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우주비행사 얼 젠슨은 자신의 외동딸 조시를 지구에 남겨둔 채 우주선을 타고 외계로 향한다. 통제소에서 우주선의 비행을 관찰하고 있던 우주국의 프루바 박사는 몰래 연료방출버튼을 눌러 젠슨의 귀환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프루바 박사는 이 사고를 통해 사람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우주국으로 들어오는 성금을 얻어내려는 속셈으로 방송을 조작한다. 20년 뒤 조시는 천문관측소에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애인과 사랑을 나누던 중 모니터에 이상한 물체가 잡힌 것을 목격하고 그것이 자기 아버지가 탄 귀환로켓임을 확신한다. 젠슨은 미국인들의 영웅이 되고 백악관에 가 대통령과 만남을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을 우주 미아로 만든 프루바 박사가 나타나자 감춰둔 그의 분노는 마침내 폭발하고 만다.■ Review 고상한 것들을 향한 반감으로 충만한 ‘성인용’ 애니메이션임을 표방한 바 있는 빌 플림턴의 <난 이상한 사람과 결혼했다>(1997)는 그렇다고 해서 저속함으로 단단히 무장한 작품도 아니었다. 오히려 거친 펜터치 자국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탓에 언뜻 조야해보이기까지 하는 그림 속에서, 극대화된 만화적 과장을 통해 모든 것을 희화화해버리는 재기가 신기해보이는 영화였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2001년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이며 SICAF 상영작이기도 한 플림턴의 신작 <뮤턴트 에일리언> 역시 그러한 전작의 특징으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영화다.
여기 이 세계에는 어떠한 신랄한 풍자도 들어설 여지가 별로 없어보인다. 미국을 대표하는 온갖 상징물들이 웃음거리가 되고, 백악관이 거대한 우주선의 그림자로 뒤덮이고, ‘슈퍼스타’ 예수 그리스도가 전기기타를 연주하고, 군산복합체의 하수인들이 잔학무도한 행동을 저지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하나의 작품이 비판적 함의를 지닐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일일 것이다. 풍자는 내부에서 다듬어진 바늘 끝이 텍스트 외부를 향할 때 비로소 성립되는 것이지만, <뮤턴트 에일리언>은 우리의 상식과 관습, 고정관념 등을 그 내부의 자장 안에 끌어들여 과장되게 비틀어 재미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분명 희화에 가깝다.
프루바의 음모로 아버지를 잃게 된 조시의 어린 시절 모습은 웬만한 디즈니 캐릭터 못지않게 앙증맞다. 그런데 플림턴의 (악취미라기보다는 말 그대로의) 엉뚱함은 이 소녀가 프루바의 손가락을 물어뜯어 잘라 먹어버리고, 곧이어 성인이 된 그녀가 천문관측소에서 자신의 애인 다비와 격렬한 섹스를 벌이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캐릭터에 대한 우리의 섣부른 이해를 급격히 다른 자리로 돌려놓는다. 플림턴의 희화는 이처럼 끝내 파열에 이르지 않고는 스스로의 간지러움을 참지 못하는 자의 낄낄거림, 마침내 파열에 다다른 순간 터뜨리는 폭소 같은 것이다.
그래서 기어이 신체는 조각나고 누군가의- 소녀 조시이든 괴물이든- 몸 속으로 들어가 배설물이 돼나오고야 만다(그렇다고 여기서 스플래터 호러의 익숙한 장면들을 떠올릴 필요는 없다. 플림턴의 애니메이션은 눈으로 볼 땐 그렇지 않은데 글로 옮겨놓고 나면 이상하게 엽기적이다). 혹은 지나치게 비대해진다. <난 이상한 사람과 결혼했다>의 비대해진 유방, <뮤턴트 에일리언>의 노즈 행성에 거주하는 코, 손가락, 눈알, 입술 등의 모습을 한 외계인들을 보라. 길쭉한 산꼭대기에 있는 조시의 천문관측소 역시 마찬가지다(거대한 남성의 성기 위에 얹힌 유방, 혹은 여성의 성기). 그렇다면 프루바의 거대한 인공위성 애드쉽은?
결국 플림턴의 독특한 점은 그가 스플래터 호러나 포르노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기괴한 행위까지도 마치 딱따구리, 톰과 제리, 혹은 벅스 바니의 장난처럼 다룰 줄 안다는 데 있다. 또는 그 반대의 추측도 가능하다. 이건 특히 그의 단편작업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는 인간의 신체를 구슬치기나 공놀이하듯 다루는 것을 넘어서 아예 그것이 구슬이나 공처럼 보이게까지 만들고 싶어한다. 우주비행사 젠슨의 상상의 창조물인 노즈 행성은 어쩌면 플림턴 자신의 꿈의 경지, 지극한 유희의 낙원이기도 할 것이다.
