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 다른 이름로버트 J. 플래허티
- 직업감독
- 생년월일1884-02-16
- 사망1951-07-23
- 성별남
소개
영화사가 공인하는 다큐멘터리의 아버지 로버트 플래허티는 영화인이기 전에 탐험가였고, 바이올린 연주와 글쓰기에 능한 멋스런 사람이었다. 그는 이전까지 어느 누구도 접근하지 못했던 세계의 오지에 카메라와 장비를 끌고 가, 그곳의 풍광과 사실을 영상에 담았다. 이러한 작업은 플래어티가 안락함을 버리고 온갖 위험을 감수하면서, 때로는 그의 건강까지 위협받으며 얻은 결과물이었다.
원래 플래허티는 골드러시를 쫓아 광맥을 찾고 오지를 누비던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 이곳저곳을 누빈 대가로 그는 풍부한 세상경험과 지식을 얻게 됐고, 자연히 다른 사람들과 다른 문화권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게 됐다. 그러던 중 플래어티는 1913년 북부 캐나다의 허드슨만 지역을 여행하면서 기록을 목적으로 에스키모 원주인들의 생활을 촬영하게 됐고 비록 이 필름은 나중에 화재를 당해 없어졌지만 플래허티가 영상기록에 눈을 뜬 계기가 됐다. 이때의 경험을 밑천으로 플래어티는 1920년에 몇명의 투자자를 유치하여 영화를 제작하기로 결심하고 카메라와 장비를 들고 북극에 도착한다. 거기서 그는 나누크라는 에스키모인을 설득하여 그들의 일상생활을 영상에 담기 시작했고 이 작품은 <북극의 나누크 Nanook of North>란 제목으로 1922년 개봉되어 상업적 비평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북극의 나누크>는 다큐멘터리와 재연이 섞인 작품이었다. 가령 당시의 촬영장비와 조명으로는 비좁은 이글루 안에 카메라를 설치한다는 것이 불가능했고 심지어 플래허티는 이를 위해 반쪽이 절단된 이글루를 지어 나누크 가족들이 그 속에서 생활하도록 하면서, 이전에 담을 수 없던 상황들을 재연시켜 촬영했다(후문에 의하면 영화의 주인공인 나누크는 개봉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기아로 사망했다고 한다).
<북극의 나누크>가 거둔 성공은 플래허티에게 계속적인 작업을 가능하게 했다. 이 영화를 좋게 본 파라마운트의 지원에 의해 플래어티는 다음 프로젝트에 돌입할 수 있게 됐고 이번엔 장비를 챙겨들고 열대의 폴리네시아로 떠난다. 그후 20개월 만에 돌아온 플래허티는 필름을 편집해서 <모아나 Moana>(1926)라는 작품을 완성한다. 이 작품 역시 흥행에선 성공을 거두었지만 플래허티는 비평적으로 엄청난 욕을 먹어야만 했다. 멋진 영상을 만들려는 플래허티의 의욕이 과했는지, 영화에는 재연 부분이 많았고, 몇몇장면의 촬영은 극히 아름다웠음에도 많은 부분이 사실과 다르거나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은 것이다. 그럼에도 할리우드는 플래허티의 전문성과 열정을 높이 평가했다. 곧이어 플래허티는 MGM과 계약을 맺고 <남해바다의 하얀 그림자 White Shadows of the Southsea>(1928) 제작에 들어간다. 하지만 이 작품은 MGM소속 감독인 W. S. 반 데이크와 공동연출이었고 제작과정에서 그와 많은 불화를 겪어야만 했으며 이는 다음번 영화인 독일의 표현주의 감독 무르나우와의 공동작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슬럼프를 겪던 플래허티는 다시 심기일전, 이번에는 아일랜드의 외딴섬 아란으로 카메라를 들고가 <아란의 사람들 Man of Aran>(1934)을 발표한다. 이 작품은 비평적으로나 흥행적으로 성공하여 다시 한번 플래허티의 명성을 확인시켜주었으나 그 이후의 작품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가 죽었을 때 그의 머리맡에는 아메리카의 신생주 하와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 준비가 돼 있었다고 한다. 그는 평생 탐험과 촬영에 헌신한 영화역사상 가장 유명한 그리고 가장 치열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기록될 것이다. / 영화감독사전,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