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보다 낯선, 이상한 가족들이 모였다
열일곱 살 소년 희준의 장례식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인다. 서로를 부르는 호칭으로 짐작해볼 때 이들은 아버지, 어머니, 딸로 구성된 한 가족이다. 이들은 각자의 일상에서 누구보다 가깝게 희준을 공유했던 ‘장례식의 멤버들’이지만, 정작 서로가 왜 장례식에 오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더없이 냉랭한 분위기의 이 가족을 살펴보면, 아버지인 준기는 지루할 정도로 평범해 보이는 중년의 대학농구단 재활치료사이지만, 사실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어두운 비밀을 간직한 남자이다. 한때 애거서 크리스티 같은 추리소설 작가를 꿈꿨던 어머니 정희는, 고등학교 문학교사로 일하고 있는 지금도 더 많은 미스터리를 필요로 하는 아마추어 작가이며, 이들의 딸 아미는 학교수업과 시체염습을 수년째 병행해오고 있는 조금 특별한 여고생이다. 어느덧 희준은 그들의 일상에서 서로의 가족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장례식의 멤버>라는 제목의 소설을 마무리한다. 그러던 어느날 희준은 이들에게 자신이 완성한 소설을 하나씩 선물로 준 뒤, 자살한다.동영상 (1)
- 제작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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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인 <장례식의 멤버>는 영화 속에서 희준이 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영화 속의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영화와 문학의 간극을 오가며 끊임없이 이어진다. 마치 입으로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우로보로스라는 희랍 신화의 뱀처럼 이야기의 끝은 곧 시작이 된다. 존 파울즈의 동명 소설 <프랑스 중위의 여자>를 단편으로 만든 바 있는 백승빈 감독은 문학적 감수성과 영화적 섬세함을 결합하는 자신의 재능을 첫 장편을 통해서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more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경쟁) 공식초청
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 / 심사위원 특별언급
제5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 공식초청
제11회 도빌아시아영화제 공식초청 (11 ~ 15 March 2009)
제33회 홍콩국제영화제 공식초청 (22 March ~ 13 April 2009)
제57회 호주 멜버른국제영화제 공식초청 (24 July – 9 August, 2009).
[ Director’s Statement]
고백하자면, 나의 가족은 내가 가진 비밀 중에서 가장 복잡하고 은밀한 것이다. 그들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자주, 가장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이지만, 오히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가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기도 한다. 유전자나 염색체 말고 우리가 서로를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증거가 무엇이 있을까. 우리를 뭔가 정서적이고 심리적으로 이어주는 울타리, 또는, 서로 강렬하게 공유하고 있는 감정들이 있지 않을까. 그것이 비록 튼튼하게 세워진 울타리가 아니고, 또는, 아름답고 따뜻한 감정들이 아니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 이야기의 최초 시작은, ‘누군가의 장례식장에 한 가족이 앉아있는데, 그들은 그날 거기서 처음 만났다.’라는 한 줄의 설정에서이다. 무엇보다 내겐 이들 가족이, 장례식장을 제외하고는, 영화 내내 거의 만나지도 않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필요했고, 또, 중요했다. 왜냐하면, 이들 모두는 각자의 상처와 고통의 흔적을 스스로 보듬기에도 바쁜 사람들이라서 많은 다른 가족들처럼 지루한 일상 따위를 공유하는데 낭비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왜 이들이 가족일 수 있을까에 대해 영화가 끝난 후, 조금이라도 궁금해진다면, 나는 아주 뿌듯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