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먼 것보다 더 안 좋은 게 있을까 있다. 볼 수는 있지만 비전이 없는 사람. - 헬렌 켈러
요즘 프러포즈는 예전과 확연히 다르다. 옛날에 프러포즈 전용 문구가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하고, 고생 안 시킬게”였다면, 요즘은 그런 식으로는 절대 여성을 감동시키기 힘들다. 그럼 어떤 프러포즈가 감동을 줄까?
어떤 남자는 연인의 여권을 만들어 장미꽃 한 다발(아주 화려한 것으로, 이것은 꼭 필요한 도구임)과 함께 내밀면서 말했다.“이 여권으로 신혼여행을 가는 거야. 그리고 결혼하면 우리 둘이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어.”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음 날 남자는 아예 대형 세계지도를 구입해서 여자를 만났다. 그 지도를 펼쳐놓고 많은 나라에 동그라미 치면서 “이 나라들이 자기하고 같이 여행하고 싶은 곳이야. 자기도 가고 싶은 나라가 어디인지 여기에다 표시해봐”라고 했다.
결과는? 당연히 대성공! 세계 여행이라는 비전 제시에 여자는 마음을 열었고, 그들은 현재 결혼을 앞두고 있다. 이렇듯 고백을 할 때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 남성은 구체적으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물론 여자도 남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예쁜 얼굴과 멋진 옷차림, 근사한 스타일은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을 뿐이다. 그다음 관문은 입에서 나온 말과 행동을 통해서 결정된다. 여자들은 흔히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옷과 구두, 가방에 신경을 많이 쓰지만 남자들은 주로 전체적인 분위기를 본다. 즉, 여자의 옷이 어떤 브랜드이고, 가방과 구두가 명품이고 아니고 하는 것을 잘 알지도 못하고 또 알려고 들지도 않는다. 여자가 만 원짜리 가방을 시장에서 샀든 온라인 쇼핑몰에서 샀든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녀가 걸친 옷이나 착용한 액세서리, 구두, 가방보다는 얼굴 표정과 미소,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의 내용에 흔들린다.
물론 요즘 젊은 남성들 중에는 여성의 외모나 패션 감각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눈여겨보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도 결국에는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그래서 최고의 화장법은, 미소와 대화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그녀가 입은 것이 아니라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그의 청각을 두드리고 심장을 지배한다.
외모만으로는 그다지 뛰어난 편이 아닌 방송작가 S는 남자와 만나면서 미래의 2세에 대한 얘기를 우연히 하게 됐다.“난 이다음에 아기 낳으면 직접 천 끊어다가 옷 만들어서 입히고 싶어요. 아이 옷 디자인이야 팔다리를 내놓을 구멍만 만들면 되잖아요? 중요한 건 엄마의 마음을 담는 거죠. 그렇게 아이가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그 말 한마디의 효력은 대단했다. 남자는 그 말에 반해 청혼을 했고, 결혼한 지금도 그녀가 그때 아이 패션에 대해 말했던 소박하고 창의적인 꿈을 잊을 수 없다며, 그 얘기에 속아서 결혼했다고 웃곤한다.
“아이를 잘 기르겠다”는 말보다 “난 이다음에 아이 가구를 직접 만들고 싶다” 혹은 “아이를 키울 때 저항력 강화를 위해 모유 수유를 꼭 하고 싶다”는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말들이 남자의 청각에 강렬하게 꽂힌다. ‘아, 이 여자는 이다음에 내 아이도 잘 키워주겠구나’라고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남자는 결혼할 상대를 선택할 때 씀씀이가 헤픈지, 인생에 대한 가치관은 건전한지, 과연 함께 가정을 잘 이끌어줄 여자인지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여자는 어떨까? 여자들은 이 남자가 이다음에 자신을 궁색하게 만들지 않고 여유 있게 해줄 사람인지를 탐색한다. 그래서 남자가 구체적으로 “난 결혼하면 휴가를 적극적으로 써서 많은곳에 여행을 다니려고 해요. 신혼여행은 작게 시작하고, 결혼 첫 여름휴가부터 시작해 발리, 핀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북부와 프랑스 남부를 도는 여행도 생각해놓고 있어요. 그리고 타히티까지. 뭐, 유럽쪽은 차를 렌트해서 다니는 거죠. 전세계 안 가본 데가 없이 멋진 곳은 다 내 와이프와 여행 다니는 것, 그게 내 인생의 꿈이자 목표예요. 그래서 열심히 돈도 벌려고요. 여행 다녀야 하니까”라고 얘기한다면, 여자는 그때부터 희망에 부푼다. 그 남자와의 미래를 꿈꾸면서 말이다.
남자가 일하는 분야에서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앞날이 유망한지, 또한 자신의 직업의 전망에 대한 얘기를 구체적으로 하는 것도 여자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요소다. 현재 도넛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이다음에 큰 도넛 회사를 차릴 꿈을 갖고 있고, 지금은 그 꿈을 위해서 경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여자는 그 말에 설렌다. 남자들은 흔히 군대 갔다 온 얘기를 끝도 없이 해대는데, 군대 얘기도 이런 식으로 하면 효과적이다.
내가 잘 알고 지내는 한 후배의 경우에는 남자가 “군대 있을 때내가 우리 부대에서 페치카 담당이었어요. 나, 페치카 엄청 잘 피우거든요. 결혼하면 페치카 만들어줄게요”라는 말에 벽난로를 켜놓고 그가 끓여주는 커피를 마시는 상상을 하며 평생 함께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렇게 그 얘기에 혹해서 결혼했는데, 나중에 부대에서 페치카를 잘못 때서 매일 혼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제 무를 수도 없다며 웃어넘긴다.“정직의 아이콘인 남편이 그런 뻥을 칠 줄이야. 정말 상상도 못했어”라며 웃는 그녀에게, 지금 페치카 때면서 사느냐고 묻자 페치카는커녕 촛불 한번 켜주지 않는다고 한다.
인생이 뭐 있겠는가. 우리 인생의 마지막엔 결국 사랑의 기억들이 남는다. 그런데 그 사랑의 씨앗이 여물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양분이 필요하다. 환상이라는 양분 말이다. 사랑은 서로의 비전 속에 설레고 부풀고 꽃을 피운다. 미래의 전망과 비전, 그것이야 말로 사랑의 꿈을 합체시키는 것이고, 그것이 서로의 마음을 흔드는 엑기스다.
* 이 글은 아나운서 이숙영의 <몇 마디 말로 이성을 사로잡는 불변의 남녀 대화법>에서 발췌했습니다(예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