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미래를 여는 첨병 POP.com
지난해 연말, 타임 온라인을 비롯한 수많은 웹사이트에서 네티즌들의 투표를 통해 20세기를 규정짓는 단어를 결정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자동차, 전쟁을 비롯한 다양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1위에 오른 단어는 인터넷 혹은 컴퓨터. 1983년 <타임>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는 파란을 일으키면서 인간의 생활을 급속도로 바꾸어놓기 시작한 컴퓨터가 90년대 초부터 인터넷이라는 강력한 무기까지 획득하게 되면서 20세기 말을 화려하게 장식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컴퓨터로 시작해 인터넷으로 불붙기 시작한 이런 변화의 물결은 산업 전 분야에 걸쳐 파장을 미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런 변화를 대표할 만한 사건이 바로 본격적인 인터넷 엔터테인먼트 서비스를 지향하면서 지난 99년 10월25일에 오픈한 POP.com의 설립. 어쩌면 그저 한 홈페이지의 개설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 이 사건이 그토록 큰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그 창립자들이 다름아닌 드림웍스 SKG와 이메진 엔터테인먼트라는 사실 때문이다. 스필버그를 위시한 드림웍스의 3인방은 물론 이메진 엔터테인먼트의 브라이언 그레이저와 감독으로도 유명한 론 하워드 역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는 첨단을 달리는 인물들이다. 또한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창립멤버였고, 현재는 어마어마한 자산의 투자자로 활동하고 있는 폴 앨런이 이 새로운 회사에 5천만달러(약 55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 또한 이목을 끄는 부분이었다.
POP.com이 기존의 인터넷 엔터테인먼트 사이트들과 차별화한 점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뉠 수 있다. 모든 컨텐트가 쌍방향적이라 시청자가 직접 그 프로그램의 제작에서부터 방송에 이르기까지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그 첫 번째. 이를 위해 POP.com은 채팅, 메시지 교환 그리고 동호회 기능 등을 모든 프로그램에 연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사용자들 중 독립영화 제작자나 독립애니메이션 등을 육성해 그들이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수준의 보상을 할 예정이다. 이는 기존의 방송계와 영화계에서는 불가능했던 다양한 작품의 제작을 보장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모든 프로그램이 인터넷을 통해서만 방송될 예정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기존의 인터넷 방송사들과는 분명히 차별화한 것으로, POP.com은 실사는 물론 애니메이션, 게임 등 모든 가능한 형태의 프로그램들을 새롭게 제작해 제공하되, 초기에는 주로 코미디 장르에 집중하고 이후에 점차 장르를 확장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CATV나 영화와는 달리 시청자들이 돈을 지불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세 번째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기본적인 매출은 광고와 전자상거래를 통해 달성될 예정으로,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28.8K 모뎀 사용자들도 불편없이 즐길 수 있도록 구성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닷컴'에 뛰어든 이유는?
이렇게 원대한 계획을 발표하며 드림웍스 SKG의 제프리 카첸버그는 ‘MTV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것처럼 POP.com은 전혀 새로운 개념의 엔터테인먼트 세계를 열어갈 것’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물론 이 사건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커다란 지각변동을 예고한다는 측면에서 비상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스필버그는 ‘우리는 TV와 영화에 대항해 싸울 생각은 전혀 없다. 우린 전혀 새로운 매체를 만들어낼 뿐이다. 인터넷이 충분한 속도를 확보할 때까지 경쟁이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비췄다.
그렇다면 왜 드림웍스와 이메진은 이른바 ‘닷컴’(.com)에 뛰어들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면, 인터넷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현실을 조망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인터넷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하나는 인터넷을 통해 제공될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컨텐트 산업이고, 또 하나는 이를 인터넷을 통해 방송하는 웹캐스팅 산업이다. POP.com은 양쪽을 모두 아우르는 종합적인 서비스를 목표로 한다는 점이 기존업체들과는 다르다.
