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자 켄 댄시거는 “다큐멘터리가 오랫동안 살아남은 이유는 그 유연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표현을 ‘다큐멘터리는 자신의 경계를 넘나들 가능성이 큰 장르다’라고 바꿔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실험하는 경계선, 제6회 DMZ국제다큐영화제가 9월17일(수)부터 24일(수)까지 8일간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린다. 올해는 ‘아시아 다큐의 빛’이라는 슬로건으로 30개국 111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개막작 <울보 권투부>는 일본 내 한인학교 권투부 학생의 이야기다. 정통 다큐멘터리 방식을 그대로 따르면서 그외 모든 것은 아이들의 땀과 눈물의 진실에 맡긴, 소박한 다큐멘터리다. “타격이 의도한 곳에 정확히 꽂혔을 때 기분이 좋다”라는 권투부 학생의 순수한 에너지가 일본 내에서 차별받는 상황의 답답함을 가뿐히 이긴다.
한국경쟁부문 상영작인 <쿼바디스>는 극영화적 요소와 다큐멘터리를 뒤섞는 최근의 다큐멘터리 경향을 고스란히 따르며 기독교 세습의 비리를 파헤친다. 흥미로운 것은 어떤 장면이 다큐멘터리이고 어떤 장면이 극영화인지 모호하다는 점이다. <트루맛쇼>의 김재환 감독의 재기발랄한 고발정신이 다시 한번 빛난 다큐멘터리다. 글로벌 비전 부문 상영작인 <아나의 여정>은 아마도 다큐멘터리가 갈 수 있는 한 극영화쪽에 가장 많이 가닿은 작품 중 하나일 것이다. 칠레 시인 프란시스 콘트라레스가 사망한 뒤 홀로 남은 아내 안드레아의 지난 여정을 프랑스 예술가 안나가 따라간다. 퍼포먼스와 치유의 과정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영상미와 사운드가 영화에 명상적인 느낌을 불러온다.
<마나카마나>는 다큐멘터리의 미니멀리즘이 극에 달한 작품이다. 영화는 네팔의 마나카마나 사원을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내리는 사람의 얼굴과 그들을 둘러싼 풍광을 고정 타이트 숏으로 잡은 채 거의 원신 원컷에 가깝게 촬영한 결과물이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텐>과 <쉬린>을 연상시키는 폐쇄된 공간 속 카메라는 그 한계로 인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한다. 케이블카가 10번 남짓 오르내리는 동안 당신이 보게 될 장면이 궁금하다.
한국에서 다큐멘터리는 투쟁의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살펴볼 만한 몇편의 해외 다큐멘터리가 소개된다. 영국 다큐멘터리스트 마크 칼린의 회고전에서는 그가 버윅스트리트 컬렉티브에서 활동하던 당시 참여한 <야간청소부들>을 만날 수 있다. 여성 노동자의 노조 설립과정을 담고 있는 이 영화는 종종 여성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거나 불 켜진 건물 너머에서 여성 노동자의 얼굴을 향해 줌인한다. 이것은 이 다큐멘터리의 목적이 결코 노동운동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지워져버린 노동자의 얼굴을 기억하는 것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또 다른 70년대 다큐멘터리인 <할란 카운티 USA>는 광산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투쟁을 그린다. 시대를 상징하는 포크송이 영화 전반에 흐르는데 이 음악은 영화 안팎에서 노동자에게 지치지 않고 투쟁할 힘을 보탠다.
이탈리아 특별전에서는 감독이자 시인인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의 작품이 상영된다. 64년작 <사랑의 집회>에서 파솔리니는 마치 인류학적 보고서를 쓰려는 듯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접근해 “돈 후안과 평범한 남편의 삶 중 어떤 삶을 살고 싶나요?”라는 질문에서부터 “여성이 남성만큼 성적인 자유를 누린다고 생각하나요?”라는 질문까지 여러 장소,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성과 사랑에 대해 묻는다.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발언도 흥미롭지만 카메라 앞에 모여든 당시 사람들의 호기심과 경계가 뒤섞인 표정이 더욱 눈길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