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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 충실한 권투영화 <사우스포>
송경원 2015-12-02

영화는 권투를 사랑한다. 사각의 링에 오르기까지 쏟아부은 땀에 반하고, 맨손으로 빚어내는 육체의 향연에 감탄하며, 롤러코스터마냥 내리꽂히는 몰락과 상승의 드라마에 빠져든다. 무엇보다 세속의 모든 것들 벗어놓고 공정하게 이루어지는 링의 순수함을 사랑한다. 대부분의 권투영화가 정직한 드라마에 충실한 이유는 그저 링 위에서 보여주는 걸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사우스포> 역시 앞선 권투영화들이 밟아온 스텝을 한치 어긋남 없이 따라 밟는다. 그리고 권투라는 소재에 매료된 이들에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걸 새삼 일깨워준다.

라이트 헤비급 복싱 챔피언 빌리 호프(제이크 질렌홀)는 43승무패 신화를 달리는 중이다. 고아원에서 만난 평생의 동반자 모린(레이첼 맥애덤스)과 딸 레일라(우나 로렌스)와의 행복한 생활을 위해 그는 몸이 망가지는 것도 불사하고 복싱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도전자와의 사소한 실랑이 끝에 모린이 총기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아내의 죽음에 절망한 빌리의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한다. 돈도, 친구도 모두 사라진 후 빌리는 마지막으로 남은 딸을 지키기 위해 재기를 결심한다. 동네 체육관에서 아마추어 복서를 가르치는 은퇴한 선수 틱(포레스트 휘태커)을 찾아가 스스로를 보호하는 법과 사우스포 스타일을 배워 다시 링에 오른다.

<사우스포>는 제목과 달리 지나치게 안전하고 교과서적인 권투를 한다.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가족 서사도 납득은 가지만 흥분으로 가슴 뛰진 않는다. 챔피언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다시 링 위의 영광을 찾기까지, 이 정도로 낙차가 큰 상승과 몰락의 드라마임에도 그리 극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건 롤러코스터 자체의 속도감이 부족한 탓이다. 이미 다음 전개가 완벽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카메라는 굳이 멈추지 않아도 될 곳에서까지 멈춰 일일이 다 설명하고 지나간다. 그나마 제이크 질렌홀이 상투성을 메우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인물의 고뇌를 입체적으로 만드는 것에는 끝내 실패한다. 박진감 넘치는 권투 경기를 보고 싶은데 지루하고 교훈적인 중계해설을 듣고 있는 꼴이다. 안전하고 탄탄한 연출을 지향해온 안톤 후쿠아 감독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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