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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한국영화 신작 프로젝트 [2] - <플란다스의 개> 外

<플란다스의 개>

이런영화

중산층이 모여사는 한 아파트에서 애완견 한 마리가 실종된다. 사실은 교수가 못 돼 안달하는 윤주(이성재)가 개 짖는 소리를 견디다 못해 개를 납치해 아파트 지하실에 가둔 것. 정작 시끄럽게 짖는 개는 따로 있었다는 게 문제. 여하튼 개를 찾느라고 정의파 처녀 현남(배두나)이 나서 난리법석인 동안 또 한 마리의 개가 실종된다. 윤주의 스트레스는 더욱 강해지고 아파트 경비원의 수상한 행동이 드러나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가 출몰하면서 사건은 더 미궁으로 빠져드는데, 여기에 세 번째 강아지 실종사건이 벌어진다.

영화아카데미 11기 졸업생이며 단편 <지리멸렬>로 이미 재능을 인정받은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우스꽝스럽고 기괴하면서도 아자기한 오락영화라는 게 봉 감독의 말이다. 사건이 진행됨에 따라 평범해 보이던 사람들이 잔인성, 비굴함, 나약함을 드러내고 이 때문에 사건은 더욱 가파르게 흘러간다. 진중한 메시지를 내세우는 건 아니지만, 이야기의 재미 속에 도시인의 잃어버린 순수성을 반추하겠다는 의도도 슬며시 묻어두었다. 동화 <플란다스의 개>와는 직접 관련이 없지만, 동화적 환상을 가미한 ‘성인의 동화’라는 점에선 통하는 점이 없지 않다.

감독 한마디

“일상을 재료로 장르영화보다 더 재미있고 아기자기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일상의 힘겨움이나 슬픔을 파헤치겠다는 게 아니라, 일상을 소재로 한 오락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거다. 일상 속에 숨겨진 비일상성, 슬픔 뒤에 숨겨진 기쁨, 우리 삶 속에 존재하는 이중성이 뒤로 갈수록 가파르게 드러나는 영화가 될 거다. 조용한 동네에서 출발한 마을버스가 브레이크가 파열돼 비탈길을 질주하는 스릴있는 영화. 전체적 톤은 동화적 느낌이 나도록 소프트하면서도 깔끔하게 유지하고 싶다. 이 이야기 자체는 초등학교 때 아파트 옥상에서 그을린 흔적의 강아지 가죽을 보았던 어린 날의 충격적 기억에서 착안했다. 기본적으론 도회적이지만 따뜻하고 몽환적인 정서가 묻어나도록 의도했다.”

<산책>

이런 영화

뭣 하나 중뿔 날 것 없는 우리의 일상이, 실은 세상의 비밀을 푸는 열쇠였던 건 아닐까? <산책>은 숨가뿐 일상의 호흡을 늦추고 우리 삶의 언저리를 서성이게 만드는 영화다. 마치 산책길을 소요하듯 천천히, 그리고 한가로이. <편지>로 하고많은 여성관객을 울렸던 이정국 감독은 30대 중반을 지나는 대학동기 네명의 일상을 담는다. 그들 중 첫사랑의 순정을 잊지 못하는 영훈과 어느 날 갑자기 영훈의 레코드 가게로 뛰어들어온 전직 술집작부 연화의 사연이 중심축을 이루지만, 감독은 다른 세 친구에게도 골고루 시선을 나누어준다. 이들의 가정과 직장생활에서 인생의 경로를 수정할 극단의 사건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는다. 병든 아내가 회복하면 함께 여행을 다니겠노라며 전국각지의 미려한 산책로를 사진으로 찍어왔지만, 아내를 잃고 실어증에 걸린 영훈 아버지의 이야기가 그나마 극적이라고 할 만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사소한 파고를 일으키는 일상의 순간순간을 감당하기가 이들에게는 쉽지 않다. 소박한 주제에 화면을 맞추기 위해 감독은 “테크닉을 철저히 배제하고 카메라의 원시성을 살리려” 했다. 카메라는 끝까지 미동도 않은 채 이들의 삶을 바라만 본다. 크레인이나 달리숏이 없는 건 물론이다. 이로써 <산책>은 일상에 숨은 다단한 삶의 결을 훑어가면서 검박한 감동을 안겨주려고 한다.

