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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너머] 후배의 결론

“일과 가정 가운데 하나 선택해!” 똑똑하고 글 잘 쓰던 후배는 졸업 뒤 S그룹 계열사에 취업했다. 남들의 부러움을 사며 시작한 일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았다. 일이 끊이지 않았다. 한번 출장가면 두달 넘게 집을 떠나 있어야 할 때도 있었다. 일찍 결혼한 후배에게는 아내와 두 아이가 있었다. 2년 가까이 계속 밤 12시 넘어 퇴근하던 어느 날, 후배는 착하기만 하던 아내의 차가운 한마디에 맞닥뜨려야 했다. 억울했다. 먹고살려고 한 일이었다. 남들 부러워하는 일자리였고, 남들 부러워하는 기회를 죽을 고생해가며 얻었고 지켜냈다. 자기만을 위한 일은 아니었다.

결국 후배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고향으로 가 가구점을 차렸다. 그 위험한 짓을 왜 하느냐는 비난을 뒤로하고 그는 하루 종일 가구점에 앉아 손님을 기다렸다.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좋아하는 일을 했다. 많은 ‘잘나가는’ 이들은 이런 갈림길에서 그냥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한다. 가족은 부양의 대상일 뿐 대화의 상대가 아니다. 일은 일일 뿐, 즐거울 수 없는 것이다. 승진하고 더 많은 연봉을 성취하는 일이 목표일 뿐이다. 일 자체는 ‘먹고살기 위해’ ,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참아야 한 고통일 뿐이다.

그렇게 살아가지만 결국 어느 시점이 되고 승진을 하지 못하면 회사에서나 가정에서나 퇴물이 되고 만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눈칫밥을 먹으며 하루를 보내게 된다. 많은 이들은 견디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회사에서 밀려나 퇴직금을 준비 없는 창업에 쏟아붓는다. 부장도 팀장도 아니라니 도대체 나는 누구란 말인가. 그 압박감을 참지 못해 금세 있는 돈을 다 털어넣어 치킨집이나 커피전문점을 차리고 사장님이 된다.

그 이후는 불 보듯 뻔하다. 전국 자영업자의 절반 이상이 월소득 100만원을 넘기지 못한다. 자영업 폐업이 사상 최대다. 버틸 수 없을 때까지 버티다 문을 닫는 자영업자가 대다수다. 한국 치킨집의 운명을 그린 ‘치킨버블’이라는 기사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까지 실릴 정도니 말이다.

물론 이들 중 소수는 ‘샐러리맨의 꽃’이라는 임원이 되고 억대 연봉도 즐기고 차도 운전기사도 비서도 회사에서 제공받는다. 하지만 수명은 길지 않다. 임원이 되는 순간 매년 실적에 따라 자리의 운명이 결정되는 신세가 된다. 1~2년 만에 회사를 나오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러고 나서 걷는 길은 그전에 회사를 나간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된다.

사직서를 내는 후배를 말리던 이들은 말했다. 나가면 쉽지 않다고. 회사에 있을 때가 편하다고. 위험하다고. 하지만 떠오르는 반문. 명함이 사라지는 것은 고통스럽고 균형 있는 삶이 사라지는 것은 고통스럽지 않으냐고. 수입이 불안하면 안 되고 관계가 불안한 것은 괜찮으냐고. 그리고 그 회사라는 곳, 얼마나 안전한 곳이냐고. 회사 문 나선 이사님들의 다음 삶을 알고 있느냐고.

후배의 가구점은 잘되는 듯하더니 다시 어려워졌다. 가구점 문을 닫은 후배는 또 다른 직장을 찾아 나섰다. 고뇌했고 방황도 했다. 하지만 결코 후회는 하지 않는다. 훨씬 더 균형 있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그때 아내의 질문은 틀렸다. 일과 가정 사이에 하나를 선택하는 게 아니다. 여러 종류의 일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연봉과 명함을 따라 일을 택할 것인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일, 균형 잡힌 삶을 가능하게 하는 일을 택할 것인가. 청년고용률이 사상 최저라는 2014년, 일자리를 구하는 모든 이들의 건투를 빈다. 당신에게 좋은 ‘자리’가 아니라 좋은 ‘일’이 주어지기를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