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은 전설이 되고, 그의 인생은 역사가 되었다!
20살의 ‘알렉산더’, 위대한 대왕의 서광을 비추다!B.C 356년 마케도니아의 군주이자 용맹한 장수 ‘필립’(발 킬머)에게 한 아들이 태어난다. 그의 이름은 ‘알렉산더’(콜린 파렐). 고집스러운 전쟁영웅인 아버지와 정치적 야망에 빠져 버린 어머니 ‘올림피아’(안젤리나 졸리), 그리고 왕권 계승의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이 왕자는 스스로를 지켜야만 했다. 위대한 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만난 ‘알렉산더’는 그리스 신화에 심취하고 모든 지혜와 학문을 접하면서 강인함과 거대한 포부를 키워나가게 된다. 그렇게 세상을 향한 꿈을 키워가던 스무 살. 부왕 필립의 암살로 인해 마케도니아는 왕권 계승이라는 분란에 임박한다. 그러나 이미 이 왕자가 보여준 용기와 지혜, 그리고 견줄 수 없는 위엄은 군대가 ‘알렉산더’를 왕으로 추대하게 만든다. 바야흐로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나가가겠다는 젊은 왕의 위대한 이상이 역사 위에 펼쳐지는 순간이 온 것이다.
세상의 끝이 보일 때까지, 神이 나를 부를 때까지 멈추지 말라!
‘알렉산더 대왕’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페르시아를 향해 군대를 이끌고 나섰다. 그러나 그의 야망은 근접국의 정복이 아닌 세계 재패였다. 무적불패의 그리스 마케도니아 군대와 더불어 3,500,000 킬로미터에 달하는 8년간의 정복행진이 시작된 것이다. 평생의 친구이며 지휘관인 ‘헤파이션’(자레드 레토)과 충직한 장군이며 절친한 친구인 ‘톨레미’(안소니 홉킨스)와 함께한 ‘알렉산더’는 사정없이 그의 군대를 사막과 산, 미지의 정글, 신비로운 땅으로 독려했다. 페르시아와 서아시아 이집트와 인도에 이르기까지. 단 한번의 패배도 용납하지 않으며 ‘알렉산더’는 감히 그에게 대응하는 모든 군대를 정복해 나갔다. 세상의 끝을 향해 달려 가는 대왕 ‘알렉산더’의 뜨거운 열정 앞에 신들조차도 그 길을 열어 주었다.
영광의 제국을 뒤로 하고 홀로 떠나다.
그러나 어떤 위대한 자도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가장 절친한 친구인 ‘헤파이션’은 전장에서 죽음을 당하고 세계를 통일하기 위한 민족동화정책은 각 민족의 반대에 부딪혔다. ‘알렉산더’는 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점차 고립되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그는 극한에 다다르는 전투에 몸을 맡겼고 오직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그리고 33세라는 화려한 인생의 시기에 그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열병으로 누구보다 강렬하고 거대했던 삶을 짧게 마감했다.
동영상 (1)
- 제작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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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스톤이 지휘한 알렉산더의 군대!more
- 5,210벌의 의상, 1,430명의 엑스트라,
현역군인 420명 그리고 2년여의 작업기간!!
규모에 상관없이 모든 영화 제작에는 여러 부서 간, 수많은 사람들 간의 업무 협조가 필요하다. 그러나 [알렉산더]와 같은 규모의 영화는 대규모의 군사 작전에 맞먹는 작업이 요구된다.
[알렉산더] 제작진은 하나의 군대와 같이 많은 작업을 했다. 주도면밀하게 짜여진 전력이 자로 잰 듯 정확하면서도 그때그때 생기는 변수들에 대처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실행되고, 필요에 따라 공수되고 사용되는 엄청난 인력과 물자를 적절히 배치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약 2천명의 인력이 각자의 영역에서 [알렉산더] 제작을 위해 헌신했다.
촬영이 이루어진 5개국에서 뿐만 아니라 파키스탄과 이탈리아 같은 나라들에서도 뛰어난 예술가와 장인들이 영화에 필요한 아이템 제작에 참여했다. 실제로 가우가멜라에 있는 촬영 베이스 캠프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여기에는 각종 도구 트럭과 배우의 트레일러, 분장실 등이 있었다. 수 천명의 의상과 소품을 보관하는 거대한 의상 텐트와 마구간, 전차와 고대 차량들의 주차장도 있었다. 또한 군인들을 위한 막사에는 엑스트라로 참여한 수 백의 실제 군인들이 묵고 있었다. 게다가 전 세계를 아우르는 다국적 캐스팅으로 인해 매일 세 가지 요리, 영국식, 모로코식, 인도식 요리로 수 천 명의 음식을 만들어 내는 이동 주방까지, 실로 한 제국의 원정대에 어울리는 규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만약 영화 [알렉산더]의 제작이 뭔가를 증명해 보이는 거라면 그것은 이 정도로 거대한 스케일의 영화 제작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알렉산더] 제작이 역사, 신화, 이상에 대한 열정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라면 어떠한 고통이 따른다 할지라도 그런 내용으로 탄생될 수밖에 없다.
