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하는 ‘입장권 표준전산망’(전산망) 사업에 대해 재검토 필요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국세청과 문화부가 전산망 사업을 ‘밀어붙일’ 태세여서 주목된다. 국세청이 최근 ‘극장들의 표준전산망 가입 실적이 저조해 1월까지 가입하도록 다시 한번 권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데 이어 문화부도 ‘적극 추진’ 방침을 천명하고 나선 것.
문화부는 지난 1월27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전산망에 가입하는 극장에는 스크린쿼터 20일을 감면해주고, 전산망을 구축하는 극장에는 영화진흥기금 50억원으로 연리 3.5%에 융자해주기로 했다”며 “전산망에 가입한 극장에 대해서는 부가세를 2% 환급해 주는 방안도 국세청과 협의중”이라고 밝혔다. 문화부가 이런 ‘당근’을 마련한 것은 전산망 가입을 꺼리는 극장주들에게 가입할 명분을 주고, 지지부진한 전산망 구축 사업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실제로 간담회를 연 문화부 오지철 문화정책국장도 그런 의도를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산망을 설치하기 위해 드는 500만∼1천만원의 비용 때문에 가입을 꺼리는 극장이 많지 않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면 썩 구미가 당기는 ‘미끼’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오지철 국장은 이미 전산 장비를 갖추고 있어 소프트웨어만 필요한 극장은 입장권 1장당 90원, 전산장비까지 제공받는 극장은 1장당 150원의 수수료를 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첨예한 사안으로 논란이 됐던 수수료 금액을 밝히기는 처음이다.
지정시스템을 거부하는 복합관
문화부가 이처럼 팔 걷어붙이고 나선 것은 지난해 9월 국세청 고시 개정을 신호탄으로 전산망 사업을 본격 추진했으나 극장에 ‘잘 먹혀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세청까지 나서 ‘강권’하고 있지만 문화부가 지정한 티켓링크 시스템에 대해 극장쪽 반응은 시큰둥하다. 이미 민간업체가 개발한 시스템을 쓰고 있는 극장들은 “굳이 바꿀 필요성이 없지 않느냐”고 항변하고, 새로 생기는 극장이나 새로 전산망을 설치하는 극장들은 “티켓링크보다 나은 조건을 가진 시스템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태도다. 실제로 티켓링크쪽이 지난해 9월부터 국세청 고시와 문화부가 지정시스템이라는 ‘무기’를 앞세워 극장주들을 설득했으나 성과는 신통치 않다. 현재 티켓링크 시스템을 설치한 극장은 14곳 정도로 변두리극장이 많다. 티켓링크쪽에서는 “신청서를 낸 극장은 23곳 정도”라고 밝히고 있지만 ‘정부 지정 시스템’이라는 간판이 무색한 수치다. 이미 서울극장 라인 등 30여곳에 전산망을 구축하고 있는 저스트기획은 이 와중에도 10여곳이 더 늘었으며, 29일 개관한 동대문의 10개관짜리 24시간 극장 MMC은 한국컴퓨터 시스템을 택했다. 이 밖에 자체 시스템을 개발해 사용하는 제일제당의 CGV, 길라잡이 등 업체에서 관리하는 극장까지 더하면 티켓링크의 실적은 더욱 빈약해 보인다. 문화부와 지구촌문화정보에서는 “기술력의 차이가 아니라 정부가 지정한 시스템이라는 데 대한 극장주들의 일종의 반발심리와 덤핑이 큰 요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 다른 업체들은 ‘기술력’에 대해 할말이 많다. 한국컴퓨터가 MMC의 전산망으로 결정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MMC에서는 몇 가지 기능에서 우열이 명확하게 갈라졌다. MMC쪽에서는 “발권 조작의 편리성, 처리 속도, 시스템의 안정성에서 한국컴퓨터쪽이 나았다”고 말하고, “결정적인 요인은 무인발매기(ATM)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전산망 사업에서 중요한 건 하드웨어가 아니라 관객에 대한 서비스 경쟁”이라는 한국컴퓨터쪽의 주장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MMC의 경우 입지조건과 24시간 상용극장이라는 점 때문에 ATM이 필수적인데 “티켓링크는 ATM을 새로 개발해야 하지만 한국컴퓨터는 바로 사용이 가능했다”는 MMC 관계자의 말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 한국컴퓨터가 운영하고 있는 ATM은 전국에 300여대, 이중 70∼80%가 수도권에 설치되어 있으며 머지않아 1000여대까지 늘릴 계획이다. 상당수가 편의점 등 24시간 사용 가능한 곳에 설치되어 있고, 신용카드 사용이 가능해 ATM을 통한 극장표 예매가 보편화하면 상당한 폭발력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한국컴퓨터의 경우 온라인으로 연결된 190개 우체국과 550개 주택은행 지점의 전산망을 관리하고 있어 우체국과 주택은행 창구에서도 극장표 판매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예매 형태의 발권시스템은 실시간 체크가 안 되고 표를 할당받아 판매하는 근본적인 한계는 풀어야 할 숙제다.
