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상쾌한 공기!” 촬영장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화장실 앞에 삼삼오오 모여 선 기자들의 얘기는 농담이 아니었다. 영화사 봄의 스릴러 <H> 팀이 처음으로 언론을 초대한 것은 3월4일 부산의 생곡 쓰레기 매립장에서의 밤샘촬영 현장이었다. 사흘 동안 모았다는 부산 시내 쓰레기 더미 위에 살수차가 비까지 뿌려대, 현장의 악취와 추위를 견뎌내기 위해선 마스크가 필수적이었다. 쓰레기가 내뿜는 유독가스의 발화위험 때문에 담뱃불 조심하라는 스탭들의 경고가 이어지고, 지반이 약해서 크레인이 조금씩 가라앉고 있다는 흉흉한 얘기까지 떠돌아, 현장에는 평균치 이상의 긴장감이 흘렀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쓰레기 더미 위에 놓인 수상한 물건과는 눈을 맞추지 말았어야 했다. 그것은 여고생의 시체. 특수 소품이지만, 꿈자리 사나울까 걱정스러울 만큼 리얼하고 섬뜩했다. 게다가 그 옆엔 죽은 소녀의 것으로 보이는 태아의 시체까지… 그날 밤은 유난히 길고 추웠다.
<H>는 고도의 지능범과 강력계 형사의 두뇌 싸움을 그린 스릴러. 이미 6번의 연쇄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시체 도막을 들고 나타나 자수한 지 10개월, 그의 범행 패턴과 유사한 살인사건이 다시 이어진다. 단순한 모방 범죄인지, 투옥된 범인의 사주인지, 수사는 점점 미궁에 빠진다. 이날 촬영은 10개월 뒤 일어난 첫번째 사건 현장. <H> 팀이 “선과 악의 경계 허물기”에 나선 것은 지난 늦가을부터로, 대부분의 스탭과 배우들이 부산에 상주하고 있다. 오랜 친구 사이인 신인 이종혁 감독과 류진옥 프로듀서, <세 친구>로 한국영화와 인연을 맺은 피터 그레이 촬영감독이 꼼꼼하게 만들어내고 있는 영상은 오는 가을에나 선보일 예정이다. 사진 이혜정·글 박은영
사진설명
1. <H>는 호주 출신 촬영감독 피터 그레이가 촬영과 조명을 관할하는 DP시스템으로 진행한다. AFI 출신의 김기표 기사가 촬영 오퍼레이터를 맡고 있다. 아나모픽 렌즈로 촬영중.
2. 출연배우들에게 연기지도중인 이종혁(맨 왼쪽) 감독. 그는 영화아카데미 출신으로, 박광수 감독과 박종원 감독의 연출부를 지냈다. <살인비가>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던 자작 시나리오 <H>로 연출 데뷔한다.
3.부산시는 촬영장 헌팅 및 현장 진행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매립장의 쓰레기를 감독의 주문대로 모아줬고, 현장 조사에 나서는 30여명의 경찰 엑스트라들은 부산시경에서 동원해준 실제 전경들이다.
4.소름끼치도록 실물 같은 피투성이 시체 소품은 <텔미썸딩> <공동경비구역 JSA> <공공의 적> 등에서 먼저 실력 발휘한 바 있는 신재호씨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