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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칼라스: 세기의 디바

Maria by Callas: In Her Own Words

2017 프랑스 전체 관람가

다큐멘터리 상영시간 : 113분

개봉일 : 2023-04-05 누적관객 : 28,048명

감독 : 톰 볼프

출연 : 마리아 칼라스(본인) more

  • 씨네216.33
  • 네티즌10.00

오페라보다 드라마틱한 인생
노래가 끝나면 삶이 시작된다!

뛰어난 곡 해석력과 마음을 울리는 연기로 전설이 된 디바 칼라스
하지만 화려한 무대를 내려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그녀, 마리아
모두가 사랑했지만 끝내 고독했던 디바의 일생이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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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12)


전문가 별점 (3명참여)

  • 6
    이다혜노래의 날개 위에 영원히
  • 6
    박평식세기의 열정과 통증
  • 7
    이용철같은 시대를 살았음에 자랑스러워지는, 진정한 전설
제작 노트
Chapter 1

“시간이 지울 수 없는 그녀의 궤적에 대한 오마주” - La Nacion

칼라스에게서 직접 듣는 인생 아리아
전설이 된 디바의 마지막 무대를 스크린에서 만난다!

세기의 전설이 된 디바, 마리아 칼라스의 오페라보다 드라마틱한 인생과 사랑을 담은 아트 다큐멘터리 <마리아 칼라스: 세기의 디바>가 ‘칼라스의 팬들에게는 선물이, 그녀를 몰랐던 이들에게는 새로운 세계로의 초대장이 될 것’(The Wrap)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개봉에 화제를 모았다.

<마리아 칼라스: 세기의 디바>의 감독 톰 볼프는 마리아 칼라스를 운명처럼 발견했다. 어느날 어떤 음반을 듣고 매혹된 톰 볼프 감독은 그 음반이 칼라스의 노래 녹음이었다는 것을 알고 ‘그날 이후 칼라스의 궤도 전체가 나에게 열렸다’며 세기의 디바였던 마리아 칼라스에 빠져들었다. 톰 볼프 감독은 칼라스의 일생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것을 결심하고 3년 동안 전 세계를 여행하며 자료를 수집했다. 칼라스의 전성기에 살았던 이들, 그녀와 가까운 친구, 동료들을 만난 볼프 감독은 팬과 지인들이 소장하고 있던 미공개, 희귀본 음반과 영상, 편지를 통해 인간 마리아 칼라스를 만날 수 있었다. 볼프 감독은 이것을 사망 3년 전 인터뷰와 함께 영화적으로 재구성하여 마리아 칼라스의 언어로 듣는 그녀의 인생 이야기를 영화로 구현해냈다. 영화에 담긴 자료의 50% 이상이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자료인 만큼, 제작사는 ‘칼라스에 관한 어떤 영화도 <마리아 칼라스: 세기의 디바>만큼 이미지와 사운드 자료를 풍부하게 보여주지는 못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생전 칼라스가 ‘내가 당신보다 먼저 죽거든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진정으로 어떤 사람이었는지 전해주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고, 약속대로 칼라스의 평전, “Maria: Callas Remembered”를 집필했던 절친한 친구, 나디아 스탠시오프 또한 영화 제작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레이터도, 사회자도 없다. 그저 칼라스가 무대에 오르고 내려오는 것을 허락할 뿐’(Rolling Stone)이라는 리뷰가 보여주듯, 영화는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의 문법과는 달리 나레이션이나 지인의 인터뷰 없이 오직 칼라스의 인터뷰와 편지, 공연 실황과 사적인 영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칼라스가 남긴 편지는 그녀의 인생을 극영화로 담은 <칼라스 포에버>의 주연 배우인 파니 아르당이 목소리 연기로 몰입을 도왔다. 칼라스 자신의 인터뷰로 시작하며 삶의 고비고비마다 그에 걸맞는 무대 영상이 나오는 구성은 신선하면서도 타자의 개입없이 온전히 칼라스의 언어로 전하는 그녀의 인생 이야기로 느껴져서 연민과 감동을 자아낸다. 사후 40년만에 만나는 그녀의 이야기는 세기의 디바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칼라스가 남긴 마지막 선물로 다가갈 것이다.


Chapter 2

“칼라스의 인생을 그녀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영화”
- The Independent Critics

“제 안에는 두 사람이 있어요. 마리아로 살고 싶지만 칼라스로서도 살아야해요”
모두가 사랑했던 세기의 디바, 칼라스의 이야기

영화의 오프닝 인터뷰에서 칼라스는 ‘내 안에는 칼라스와 마리아 두 사람이 있으며, 무대 위 화려한 디바로서의 ‘칼라스’와 한 여자로서의 ‘마리아’가 있다고 말한다. ‘마리아로 살고 싶지만 칼라스의 모습도 유지해야한다’며 디바 칼라스와 여자 마리아의 운명적 거리감과 공존을 이야기한다. 뉴욕 필하모닉의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인 레너드 번스타인이 ‘전율’이라고 표현할 만큼 칼라스는 당대 최고의 디바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한 여자 마리아가 그토록 원하던 영원한 사랑은 끝내 얻지 못했다.