거의 6개월 동안의 촬영(본 촬영이 시작되기 2년 전부터 작업을 시작한 사람도 많이 있다.)이 끝난 시점에서 출연진과 제작진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결과는 수단을 정당화 한다.” 결국 관계자들은 그들이 두 개의 군대에서 복무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올리버 스톤의 군대와 알렉산더의 군대.
마침내 불패의 마케도니아 기병대 탄생하다!
- 전사로 태어나기 위한 훈련들
알렉산더의 일생은 하루 하루가 전쟁이었다. 단 한번의 패배도 없이 13년을 달려온 그의 부하들도 전투에는 이골이 나 있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영화 [알렉산더]에는 군사 고문관이 큰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초청된 인물이 바로 데일 다이.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영화계의 신병훈련소(군인 역을 맡은 배우들의 훈련소)를 30년 전 고안해 낸 장본인이다.(플래툰 제작을 위해서였다.)
다이는 이전의 어떤 일보다도 골치 아픈 임무를 떠맡았다. 수십 명의 배우와 수백 명의 엑스트라가 고대 전쟁의 전문가가 되도록 훈련시키는 것과 아울러 2천년 전에 사라진 고대 전투와 전략을 정확히 재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이에게 이 일은 17세 이래로 무의식적으로 준비해오던 것이었다. 당시 그는 군사학교에서 알렉산더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콜린 파렐을 포함해 전투 장면을 촬영해야 하는 배우들은 모두 혹독한 훈련을 거쳤다. 3주간의 훈련은 모로코의 사막에서 진행되었다. 텐트 생활을 하며 음식은 스스로 해결하고, 뜨거운 태양 아래 피부가 검게 그을리게 되는 짧지 않은 시간이다. 다이와 훈련팀이 짠 캠프 스케줄은 모든 참가자들의 감정과 육체를 한계까지 밀어붙였다. 캠프에서 칼과 방패, 활과 화살, 철퇴와 창 등 다양한 고대 병기의 훈련은 필수적이었다.
그리고 무적의 기병대로 유명한 마케도니아 군에게 너무도 당연한 승마 훈련을 위해서 스페인의 승마 선수인 리카르도 크루즈 모랄이 영입되었다. 그 외에 전차를 끄는 방법, 공격적인 정신 상태가 되는 훈련, 고대 종교 세미나, 낙마와 부상, 죽음에 관한 교육, 위생과 동,식물학 등 5천년 전의 군인이 되기 위해 배우들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다이는 “나는 배우들을 훈련시킨 것이 아니라 군인이 될 사람들을 훈련시켰다.”라고 단호히 말한다. 결국 배우들은 자신이 군인이라는 사실을 심장에 새긴 마케도니아 군인으로 다시 태어났고 또한 전우와 함께 하는 전투 자체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고대의 신, 알렉산더의 재탄생을 축복하다!
[알렉산더]의 촬영은 너무나 고되고 험난한 일정의 연속이었다. 이는 신이라 불린 영웅의 일대기를 그리기 때문이었을까?
종종 어떤 신의 손길이 영화 [알렉산더]의 현장에 닿는 듯한 일들이 생기곤 했다. 가우가멜라의 전장이 내려다보이는 낭떠러지 위로 애마 부세팔라스를 타고 달리는 장면의 [알렉산더] 촬영 첫 날. 페르시아를 완전히 정복하게 되는 의미 깊은 전투이니 만큼 위대한 대왕의 얼굴로 찬란한 햇빛이 쏟아지는 순간을 잡아내야 했다. 그러나 지역 특성상 변화가 심한 날씨를 살피던 제작진은 절망하고 말았다. 돌연한 모래폭풍에 이어 비가 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스탭들은 앞으로의 고난을 예감하며 어쩔 수 없이 철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옛 신들의 미소가 드리워지는 듯한 불가사의한 사건이 벌어졌다.
“전 스탭이 산등성이 위에 집결해 있었다.” 촬영감독 로드리고 프리에토는 회상한다. “독수리 한 마리가 수평선 위에 나타났다. 우리는 모두 흥분했다.”
