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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고도 푸대접 받았지만, 상관하지 않았어”
2002-04-17

대작영화들 많았던 90년대, 임권택 감독과 함께 작업한 <개벽>과 <장군의 아들>

90년대에 들어서 규모가 큰 대작들이 많이 기획됐어. 해외에서 올로케로 찍는 작품이 생기는가 하면 의상 제작비만 1억5천만원이 든 <사의 찬미> 같은 작품도 제작됐지. 91년도만 해도 <개벽>(임권택), <사의 찬미>(김호선), <은마는 오지 않는다>(장길수) 등 꽤 굵직한 작품들이 많았어. 이미 총각 때부터 영화로 알고 지낸 임 감독이야 작품만 들어가면 날 찾았으니까 <개벽>도 자연스럽게 내 손에 들어온 거고.

근데 그 영화 찍을 때 스탭들이며, 조합원(엑스트라)들이 어떻게나 말을 안 듣던지 하루하루가 말 그대로 천지가 개벽할 날들이었어. 처음 영화 들어갈 땐 동학당이 400명 나온다고 했거든. 거기다 군인까지 더 포함되면 한 5백벌 의상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그래서 다 준비를 해놨는데, 막상 숏 들어가고 조합원을 세어보니 100명도 안 되는 거야. 원래 그날 찍을 장면에는 200명이 필요하댔는데, 반도 안 나왔으니 감독 심정이 어땠겠어. 나 역시 준비해간 옷을 반이나 그대로 가지고 와야 했으니 마음이 안 좋지.

그게 시작이었어. 촬영기간 내내 조합과의 마찰로 제때 원하는 인원이 수송된 적이 없었어. 게다가 온 인원들도 통제가 안 되고. 날씨는 춥고 주로 산에서 촬영이 이루어지는데, 아무 데서나 오줌 누고, 툭 하면 술 먹고 행패 부리고. 아마 만들어놓고 반도 못 입힌 영화는 그게 유일할 거야. 물론 아예 처음부터 엎어진 영화는 빼고. 게다가 스탭들도 추운 데서 고생하다 나중엔 협조를 잘 안 하더라고. 그렇게 어렵게 찍어놨더니 역시나 흥행에 대참패를 했지. 다행히 미리 의상비를 받을 수 있어서 큰 손해는 안 봤지만, 입히지 못한 의상 때문에 계속 미안한 맘이 들더라구.

같은 해 찍은 <사의 찬미>는 거대한 제작 스케일로 일단 화제를 모았는데, 나중에 듣고 보니 의상비만 1억5천이라는 거야. 조연들 옷을 지었던 내가 받은 돈이 3천만원이었으니까 장미희 옷을 맡은 이가 무려 1억2천을 받았다는 얘기지. 이걸 능력 차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배우의 힘이라고 해야 하나. 아주 기분이 씁쓸하더라고. 그래도 김호선 감독 사정을 뻔히 아는 내가 돈 때문에 투정을 부릴 순 없었지. 나중에 그해 <사의 찬미>를 비롯한 세개 작품이 의상상 후보로 올라가는 바람에 시상식엘 몇번 갔었는데, <사의 찬미> 시상식장에 장미희 옷을 지은 여자가 앉아 있는 거야. 처음엔 ‘설마 회원도 아닌 이가 상을 타겠어. 그냥 자리를 빛내는 거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식장에 그녀의 이름이 불려지니까 꼭 배신당한 기분이더라고. 물론 그녀의 솜씨로 여주인공이 맵시있게 표현된 건 인정하지만, 영화 전체의 의상을 만진 나로서는 서운할 수밖에. 그 일이 있고 나서 김 감독이 미안했던지 춘사영화제에서 의상상을 주도록 애를 썼나봐. 난 그래도 지금껏 한번이라도 “그때 왜 회원인 나는 푸대접하고, 비회원에게 상을 주느냐”는 소리 해본 적이 없어. 아쉬운 소리만큼 하기 싫은 게 있을까. 안 주면 그만인 거지. 그때 내가 속으로 그랬지. ‘그래, 상은 니가 타가라. 일은 내가 다 할게’라고.

한진영화사에서 찍은 <은마는 오지 않는다>가 몬트리올영화제와 백상영화제 등에서 상을 휩쓸면서 91년이 끝났지.

92년도에 가서 제일 먼저 받은 시나리오가 최영철 감독의 <백백교>야. 지금도 내 필모그래피에 등장하는 이 영화는 사실은 완성된 작품이 아니야. 찍다가 돈이 없어서 중간에 엎어진 영화거든. 그래서 내 작품이라고 부르기도 뭣해. 고 다음에 찍었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박종원), <장군의 아들3>(임권택), <하얀 전쟁>(정지영)이야말로 96년 <애니깽>(김호선)으로 작품활동을 마무리할 때까지 맡은 작품들 중 백미라고 할 수 있어.

<장군의 아들>은 30년대 종로 거리가 배경이라 한복과 양복이 한데 어울려 등장했어. 양복의 경우, 내 전공이 아니니까 주로 사서 쓰거나 양복점에다 맡겼지. 극중에 등장하는 기생들의 경우 실제 복장보다 더 화려하게 각색이 됐어. 원래 기생들은 관에 속한 몸이라 일종의 유니폼이 정해져 있거든. 나라에서 허가를 받은 차림새란 게 고작 남색 치마에 흰 저고리가 다야. 우리가 알고 있기론 기생들 옷이 화려하고 다양할 것 같지만 그게 정석이라고. 그치만 감독들은 밋밋한 그림 대신 변화를 주고 싶어하지. 그러다보니 언제부턴가 영화나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기생들이 화려하게 옷을 갈아입었지. 그건 무당도 마찬가지야. 굿을 할 때나 오색도복을 입는 거지 평상시엔 기생과 같이 남치마에 흰저고리야. 임 감독의 경우, 앞서도 얘기했지만, 아주 별나거나 튀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야. 옛날에 실제 입었던 옷차림, 사실에 가까운 그림을 쓰는 감독이었어. 기생의 옷차림은 시각적 즐거움을 주기 위해 변형됐지만, 다른 배역의 옷들은 거의 실제 그대로의 옷차림이 재현됐지. 그리고 항상 자기의 바람에 부합하는 의상들을 두고 칭찬했지. 서로에 대한 믿음이 컸어. 정리 심지현 [email protected]

구술 이해윤/ 1925년생ㆍ<단종애사> <마의 태자> <성춘향> <사의 찬미> <금홍아 금홍아> <서편제> <친구> 의상 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