감독 한마디

“시나리오를 보고 ‘산책’이라는 제목이 맘에 들었다. 요즘에는 폭력이나 섹스를 다루는 영화들이 많다. 그런 영화는 자극적이고 극적이다. 난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함으로써 잔잔한 감동을 주고 싶었다. 마치 유기농법으로 재배된 무공해 청정 농산물처럼 담백한 감동을 말이다. 이제는 우리 자신을 돌볼 때다. 대학동기 네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자극적이지 않고 잔잔한. 30대 중반 남성이 중심축이지만 여기에 10대, 20대, 50대 등 다양한 세대의 이야기를 봉합하려고 했다. <산책> 전에 만든 <두 여자 이야기>와 <편지>의 장점을 아우르려고 했고 일상성을 강조하려고 했다. <산책>의 장르를 말하기는 어려운데, 자연주의 멜로라고 붙여봤다. <편지> 같은 멜로는 아니지만 네 남자 각각의 이야기는 멜로적이다. 그들의 이야기에 자연스런 일상을 담았다. 내가 생각하는 세상, 여자, 결혼, 연애가 그들 속에 녹아 있다. 지금까지 만든 영화 중 <산책>은 나와 가장 가까운 영화다.”

<>

이런 영화

<강원도의 힘>의 경찰관이 <파란대문>의 창녀를 만났다? 바람피는 애인을 살해한 경찰관이 외딴 낚시터로 몸을 피한다. 그런데 이 낚시터는 그저 물고기 잡자고 오는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 아니다. 좌대에 자리잡은 사람들은 낚싯대를 드리워놓고 여자를 불러 찰라의 쾌락에 취하곤 한다. 이곳에 티켓다방 아가씨들을 배에 태워 좌대까지 안내하는 여자가 있다. 여자는 좌대에 틀어박혀 자살하려던 경찰관을 구해준 뒤 이 남자에게 집착한다. 발정기가 되서 몸을 떨고 침을 흘리는 동물처럼 둘은 하나가 된다. 이야기에서 벌써 끈적하고 비린내나는 김기덕 감독의 취향이 드러난다. <>은 물안개가 자욱한 낚시터를 무대로 낚시바늘을 삼키는 듯한 아픔을 전하는 영화다. 촬영은 경기도 안성 고삼저수지에서 지난해 11월 말까지 진행됐다. 순제작비 5억원이 안 되는 영화지만 조명과 세트만큼은 10억원 이상 투자한 영화들 못지 않다. 감독은 ‘동양화같은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사실 <>을 구상한 계기도 우연히 물위에 떠있는 낚시 좌대를 본 것이고 수평적 구도에 여백이 많은 화면은 격렬하고 자극적인 이야기와 묘한 조화를 이룬다.

감독 한마디

“저열하고 파괴적이지만 강렬하고 아름다운 영화로 만들고 싶다. 극단적 사랑은 곧 집착으로 변하고 그로 인한 행위들이 우리를 억압하는 분노로 자리잡기도 하지만 그것은 때로 삶을 지탱하는 강한 에너지로 변모한다. 극단의 감정에 도달하더라도 ‘사회’ ‘제도’라는 틀 속에서 표현하지 못하고 억누르게 된다. 즉 마음으로만 증오하고 살인한다. 이 영화를 통해 실현되기 힘든 극단의 감정을 이미지와 행위를 통해 묘사해 보고 싶다. 사랑은 인간이 서로 부여하는 최면이다. 섬은 늘 우리가 찾아가고 싶어 동경하지만 금새 싫증나 도망가고 싶은 공간이다. 즉, 섬은 남자에겐 여자이고 여자에겐 남자이기도 하다. 그 사이에서 비롯되는 남자와 여자의 극단의 심리를 그리고 싶다. <>은 행위극이라기 보다 심리극이다. 섹스, 집착, 살의, 분노 같은 것이야말로 역동적인 삶의 에너지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사랑은 도,즉 무소유의 상태에 도달한다. 더이상 집착하지 않고 모든 걸 떠나보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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