알렉산더가 자신의 운명을 따른다는 상징으로 솟구쳐 오르는 독수리를 따라가야 했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독수리는 매우 중요한 복선으로 가끔씩 등장한다. 그런데 진짜 독수리가 카메라가 보고 있는 앞에서 날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구름 사이로 찬란한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우리는 말을 탄 콜린, 재러드, 엘리어트의 뒤로 뭉게뭉게 피어 오르는 검은 구름이 깔리고 찬란한 햇살이 그들의 얼굴을 비추고 있는 완벽한 장면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자연이 만든 찬란한 빛의 기둥에 우리는 넋을 잃었고 영화의 첫 촬영으로 이보다 더 멋진 장면을 만들 수는 없었다.”
진짜 군인과 실제 무기 그리고 부활한 고대의 전법!
여기는 진짜 전쟁터였다!
“올리버는 사실성을 요구했다.”라고 스턴트 코디네이터 게리 파월은 말한다. 가우가멜라 전투 장면에서 수천 명의 군인들은 거의 진짜에 가까운 무기를 들고 한데 엉켰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많은 영화들이 보여준 과장된 전투 장면이 [알렉산더]에서도 보여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올리버와 스탭들은 고대의 전투 방식을 가장 가깝게 재현해 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배우와 스탭들의 부상 등 희생이 따랐지만 완벽한 진실과 정확성을 담은 끔찍한 전투 장면이 재현되었다. 제작 자문을 맡은 로빈 레인팍스는 처음 촬영지에 와서 마케도니아 기마병의 무구를 완전히 갖추고 말 위에 올라 있는 엑스트라들을 봤을 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내가 꿈꿔오던 전쟁 장면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다. 내가 30년 전에 알렉산더 전기에서 적었던 내용이 바로 내 눈 앞에서 생생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 역시 알렉산더에게 가장 의미 있었던 전투 중 하나인 가우가멜라 회전에서 알렉산더 군대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마치 현실처럼 펼쳐지는 광경에 알렉산더의 전기를 쓴 작가의 가슴은 심하게 요동쳤던 것이다.
7,000피트 고도의 요새와 정글을 만들다!
알렉산더와 스탭들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 9,037 피트 절벽 위에 천상의 문을 세우다!
제작진은 오늘날의 파키스탄에 속하는 고대 발크에 있는 요새를 보여주는 거대한 세트 장면을 찍기 위해 로어 아틀라스 산맥의 7,000피트 고도에 위치한 마을로 올라갔다.
이곳에는 2천년 전과 비슷한 삶을 이어오고 있는 버버족의 마을이 있다. 이곳 마을 중 한 곳을 촬영장으로 섭외하기 위해 스탭들은 실로 국제 외교전에 가까운 작업을 거쳐야 했다. 그들은 마을의 장로들과 빈번한 접촉을 유지하고 끈질기게 설득하는 한편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
결국 제작진은 사원과 수로, 그리고 가로등 같은 몇 가지 편의 시설을 지어주기로 약속하고 세트 건설에 착수할 수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숲 속 전투 장면을 위해 얀 롤프스는 정글을 만들어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건기를 맞은 태국에서 진행된 촬영 기간 내내 스탭들은 나무에 계속 물을 주며 숲을 지켜내야 했기 때문이다. 영화 촬영이 끝난 후 제작진은 그곳을 완벽하게 이전 상태로, 아니, 좀 더 푸르러진 숲을 남겨둔 채로 돌아왔다.
로어 아틀란티스 산맥에 발크 요새를 만들기 위한 눈물겨운 협상에 이어 이제 제작진은 고도 7,000피터의 산중에 세트를 지어야 했다. 이것으로 자재 공수부터 건설까지 20여 주가 걸린 세트 제작이 시작되었는데, 당시 난공불락의 성채였던 발크 요새를 재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보였다. 게다가 부족의 결혼식이 치러지는 내부 장식 등에는 엄청난 자료의 고증과 상상력이 필요했다.
아틀라스 산맥을 2천 피트 더 올라가서 알렉산더와 그의 군대가 눈 덮인 힌두쿠시를 가로지르는 장면을 촬영한 후에 제작진은 마라케치에 있는 존 인더스트리엘레로 하산했다. 이곳에는 기적처럼 바빌론의 성문이 높이 세워져 있었다. 바빌론 성문은 37피트 높이로 제작되었고, 이후에 시각 효과를 통해 80피트가 더 연장된다. 시각효과는 바빌론 시의 전체 파노라마를 창조하기도 한다. 문을 가로지르는 빗장은 진짜 청동으로 제작되었다. 문으로 이어지는 다리를 내려다보는 날개 달린 황소상은 영국에서 조각된 후 모로코로 옮겨져서 색칠을 거쳐 완성되었다. 이로써 고도 9,037피트에 달하는 거대한 성문을 지나 알렉산더는 바빌론을 정복하게 되었다.
배우와 스탭
감독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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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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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피아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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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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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미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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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파이스티온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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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산데르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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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산느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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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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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디카스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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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아르수스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