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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알리
2002-02-26

시사실/알리

■ Story

1964년 로마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캐시어스 클레이(윌 스미스)는 세계 헤비급 챔피언 소니 리스턴에게 도전한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는 명언을 던지며 링을 오른 알리는 통쾌한 KO로 왕좌에 등극한다. 말콤 엑스의 친구이며, 이슬람교 신자인 알리는 그뒤 자신의 이름을 무하마드 알리로 바꾼다. 67년 알리는 징집을 거부한다. 베트남에 가서 베트콩과 싸우느니, 이 땅에서 흑인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당신’들과 싸우겠다고 선언한다. 알리는 타이틀을 박탈당하고, 국내에서의 시합은 물론 출국까지 금지된다. 전성기인 20대 후반을 흘려보낸 알리는 대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링에 복귀한다. 재기전에서는 승리했지만 71년 조 프레이저와의 타이틀전에서는 15회 판정패로 무기력하게 물러난다. 알리는 프레이저에게 재도전하기 위해 2년을 기다리지만, 타이틀은 다시 24살의 조지 포먼에게 넘어간다. 74년 자이르에서 조지 포먼과 타이틀전을 갖기로 결정되었지만, 현실적인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다. 알리의 나이는 32살로 전성기를 넘었고, 누구나 조지 포먼의 승리를 점치고 있다.

■ Review 영화가 시작되면, 무대에서 샘 쿡이 를 부른다. 열광하며 몸을 흔드는 흑인들의 모습이 보이고, 이어서 몇개의 장면들이 뒤를 잇는다. 알리가 거리를 뛰어가는 모습과 신명나는 경기장면들, 인종차별이 유난히 심했던 켄터키주 루이스빌에서 어린 캐시어스 클레이가 타던 버스의 풍경(백인석과 흑인석이 구분되어 있는), 백인과의 투쟁을 외치던 말콤 엑스의 강연장에 찾아간 알리의 모습, 그리고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이름이 쓰인 티셔츠를 입고 훈련하는 알리의 모습.

별다른 대사없이, 샘 쿡의 노래가 흐르며 연속되는 오프닝을 보고 있으면, <알리>의 모든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 노예의 이름을 버리고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찾아간 알리, 자신의 다리로 링 위에 서서 자신만의 힘으로 세계와 대적했던 알리, 흑인들의 영웅을 넘어서 20세기의 위인으로 우뚝 선 알리.

마이클 만 감독은 늘 ‘싸우는 남자’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왔다. 고독하게 세상과 맞서는 남자. 결국 모든 것에 버림받으면서도, 자신의 ‘무엇’을 찾아헤매는 남자. <히트>에서 쫓고 쫓기는 두 남자의 처지는 결코 다르지 않다. 도망칠 때를 위해서 결혼하지 않고, 가구 하나 들이지 않는 사내와 범죄자를 쫓느라 가족이 풍비박산난 사내. <인사이더>에서는 담배회사의 비리를 고발하고, 결국은 사회와 가정에서도 외면당하는 중년남자의 쓸쓸한 그림자를 비친다. <알리> 역시 싸우는 남자다. 알리는 더욱 확실하게 세상과 싸운다. 링 위에서 자신보다 강한 남자들과 싸운다. 그들을 링에 눕히고, 자신을 찾는다.

그러나 그를 링 위에서 끌어내린 것은, 세상이다. 마이클 만은 알리의 인생에서 가장 파란만장했던 64년부터 10년의 세월을 영화에 담았다. 정상에 오르고, 끌어내려지고, 그 누구도 믿지 않았던 조지 포먼에게의 승리까지. 알리에게 붙여진 ‘떠버리’라는 별명은 결코 조롱이 아니었다. ‘적’을 무참하게 말과 주먹으로 깔아뭉개고, 결코 누구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았던 알리는 치열하게 세상과 맞장 뜬다. 그의 ‘말’은 자신의 두려움, 불안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다. 포먼과의 시합을 위해 자이르에 간 알리는 포먼의 주위에 기자들이 몰린 것을 보고는, 북을 두드리며 ‘챔피언이 왔다, 챔피언이 왔다’라고 소리친다. 그의 말은, 자신의 존재를 믿게 해주는 강력한 자기암시다. 그러나 74년의 알리는 결코,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이미 육체의 전성기인 30대를 넘어선, 지는 해였다. 누구나 그렇게 믿었고, 알리조차 흔들렸다.

