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즈만 감독은 전설적인 영화 <칠레 전투>를 23년만에 칠레로 들고 가서 상영한다, 자신의 카메라와 함께. 35개국에서 상영되었고, 여섯 개의 상을 받은 그 영화가 정작 칠레에서는 처음으로 상영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필름 뭉치가 아니었다. 그것은 피노체트에 의해 꺾인 아옌데 민중 정권에 대한 기억이며, 다시 부르는 혁명가였다. 그리고 지울 수 없는 기억이었다.
그 기억에 가장 직접적으로 연루된 사람들, 즉 대통령 경호대였던 사람들에게 구즈만 감독은 묻는다. 세계 최초로 선거로 뽑힌 민주주의 민중 정권과 아옌데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묻는다. 그들은 긍지를 가지고 있었고, 여전히 평등한 이념을 믿으며, 그 믿음이 꺾이면 우리의 삶이 형편없어 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젊은 학생들은 그것을 모른다. 세계 최초로 민중 정권을 무너뜨린 피노체트를 칭송하거나 쿠데타의 불가피성을 역설하고, 아옌데를 비판하기조차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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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억에 가장 직접적으로 연루된 사람들, 즉 대통령 경호대였던 사람들에게 구즈만 감독은 묻는다. 세계 최초로 선거로 뽑힌 민주주의 민중 정권과 아옌데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묻는다. 그들은 긍지를 가지고 있었고, 여전히 평등한 이념을 믿으며, 그 믿음이 꺾이면 우리의 삶이 형편없어 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젊은 학생들은 그것을 모른다. 세계 최초로 민중 정권을 무너뜨린 피노체트를 칭송하거나 쿠데타의 불가피성을 역설하고, 아옌데를 비판하기조차 한다.
- 제작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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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역사이자 남아메리카 민중운동의 교과서인 (칠레전투)는 찍은 지 23년이 지나도록 정작 칠레에서는 상영될 수 없었다. 쿠바로 망명했던 구즈만은 (칠레전투)가 세계 35개국에서 상영되고 칸영화제 등 유명영화제에서 상영은 물론 여섯번이나 상 받은 후인 1996년에야 칠레로 돌아가 상영할 수 있었다. 이때는 칠레에서도 묻혀 있던 칠레 현대사의 진실이 하나둘 드러나고 "역사 바로쓰기"가 한창이던 때였다. 아옌데 정권의 승리와 피노체트의 쿠데타 과정이 생생하게 기록된 (칠레전투)는 훌륭한 역사교과서 구실을 톡톡히 한 셈이다.more
(칠레: 지울 수 없는 기억)은 아옌데 편에서 싸우지도 않았고 피노체트의 쿠데타를 지지한 적도 없는 젊은이들이 (칠레전투)를 보고 난 후의 인상을 전해준다. 피노체트 쿠데타의 불가피성을 주장하고 아옌데를 비판하던 젊은이들이 영화를 통해 확인한 역사의 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영화의 힘과 진실의 힘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이 영화 자체로도 완결성을 가지고 있지만 (칠레전투)를 먼저 보는 것이 순서다. 더 큰 감동을 위해. 1997년 토론토영화제에서 상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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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이브 쟈누
에릭 미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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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에릭 피타르
파블로 사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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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로베르 M. 르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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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헬렌 쥐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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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내셔날 필름 보드 오브 캐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