우선 인터넷을 위한 컨텐트 산업은 아직 초기단계라고 봐야 한다. 대부분 독립영화나 독립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이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피퍼>로 대성공을 거둔 ‘Shockwave.com’와 리얼플레이어를 제공하는 ‘Realnetworks.com’ 등 일부 업체들이 조심스럽게 참여하고 있는 것이 전부인 상황이다. 따라서 아직까지 웹캐스팅 회사들을 통해 방영되고 있는 대부분의 컨텐트들은 기존 TV 프로그램이나 애니메이션 등을 인터넷으로 방송되기 알맞게 조절한 것들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기존의 TV 프로그램들이나 애니메이션들은 인터넷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만들었기 때문에, 이들을 인터넷으로 방송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인터넷만을 위한 컨텐트를 제작하는 것이 당장 수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사실도 아직까지 대규모 업체들의 참여를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독립 컨텐트 제작자들의 움직임은 활발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지난해 11월 뉴욕에서 열린 제3회 단편영화 페스티벌과 LA에서 열린 레스페스트 디지털 필름 페스티벌(resfest.com)에서도 드러났다. 인터넷을 염두에 두고 만드는 작품들의 출품이 눈에 띄게 늘어난 데다가, 페스티벌 기간중 열린 관련업계 종사자들과의 토론에 엄청난 관객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객들의 뜨거운 열기에 찬물을 끼얹듯 대부분의 토론 참가자들은 ‘현상태에서 웹캐스팅 업체로부터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약 100달러 정도의 제작비’라는 현실을 강조했다. 디지털 캠코더와 편집시스템의 가격이 폭락하고 있어 당연히 제작비도 낮아지기 때문에, 웹캐스팅 업체들의 입장에서는 굳이 제작비를 지원해줄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POP.com과 같은 형태의 대규모 웹캐스팅 업체의 등장으로 컨텐트의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데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인터랙티브 애니메이션/게임 제작의 선두주자라할 수 있는 Shockwave.com이 이미 자사의 인터넷용 애니메이션 툴인 shockwave로 제작된 컨텐트만으로 성공적인 웹캐스팅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좋은 예다. 게다가 얼마 전 Shockwave.com은 TV 애니메이션 <사우스 파크>의 제작자들과 별도의 계약을 통해, Shockwave.com에서만 상영될 새로운 애니메이션을 만들 예정이라고 밝히기까지 했다.
TV나 영화와 싸울 생각 없다
이런 Shockwave.com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웹캐스팅 업체들이 컨텐트 확보를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간 것도 사실이다. 인터넷을 통한 웹캐스팅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 중에서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Atomfilms.com과 Ifilm.net의 현 상황은 이를 잘 대변해준다. 매일 전세계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컨텐트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사용자들을 끌어당길 만한 킬러 컨텐트를 찾기가 힘들다는 것이 그들이 당면한 문제다. 따라서 이미 하루에도 두세개씩 만들어지고 있는 다른 웹캐스팅 업체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양질의 컨텐트 제작을 위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조성된 것이다.
또한 대규모 엔터테인먼트 업체들의 시장진출도 웹캐스팅 산업의 새로운 변수다. 이미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는 Shockwave.com과 올 봄 서비스를 시작할 POP.com을 제외하고도 이 분야에 뛰어들었거나 준비를 하고 있는 대규모 엔터테인먼트 업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미 서비스를 시작한 워너브러더스 계열의 Entertaindom.com이다. <신과 악마의 쇼>(The God and Devil Show)라는 제목의 독특한 쇼를 방송해 화제가 된 Entertaindom.com은 조지 루카스와 같은 유명인사 한명을 골라 신과 악마가 토크쇼를 한 후, 마지막에 그를 천국으로 보낼지 지옥으로 보낼지 시청자들의 투표로 결정하는 독특한 형식이다. 물론 Entertaindom.com이 아직까지는 워너브러더스가 보유한 방송, 영화 컨텐트를 활용하거나 홍보하는 역할에 더 집중하고 있지만, <신과 악마의 쇼>와 같은 킬러 컨텐트들을 계속 생산해 다른 웹캐스팅 회사들과 경쟁할 것만은 틀림없다.
결국 웹캐스팅 산업 역시 CATV가 그랬던 것처럼 전문화한 서비스의 증가와 양질의 컨텐트 확보를 위한 경쟁이 벌어질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이런 웹캐스팅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미국 미디어 산업의 시장 규모는 1998년 4610억달러에서 2003년에는 6300억달러에 육박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방송과 영화는 인터넷에 밀려 사라질 운명에 처할까? 정답은 ‘절대 아니다’이다. 비디오, DVD가 그랬듯이 인터넷이 방송과 영화의 새로운 배급 채널의 역할을 하며 시장을 확대시켜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스필버그가 ‘TV와 영화에 대항해 싸울 생각은 전혀 없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