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에 밤이 내리고 어둠이 짙게 깔려든다. 고깃배들의 힘찬 엔진소리마저 잠에 빠진 듯 한적한 경남 남해 미조항. 바닷바람마저 침묵한 정적
속에서 낯선 사람들의 움직임들이 분주해진다. 총제작비가 6억원에 불과한 저예산영화 <꽃섬>의 막바지촬영이 한창인 이곳엔 현란한 조명장비도,
육중한 카메라도, 유명배우도 없다. 디지털 카메라와 감독의 요구로 한곳에 고정되지 않은 카메라를 피해 보통의 영화보다 적은 소수 정예의
스텝들은 잔물결처럼 조용히 움직인다. 1999년 영화 <소풍>으로 칸영화제 단편 경쟁부문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던 송일곤 감독은 “1분짜리
디지털영화 <플러시>를 만들면서 그걸 발전시킨 <꽃섬>의 시나리오를 썼다”고 말한다. “프레임을 버리는 영화지요. 화면안에 무언가를 채워
넣는 대신에 자유롭게 배우들을 따라 촬영해요.” 그래서일까. 세 배우의 뒤를 좇는 그의 눈길이나 행동에는 조바심 대신 여유가 담겨있는 듯했다.
<꽃섬>은 세상에서 의미를 잃어버린 10대 소녀 혜나, 20대 여인 유진, 30대 주부 옥남, 셋이 우연히 만나 그들의 안식처라 믿는 꽃섬으로
여행을 시작하는 이야기다. 오는 6월쯤 그들만의 여행에 동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남해=사진·글 손홍주 기자 [email protected]
화장실에 아기를 고의로 사산시킨 후 삶의 희망을 잃고 엄마를 찾아 떠난 혜나(김혜나)는 생전 처음보는 바다 앞에서 엄마를 그리며 한숨짓는다
꽃섬으로 떠나기 전 혜나와 유진으로부터피아노 전화기를 선물받은 옥남은 딸에게 전화를 해 엄마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