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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쿨레쇼프 (Lev Kuleshov)

1899-01-01

기본정보

  • 직업감독
  • 생년월일1899-01-01
  • 사망1970-03-30
  • 성별

소개

대표작 <죽음의 광선> <법대로>

러시아의 무성영화감독이며 이론가. 지가 베르토프가 그랬던 것처럼 편집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모스크바영화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그의 제자들인 에이젠슈테인과 푸도프킨에게 편집을 사실상의 창조적 과정 그 자체와 동의어로 만드는 데 강력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기도 하다. 제정 러시아에서 태어나 소련연방공화국에서 사망한 쿨레쇼프는 15살 때 이미 모스크바의 미술학교에 다니며 여성지의 패션디자인을 담당하기도 했다. 17살 때 영화의 세트를 담당하면서 영화계와 인연을 맺었고 18살에 탐정영화인 <기계공 프라이타의 프로젝트 Proyekt Inshenera Praita>(1918)로 감독에 데뷔한다. 혁명기 동안 모스크바 필름스튜디오의 뉴스릴 담당자로 일했으며 1919년 모스크바국립학교의 창설멤버로 1921년 자신의 영화 워크숍 ‘Kuleshov Collective’를 개최하면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영화 이론을 소개했다. 그는 처음으로 몽타주라는 용어를 만들어냈고, 유명한 ‘Kuleshov Effect’도 이 시기에 선보였는데 이를 통해 같은 배우의 동일한 표현이 어떻게 편집되는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는 에이젠슈테인이 주장했던 ‘typage’의 개념을 전혀 믿지 않았고, 배우들을 훈련시키는 대신 그들을 모델이라 지칭하면서 최소한의 제스처와 노력으로 최대한의 영화적 표현력을 얻는 데 주력했다.

소비에트연방하의 극심한 물자부족으로 생필름을 구할 수 없게 되자 쿨레쇼프는 레퍼토리극단을 창립하여 필름 없는 카메라로 행해지는 일련의 연출 실험들을 계속한다. 1924년 필름을 구할 수 있게 되면서 본격적인 감독일을 재개한 그는 러시아에 온 멍청한 미국인에 관한 코미디 <볼셰비키나라에 온 웨스트씨의 모험 Neobychainye Priklyucheniya Mis-tera vesta v Strane Bolshevikov>(1924)을 만들었다. 이 작품과 공상과학 영화인 <죽음의 광선 Luch smerti>은 러시아 관객들에게 크게 인기를 끌었는데, 그러나 그를 못마땅히 여긴 러시아 당국은 그의 극단을 해체시키고 영화예산도 삭감했다. 1926년 잭 런던의 소설 <The Unexpected>를 영화화한 심리 드라마 <법대로 Po sakonu>는 비평적인 면에서 크게 성공을 거두었으나 역시 소련 당국은 이 작품이 이데올로기적 신념이 빈약하다는 이유로 그의 영화제작에 많은 제약을 가한다. 쿨레쇼프의 감독 활동은 사실상 1933년을 기점으로 거의 중단됐으며 그의 첫번째 유성영화 <Great Consoler Velikii Uteshitel>(1933)는 표면적으로는 미국의 극작가 오 헨리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소련 같은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예술가의 역할을 탐구한 안내서였다.

그후 쿨레쇼프는 자신의 에너지를 영화학자의 역할에 쏟으면서 <영화연출의 기초> 같은 다수의 영화이론서를 발표했고 1940년대에서 1944년까지 2차 세계대전 동안 잠시 감독일에 복귀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스크바영화학교의 교장으로서 후학을 길러내는 일에 전념했다.1960년 제이 레이더가 <키노>를 창간하면서 그간 잊혀졌던 영화적 업적도 다시 조명을 받게 됐다. 특히 몽타주 이론의 개척자로서, 푸도프킨과 다른 소련 무성영화감독의 스승으로서, 소련에서조차 잊혀진 영화감독이었던 쿨레쇼프는 서방세계에 다시 알려지게 됐고, ‘우리는 활동사진을 만들었고 그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푸도프킨의 말로 요약되듯, 그는 러시아영화의 아버지로 추앙받으며 무성영화역사에서의 그의 역할도 제대로 평가받게 됐다. / 영화감독사전,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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