1923년 미국, 그리스 출신의 부모님에게서 태어난 칼라스는 어린 시절 음악적 재능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며 어머니로부터 음악 활동을 강요받았다. 칼라스는 ‘어린 시절은 짧고 그 때를 마음껏 즐겨야 하는 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며 유년시절에 대한 아쉬움과 어머니에 대한 원망을 나타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머니, 언니와 함께 그리스로 간 칼라스는 나이를 속인 채 17살에 입학할 수 있는 그리스 국립 음악원에 13살에 입학하며 고된 수업과 경쟁을 시작한다. 뒤이어 입학한 아테네 음악원에서 칼라스는 세계적인 가수 엘비라 데 이달고에게 사사받는다. 이달고는 이 시절의 칼라스를 ‘같은 말을 두 번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똑똑하고, 가장 먼저 와서 가장 늦게까지 있었던’ 뛰어난 학생으로 회상했다. 칼라스는 아테네 음악원에서 이달고에게서 벨칸토 창법을 배운다. 벨칸토 창법은 18세기와 19세기 이탈리아 작곡가들로부터 확립된 화려하고, 기교적인 스타일로, ‘노르마’, ‘라 트라비아타’를 포함하여 칼라스가 노래한 대부분의 곡들이 이 창법이었다. 이후 칼라스는 이탈리아 베로나 아레나 극장에서 ‘라 조콘다’ 무대로 데뷔하고, 마에스트로 툴리오 세라핀에게 발탁되며 세계적인 소프라노로 발돋움한다. 조반니 바티스타 메네기니와의 결혼에 이어 다이어트로 40kg를 감량하고 패션에 눈을 뜨며 ‘칼라스 스타일’을 만들어낸 칼라스는 성공가도를 달리며 전성기를 누리지만, 어머니와의 불화, 언론에서 터트린 자극적인 스캔들로 지쳐간다. 소박한 행복을 원했으나 가수로서의 칼라스를 더 원했던 남편과 불화를 겪던 칼라스는 후에 인터뷰에서 ‘아이도 낳고 싶었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었지만 음악이라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며 회한을 드러낸다. 남편과의 갈등을 겪던 중 떠난 여행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를 만나고 칼라스는 이혼을 선언한다. 그러나 오나시스와의 사랑은 결국 그의 배신으로 막을 내린다.

칼라스는 ‘내 비망록은 노래 안에 담겨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니까요’라며 자신의 삶이 노래 그 자체였다고 말한다. 유일한 친구이자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었던 칼라스의 음악은 드라마틱한 인생을 알게 된 후에는 더욱 애틋하고 애절하게 느껴진다. 디바에게 노래는 살아내야 하는 삶이자 운명 그 자체였다.


Chapter 3

“자존심 때문에 인정하긴 싫지만 당신은 내 숨결이야”
세상 사람들에게는 세기의 스캔들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일생에 하나뿐이었던 사랑
마리아 칼라스와 아리스토 오나시스의 러브 스토리

오페라 가수로서 커리어의 정점에 있던 마리아 칼라스는 언론이 만든 자극적인 스캔들과 남편 메네기니와의 갈등으로 지쳐 있었다. 후에 결혼 생활이 파경에 이른 후 칼라스는 인터뷰에서 ‘남편은 내가 늘 여신이길 바랬다’며 자신이 바란 것은 집에 돌아왔을 때 기댈 어깨였을 뿐이지만 메네기니는 명예에 눈이 먼 사람이었고, 자신의 유명세로 거만해졌다고 밝혔다. 아이를 원했던 칼라스는 가정에서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음악마저 포기할 수 있었지만 어린 시절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메네기니는 가수로서의 칼라스를 더 사랑했다. 1959년, 결혼 생활에 염증을 느끼던 칼라스는 남편과 함께 평소 자신에게 호감을 표시하던 그리스 출신의 선박왕 사업가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가 초청한 크루즈 여행을 떠나고 그 여행에서 오나시스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칼라스는 ‘여행 중 남편과의 말다툼에 화가 나 갑판 위에서 홀로 바람을 쐬다가 깜깜한 바다를 응시하는 아리스토를 봤다’며 ‘그와 함께 있으면 자유로워졌고 여성스러워졌다. 내게 필요했던 우정이었다’고 말했다. 여행이 끝난 후 칼라스는 이혼을 선언한다.

지쳐있던 칼라스에게 오나시스는 무엇도 강요하지 않는 다정한 친구였다. 일을 강요했던 남편과는 달리 ‘일에 대한 압박을 느끼지 마라, 이미 할 만큼 했으니 괜찮다’며 다독였다. 예술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잃었던 칼라스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자유를 만끽하고 무대에서 ‘목소리의 품격이 달라졌다’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무대에 오르며 쌓인 피로는 건강의 악화로 이어졌고 어쩔 수 없이 긴 공백기를 보내야 했다. 이 시기에도 칼라스는 지인들에게 쓴 편지에서 ‘아리스토가 있어 더 바랄 게 없다’며 그가 큰 위안이 된다고 전했다. 1968년, 칼라스는 오나시스에게 쓴 편지에서 그에 대한 마음을 고백한다. ‘자존심 때문에 인정하긴 싫지만, 당신은 내 숨이야. 내 정신, 자존심, 부드러움 그 자체야. 몸과 마음을 다해 당신을 사랑해. 당신도 나와 같기를’. 그러나 같은 해 오나시스는 재클린 캐네디와 결혼한다. 매체를 통해서 이를 알게 된 칼라스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배신감보다는 사랑이 더 깊었다.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 재기를 준비하던 칼라스에게 오나시스가 다시 찾아왔고 재클린과의 결혼은 실수였다고 고백했다. 칼라스는 분노했지만 결국 그를 용서했고 두 사람은 다시 친구로 돌아갔다. 하지만 1975년, 이혼을 준비하던 오나시스는 결국 병으로 숨을 거두었고 죽기 전 칼라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당신을 사랑했다’는 고백을 남긴다. 2년 후 칼라스 또한 자택에서 숨을 거둔다.

언론에서는 세기의 스캔들로 보도했지만, 평생 사랑을 갈망했던 칼라스에게 오나시스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한 편의 드라마 같았던 칼라스의 사랑은 영화를 통해서 비로소 그녀의 입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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