<뮤턴트 에일리언>에서 가장 재미나게 읽히는 부분은 바로 ‘돌연변이 외계인들’에 관한 것이다. <에이리언>과 <모로 박사의 섬>의 이종교배 이후 다시 돌연변이의 과정을 거쳐 태어난 동물들. 아무런 양심도 없는 순수한 파괴자로서의 에일리언(‘완벽한 생명체’)에게 느끼던 공포는 더이상 없다. 이 돌연변이 괴물들을 창조한 것은 미치광이 과학자의 허망한 권력욕이 아니라, 오히려 젠슨의 굶주린 성욕과 결합된 복수심이다. 이 또한 플림턴만의 엉뚱함이 있기에 가능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괴물들은 단지 유쾌한 놀이꾼들일 뿐이다(게다가 웬만한 애니메이션 캐릭터들 못지않게 제법 귀엽기까지 하다). 인간들의 사지를 찢고 잡아먹어도 우리는 그들을 매우 즐겁게 바라볼 수 있다.
우주 미아가 된 젠슨이 발견한 우주선은 일종의 노아의 방주이다. 방주에 타고 있던 동물들은 제 모습 온전히 귀환하는 것이 아니라 돌연변이가 되어, 괴물이 되어, 외계인이 되어 되돌아온다. 그들의 귀환은 지상에 남은 인간들을 처치하기 위해서이다. 어쩌면 그들은 즐겁게 파열하는 모든 가치들의 캐리커처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만 이야기하기엔 분명 ‘성인용’ 비주얼로 가득한 <뮤턴트 에일리언>의 서사가 지나치게 ‘아동용’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뭐 어떠랴? 적어도 그 즐거움을 우리가 의심없이 즐기는 동안만큼은. 유운성 [email protected]
빌 플림턴의 작품들
코털은 속눈썹 되고, 안경 벗으면 눈알 빠지고
빌 플림턴의 이전 작품들을 보고 싶은 이들이라면 국내에 출시된 <난 이상한 사람과 결혼했다>나 <난 이상한 사람과 결혼했다2>(원제: Mondo Plympton)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플림턴의 작품목록과 그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원한다면 ‘플림툰스 Plymptoons’ 홈페이지(http://www.awn.com/plympton)를 둘러봐도 괜찮겠다. 그런데 뭐니뭐니해도 빌 플림턴의 진가는 장편보다는 단편 애니메이션쪽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은가 싶은데, 궁금하다면 http://atomfilms.shockwave.com/af/home으로 당장 찾아가 그의 이름을 검색해볼 것.
대략 30편이 좀 넘는 플림턴의 단편들이 올라와 있으며 과 같은 플림턴에 관한 다큐멘터리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에서는 그의 작업실 풍경과 함께 장편 애니메이션 <뮤턴트 에일리언>의 기본적 아이디어의 출처, 캐릭터 스케치 등이 소개되고 있다. 단편작품 가운데 몇몇 흥미로운 것들을 간략히 살펴보자. 인간의 신체를 거의 진흙 다루듯 가지고 노는 데서 기이하게 웃음을 끌어올리는 플림턴의 개성이 거의 온전한 형태로 드러난 (1987)는 오스카 단편부문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MTV에서 방영된 극히 짧은 한 숏짜리 단편들의 모음인 (1990)에선 한 여자가 안경을 벗자 그녀의 눈알이 따라 올라가는가 하면, (1994)는 한 남자의 코털이 마침내 속눈썹이 되기까지의 사연을 재기발랄한 선들의 유희를 통해 보여준다. 칸영화제 단편부문 심사위원상을 수상하기도 한 (1991)는 서로 상대방의 얼굴에 온갖 가해를 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이다.
성적과잉과 극단적인 신체훼손의 결합으로 특징될 플림턴의 세계는 1990년대 후반 작품들에서 좀더 과격(?)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1997), (1998), (1999) 등을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타고 가던 롤러스케이트가 벗겨지자 발부터 차례로 온몸이 다 바닥에 긁혀 없어지는가 하면, 두 남녀가 연애하는 도중 소파에서 벌일 수 있는 일들이 간단명료하게 정리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