그는 강하고, 또 약하다. 부인인 벨린다가 이슬람교에서 보내준 매니저 허버트를 내쫓으라고 말한다. 지금처럼 힘들 때 그가 단 한번이라도 찾아온 적이 있냐고. 재기전에서 승리한 알리에게 허버트가 찾아오고, 벨린다의 눈짓으로 알리는 그를 힐난한다. 한참을 떠들고 머쓱해진 허버트가 발길을 돌리려 하자, 내뱉는다. “프레이저와의 시합을 반드시 성사시키라”고. 백인과, 세상과 싸우기 위해서는, 링 위에 오르기 위해서는 결국 이슬람이라고 하는 또 하나의 힘을 빌려야 하는 것이다. 그 비참함을,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아마도 평생의 친구인, 스포츠 캐스터 코셀만은 이해했을 것이다. 비록 알리는 자신의 진심을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격렬하게 세상과 싸우는 <알리>의 전반부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 빠른 스텝으로, 연이어 클린 히트를 날린다. 그러나 조 프레이저에게 진 뒤의 후반부는, 몽롱해진다. 복부에 많은 펀치를 맞은 것처럼 걸음이 느려진다. 약간 지루하게도 느껴지지만, 이 완만하고 흐려진 스텝은 알리의 내면을 그대로 투영한다.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상황. 자신이 과연 포먼에게 이길 수 있을 것인지, 자신감조차 사라져버린 상황. 아내는 알리의 곁에서 떠나고, 모든 관심은 젊은 챔피언 포먼에게 향한다.

그 상황에서 알리가 믿을 것은 오로지 자신의 말뿐. 그리고 ‘알리 부마예’(알리, 그를 때려눕혀)라는 한마디. ‘알리 부마예’를 외치는 흑인들과 함께 자이르의 거리를 달리던 알리는 벽화를 본다. 권투장갑을 낀 주먹으로 탱크와 비행기를 물리치는 알리의 벽화. 알리의 주먹과 그의 말은 단지 그의 것만이 아니었다. 포먼의 주먹을 맞으며 버티던 알리는 차츰 누구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게 된다. 영혼의 동반자였던 분디니의 말조차 흘려버린다.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남들이 원하는 내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내가 되겠다”는 자신의 말을.

<알리>는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떠버리’ 알리의 몸이 이루는 기적을 흐르는 물처럼, 은근하게 따라간다. 성급하게 몰아치지도 않고, 화려하게 과장하지도 않고 묵직한 걸음으로 천천히 다가간다. 18kg을 늘린 윌 스미스는 단 한번도 대역을 쓰지 않고 모든 경기를 직접 뛰었고, 카메라는 그 ‘사실’을 담아냈다. “I am the greatest!”라고 외쳤던 알리의 위대한 경기와 말은, 윌 스미스의 몸을 통해서 생생하게 재현된다. 그 위대함, 그 고통과 외로움까지도. 김봉석/ 영화평론가 [email protected]

<알리>의 배우들

조연 ‘챔피언’은 존 보이트

<알리>에서는 진짜 헤비급 선수로 변신한 윌 스미스의 열연말고도 훌륭한 연기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우선 알리와 수십년간 우정을 나누어온 스포츠 캐스터 하워드 코셀 역의 존 보이트. 하워드 코셀은 대중 매체에서 처음으로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름을 불러주었고, 그 덕에 수많은 백인들에게 공격을 받았던 인물이다. 위대한 영웅의 면모를 알아보고, 그의 재능에 찬사를 보내며, 어려운 순간에도 알리를 지켜준 코셀은 ‘언론인’의 전범이 될 만한 인물이다. 존 보이트는 그런 코셀의 면모를, 스쳐가는 순간순간 탁월하게 그려낸다. 알리와 단독 인터뷰를 할 때의 세련된 화술만이 아니라, 공동 기자회견장에서 한마디의 촌철살인으로 알리의 ‘마음’을 이끌어내는 코셀, 아니 존 보이트의 연기는 ‘챔피언’이다.

제이미 폭스가 연기하는 드류 분디니는 특이한 인물이다. 알리의 곁에서 수많은 명언을 만들어내며 알리와 함께했지만, 그의 진짜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는 제대로 알기가 힘들다. 알리가 위기에 처했을 때, 역시 알코올중독으로 흐느적거리며 챔피언 벨트까지 500달러에 팔아먹은 분디니는 다시 알리에게 돌아와 그의 귓속에 갖가지 영혼의 잠언을 들려준다. 아주 속되고, 아주 가볍게 알리의 무거운 마음을 날려주던 말들을. 제이미 폭스는 <애니 기븐 선데이>에서 쿼터백 윌리 역으로 주목을 받았고, 안톤 후쿠아의 <베이트> 등에 출연했다.

말콤 엑스를 연기한 마리오 반 피블스는 <뉴 잭 시티> <파씨> 등으로 최고의 흑인 배우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지만, <솔로> <하이랜더3> 등 B급 액션영화 배우로 전락했다. 하지만 <알리>에서의 마리오 반 피블스는, 스파이크 리의 <말콤 X>에서 말콤 엑스를 연기했던 덴젤 워싱턴 못지않은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마리오 반 피블스의 재능은 아직 휘발되지 않았다.

알리의 첫 번째 부인 역을 맡은 제이다 핀켓 스미스는 잘 알려진 대로, 현재 윌 스미스의 부인이다. <너티 프로페서> <셋 잇 오프> 등에 출연했고, <매트릭스> 후속작에 출연할 예정이다. 두 번째 부인 벨린다 역의 노나 게이는 가수인 마빈 게이의 딸. 가수로도 활동하며, <알리>는 <에디 머피의 할렘 나이트>에 이은 두 번째 영화 출연작이다. 알리의 코치였던 안젤로 던디 역의 론 실버는 <블루스틸> <라이브 와이어> <타임 캅> 등에 출연했던 중견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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