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초등학교를 다니는 소녀 유진은 남들이 알 수 없는 도형으로 일기를 쓴다.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이 두렵고 창피하며 말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일까? 영화는 첫 장면을 하나의 질문으로 시작해서 유진이의 집 안으로 카메라를 들고 들어간다. 유진이 아버지는 시인이다. 가난이 흐르는 방, 시인인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에다 치명적인 병을 앓고 있는 게 분명하다. 아내는 집을 나갔고 유진이 동생은 구멍가게 주인으로부터 “어미없는 애가 그렇지”라는 소리를 듣는다. 어느 날, 깔끔하게 차려입고 면도까지 하고 나간 아버지가 술취해 들어오더니 방에 누워 일어나지 않는다. 유진이는 아버지의 시신에 이불을 덮어두고 동생에게 동화책을 읽어준다.
■ Review 정재은 감독은 <도형일기>의 소재를 “고아원에 가는 게 무서워서 죽은 아버지의 시체와 일주일을 같이 산 소년에 관한 신문기사에서 얻었다”고 말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감독은 이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과 비교한다. 우리는 정말 아버지의 시체를 숨기고 살았던 소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인가? 암호처럼 도형으로 썼던 유진이의 일기는 아버지가 쓴 시를 발견한 뒤 문자로 바뀐다. 아마 유진이에겐 매일 술마시고 피를 토하는 아버지의 존재가 미스터리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미스터리는 아무도 믿지 않는, 궁금해하지 않는 가족의 비밀이다. 비밀의 문이 열리는 소통의 순간, 아버지가 남긴 시에서 유진이는 분명 무엇인가를 발견했을 것이다. 영화는 그게 무엇인지 밝히지 않지만 아버지의 시체에 이불을 덮어둔 채 동화에 빠져드는 두 아이의 천진한 표정과 아버지의 시가 어우러지면 그 무엇인가가 보는 이의 가슴에도 기척없이 들어와 있음이 느낄 수 있다. 제2회 서울여성영화제 최우수작품상 수상. 남동철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