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여기가 여길까. 혹시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디스커버리호에 탑승한 것은 아닌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곳은 <내츄럴 시티>의 촬영이 한창인 경기도 김포의 R.O.K 스튜디오. CF와 뮤직비디오 촬영이 주로 이뤄진다는 이 조그마한 스튜디오는 잠시 동안 사이보그를 제조하는 뉴컴사의 주조정실로 탈바꿈한 상태다. 서기 2080년을 배경으로 하는 본격 SF영화답게 세트에 각별한 신경을 쓴 흔적이 엿보인다. 자세히 보면 못쓰는 모니터를 나무로 만든 기판에 짜넣은 것이지만, 조금만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그럴싸한 미래의 사무실이다.
이날 촬영분은 사이보그 생산시설을 장악해 인간에 적대적인 전투용 사이보그를 양산하려는 싸이퍼(정두홍)를 저지하기 위해 경찰요원 R(유지태)이 주조정실로 들어오는 장면. 싸이퍼와 R의 만남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탓에 민병천 감독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눈치였다. 스탭의 실수에 언성이 높아졌고, 배우들과 조용히 얘기하는 시간도 길어졌다. 결국 슈팅 사인이 나자 유지태가 조용히 들어오고, 그의 뒤에서 정두홍이 낮은 목소리로 “왔어?”라고 비아냥거린다. 어찌어찌 오케이가 나고 스탭들이 다음 신을 준비하는 동안, 정두홍과 유지태는 “이렇게 하면, 요렇게 하고, 그 다음엔 저렇게…”라며 팔을 뻗고, 피하고, 다리를 들고, 팔로 막고, 이런 식의 동작들을 거듭한다. 곧 펼칠 액션의 합을 맞추는 것이다. “자, 시작합시다!” 다시 민 감독이 만들어내는 ‘굉음’에 스튜디오가 쩌렁쩌렁 울린다. 이날도 어김없이 카메라는 밤11시까지 돌아갔을 것이다.
지난해 11월 크랭크인한 이 60억원이 넘는 프로젝트는 현재 완성까지 2부 능선만을 남겨놓고 있다. 인간과 사이보그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라는 점에서는 <블레이드 러너>와, 강력한 액션이 펼쳐진다는 면에서는 <공각기동대>와 비슷해 보이지만, 민병천 감독은 <내츄럴 시티>가 “인간성 회복의 이야기”라고 밝힌다. 글 문석 [email protected]·사진 오계옥 [email protected]
사진설명
1. 유지태는 무척 피곤해 보였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시작되는 강행군 탓이기도 하겠지만, 사랑하던 사이보그 여인 리아를 잃은 직후의 R을 보여주는 장면인지라 스스로도 절망과 분노를 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2. 민병천 감독은 “비주얼만큼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3. 유지태는 이 영화를 촬영하기 수 개월 전부터 정두홍의 서울액션스쿨에 나가 몸을 만들었고, 액션연기를 준비했다. 현장에서도 호흡이 잘 맞는 것은 당연한 일.
4. 정도안 기사는 “이 영화가 <리베라 메> 다음으로 힘들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총기가 많이 등장하고 스파크도 많이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5. 유효기간이 다 된 사이보그 리아를 살리기 위해 R은 시온의 DNA를 이용하려 한다. 하지만 시온을 노리는 것은 R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