지훈씨를 불러왔다가 무산시킨 기획을, 결국 감독과 주연배우들이 밀어부쳐 디지털카메라로 찍고 있다. 2월경 완성해서 인터넷에 먼저 올리고, 기회가 되면 전주영화제에도 출품할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