컨소시엄 실질적 지분, 발표와 달라
한편 전산망 업체에서 수수료를 받는 것에 대해서도 이견이 많다. 극장은 “수수료 개념이 아니라 보수·유지비 개념이어야 한다”는 것. 스포츠 경기장, 비상설 공연장 등은 수수료를 받는 것이 타당하지만 1년 내내 문을 여는 극장에서 입장권마다 수수료를 받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를테면 회선사용료, 시스템 유지보수비, 업그레이드 등에 드는 비용을 매월 스크린당 정액제로 받고 수수료를 받지 않는 대신 일정액의 예매수수료를 받아 보전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유지보수비를 받겠다는 업체들이 잠정 책정한 금액은 기본 월 30만원 정도에 스크린 하나당 10만원 정도를 추가하는 방식이다. 1년에 100만명이 드는 극장이라면 수수료를 150원씩 계산했을 경우 1억5천만원을 전산망 사업자에게 수수료로 지불해야 하지만 스크린당 유지보수비를 받았을 때는 스크린이 10개인 극장의 경우 입장권 구입비까지 포함해 1년에 2천∼3천만원이면 충분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정부가 단일 시스템을 고집할 게 아니라 적정 기준을 충족하는 개별 시스템을 인정하고, 필요한 데이터만 취합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전산망 사업체들이 공동 출연해 별도법인의 관리회사를 만들어 이곳에 서버를 모아두고 감독 관청의 전산전문가가 상주하면 국세청에서 우려하는 조작이나 탈세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탈루를 위해서는 표를 팔았다가 취소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이 역시 서버에 기록이 남기 때문에 발권 취소가 많은 극장에 대해서 집중 관리를 하는 데도 효율적이라는 것. 또 이럴 경우 데이터를 공유하는 프로그램 개발에 상당한 비용이 든다는 문화부와 티켓링크쪽 주장에 대해서도 업계에서는 의견이 다르다. 이들은 “티켓링크의 경우 캐나다에서 들여온 시스템이라 소스가 없기 때문에 많은 비용이 들지 모르지만, 국내에서 개발한 시스템은 표준 프로토콜만 개발하면 되는 복잡하지 않은 기술”이라고 주장한다. “은행공동망의 타행이체도 같은 원리”라고 설명한다.
한편 문화부가 ‘독점 혐의’를 해명하면서 지구촌문화정보와 한국정보통신이 50:50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했고, 특정주주의 지분율을 낮추겠다는 구상도 실현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지난해 9월에 나온 <상장회사편람>에 따르면 한국정보통신의 지구촌문화정보 지분이 오히려 75.4%로 높아진 것은 문화부의 탁상공론임을 입증하는 단서다.
현재 상황과 추이를 놓고 보면 최악의 경우 문화부가 지정한 전산망에 가입한 극장보다 ‘비지정’ 시스템에 가입하는 극장이 월등히 많은 상황도 가정할 수 있다. 문화부는 공신력을 지킬 욕심으로 무리한 사업을 강행할 것이 아니라, 각계의 의견에 모아 전산망 사업을 전면 재점토 해야 한다는 주장에 귀기울여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