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5년 디지달씨의 하루, "20세기 인간들은 불편했겠어…"
“아니, 영화 하나 만드는 데 정말로 이런 것들이 필요했다는 거야?”
디지달씨는 ‘영화의 역사’ 과목 첫 시간에 인터넷II 영화학교가 실시간으로 전송해준 이른바 ‘필름’이라는 것의 3차원 입체영상을 보며 눈앞의 모니터를 향해 이렇게 내뱉었다. 20세기에는 전화를 쓰기 위해서 전화선 설치공사를 대대적으로 해야 했던 바보 같은 때가 있었다는 사실을 그의 직업상 알고 있었지만, 불과 95년 전인 2000년까지도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필름이라는 것이 필요했다는 사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필름의 모양이라는 것도 일단 이상해 보이는 데다가, 그걸로 영화를 찍기 위해 수백명의 사람들이 달라붙어 촬영을 한 후, 다시 현상이라는 것을 해 자르고 이어붙여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설명까지 듣고 나니 ‘20세기의 인간들이란 정말 불쌍했구나’라는 생각마저 떠올랐다.
남들로부터 최고의 직업이라고 인정받는 이동통신 전자상거래(m-business) 컨설턴트로 일하는 그가 인터넷II 영화학교에 등록해 ‘영화의 역사’ 과정을 수강하게 된 것은 얼마 전 우연히 가족과 함께 찾은 유니버설 스튜디오-서울에서의 진기한 경험 때문이었다. 그 진기한 경험이란 오픈 20주년을 기념해 그곳에서 마련된 영화 200년 특별 체험관에서, 100여년 전의 영화 <쥬라기 공원>을 보다가 중간에 화면과 소리가 이상하게 일그러지면서 영화의 상영이 중단되었던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생전 처음 겪은 일이라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알고 보니 ‘필름’이라는 것으로 영화를 상영할 당시에 서울 시내 주요 극장에서 이와 비슷한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를 체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일부러 조작한 것이라는 설명이 흘러나왔던 것. 그런 독특한 스릴에 매료된 디지달씨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자신이 원하는 컨텐트를 인터넷II에서 대신 검색해주는 웹 에이전트인 ‘디지털 마당쇠’의 추천에 따라 ‘영화의 역사’ 과정을 수강하게 된 것이다.
첫날의 강의를 다 끝낸 디지달씨는 귀에 걸치고 있던 모니터를 잠시 벗었다. 그 모니터는 최근에 나온 신제품이라 귀에서 연결되어 양쪽 눈 바로 앞에 위치하는 약 1cm×1cm 크기의 투명 모니터만으로도 160m×90m 정도의 스크린을 보는 듯한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거실에서 한쪽 벽면을 차지하는 디지털 TV를 보고 있던 아내가 영화를 보자고 부추기자 디지달씨는 다시 모니터를 귀에 걸며 아내의 옆에 앉았다. 아내는 평소에도 귀에 걸쳐 눈앞에 위치하는 이런 모니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냥 대형 디지털 TV로 영화를 보기로 했다. 영화는 디지털 마당쇠가 두 사람의 취향에 맞춰 제안한 <백악기 공원5>. 조지 스필버그의 작품으로 이미 우리말 대사에 맞추어 배우들의 입모양이 디지털로 조절된 작품이라 편안히 볼 수 있다는 설명과 함께 영화가 시작되었다.
영화를 보는 중간에 두 사람의 뇌파를 분석한 디지털 마당쇠가 조금씩 다른 스토리로 영화를 전개시켜주기 때문에, 시작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디지달씨와 아내는 전혀 다른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디지달씨는 앞서 들은 ‘영화의 역사’ 강의를 떠올리며, 이 영화의 제작과정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를 알아챈 디지털 마당쇠는 스크린의 한쪽 면에 영화 속 장면이 제작되는 과정을 함께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 제작과정 동영상은 손가락만한 디지털 카메라로 영화의 배경이 될 지역들의 모습을 손수 촬영하는 조지 스필버그의 모습과 컴퓨터를 통해 만들어진 가상의 배우들인 톰 닐, 제프 실버브럼, 로라 웰던 등을 그 배경 위에서 합성시키는 그의 작업방식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영화의 인터랙티브 버전이 인터넷II에 공개되기 전, 조지 스필버그가 그의 개인위성을 통해 전세계 2만여 디지털 극장에 영화를 개봉하던 과정도 상세히 설명되었다.
“20세기 인간들은 불편했겠어….” 이를 보고 있던 디지달씨는 다시 한번 이렇게 되뇌었다. 그때 그의 생각을 포착한 디지털 마당쇠는 모니터에 100년 전의 영화제작과정과 현재의 영화제작과정을 비교분석한 결과가 있으니 시뮬레이션으로 직접 체험하고 싶지 않냐고 제안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