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서 불어오는 특유의 냄새를 머금고 자리한 이발소. 벽에 걸린 표시등이 돌다 지친 듯 멈춰서서 바닷바람에 진저리를 치고 있다. 이곳에 아픈 상처로 인해 성불구가 된 하얀 가운의 이발사 수(김인권)와 순수한 듯 보이지만 붉은 열정을 숨기고 있는 퀵 서비스 배달원 원영(조은숙)이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삶에 잔인한 호기심과 욕망을 가진 거친 블루를 닮은 수의 옛 친구 병호(김정현)가 끼어들며 마치 멈춰 있던 표시등이 돌아가듯 혼탁해지기 시작한다.
영화 <플라스틱 트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멀리서 보면 진짜인 듯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가짜인 ‘플라스틱 트리’처럼 그들의 삶에도 그렇게 진짜와 가짜가 뒤섞이며 혼란스러워진다. “절망이란 현실이다.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통해서 희망을 얘기하고 싶다”는 어일선 감독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보통의 촬영장에서 봄직한 “레디- 액션”이란 소리는 감독의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서경대 연극영화과 전임교수이기도 한 어일선 감독은 첫장면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렇단다.
제작사인 RG Prince Films의 첫장편영화이며 전액 프랑스 자본으로 만들어지는 최초의 한국영화인 <플라스틱 트리>는 현재 촬영의 끝을 향하고 있다. 한국 개봉에 앞서 유럽 개봉을 먼저 하며 우리는 6월에 그들의 사랑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할 수 있다. 사진·글 손홍주
사진설명
1. 4일 만에 완성된 송도 앞바다 이발소 세트에서의 촬영모습. 매서운 바닷바람과 몰려드는 관광객 통제에 몸살을 앓았다.
2. 수와의 동거를 사랑으로 알았던 원영은 병호에 의해 그것이 거짓임을 알고 달라진다.
3. “절망은 바로 현실이다. 그 현실 속에서 희망을 찾고 싶다”는 어일선 감독은 이 영화가 데뷔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