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민에서 '공공의 영웅'으로
<박하사탕>의 후속작 <단적비연수>는 설경구 스스로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고 할 만큼 상반되는 평가를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영화는 낯설었지만 설경구는 낯익다. 여기서 그가 맡은 ‘적’은 왕위계승자라는 지위와 부족 안에 전해 내려오는 오랜 주술마저 위반하면서 이룰 수 없는 사랑에 헌신한다. 운명과 세계에 근본적으로 불화하고 완전한 파멸을 향해 내달리는 복합적인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가 설경구에게 기대한 역할은 <박하사탕>의 그것과 숨결을 공유한다. 이것은 특정 스타가 확보하고 있는 인격적 이미지(star personality)를 이어가려는 캐스팅 전략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2000, 감독 박흥식)의 김봉수는 설경구가 연기한 캐릭터 중에 이색적인 인물이다. 말이 느릿느릿해졌고 눈은 순하게 내리깔았으며 말할 때 입술을 앙다물기보다는 조금 앞으로 내민 듯한 것이, 세상만사에 굼뜨고 소심한 전형적인 소시민의 외양이다. 파트너였던 전도연의 극중대사 가운데 “웃을 때 볼우물도 함께 생겨서 예쁘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화를 보는 내내 어떤 조바심이 마음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착하게 미소짓는 저 얼굴에서 입술 한끝이 조금만 비죽이 치켜올라가도 얼마나 냉소적인 얼굴로 돌변하게 될 것인지, 저 눈꺼풀을 동그랗게 들어올리고 눈동자에 조금만 힘을 주면 우리를 어떤 공황상태로 몰고 가는지 아직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이창동 감독이 신작 <오아시스>를 아무리 “찐한 멜로”라고 소개해도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며 푸념했다는데, 그건 아마도 설경구를 캐스팅했기 때문일 것이다.
<공공의 적>(2002, 감독 강우석)은 예상과 달리 설경구가 출연을 자청했다고 한다. “워낙 낯가림이 심해서 제대로 인사도 못 나눈 처지”라는 강우석 감독에게 설경구가 정말 제발로 찾아갔다면 그는 영리한 사람이다. 김영호와 강철중은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면서 배우의 연기 영토를 확고하게 만들어주는 캐릭터들이기 때문이다.
영호라는 인물이 섬세하기 때문에 더 깊이 상처받고, 약하기 때문에 강한 사람보다 더 자주 훼절해야 했으며, 결국엔 존재의 근본을 감당하지 못하는 지점까지 떠밀려가버린 유형의 소시민이라면, 강철중은 말이 좋아 경찰이지 애초부터 부정적인 의미의 소시민 근성에 푹 절어 있는 인물이다. 이런 삶의 방식은 험악하고 경쟁적인 사회에서 일종의 보호막으로 작용한다. 덕분에 그의 내면에 보존할 수 있었던 소시민적 양식이 터무니없는 악에 맞닥뜨리자 ‘공공의 영웅’으로 화려하게 부활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자루처럼 부풀어오른 아랫배에다 바람 넣은 고무장갑처럼 뺑뺑한 손가락을 달고 게으르게 휘적거리는 모양새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설경구의 얼굴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그의 눈은 쌍꺼풀이 없고 작은 편인데, 길지는 않아도 검고 진한 속눈썹이 얇은 눈꺼풀을 따라 내려와 덮을 때면 사랑스럽고 아름답다는 느낌을 준다. 그 느낌 그대로 편안하게 올려 뜨면, 완만한 마름모꼴이 된 눈을 검은 눈동자가 가득 채운다. 그런데 어떤 순간에는 눈이 세모꼴로 치뜨여지면서 작아진 검은 눈동자가 동동 떠다닌다. 이것은 그의 감정이 격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눈꺼풀과 말소리가 천천히 움직이고 왼쪽 입술 한 귀퉁이가 삐죽이 올라가면서 별로 고르지 못한 치열을 반쯤 드러낸 채 소리없는 웃음을 흘릴 때에는 그가 잔인한 침착성을 갖게 되었다는 뜻이다. 반면 화를 다스리지 못하고 어쩔 줄 모르는 상태가 되면 그는 얼굴을 온통 일그러뜨리고 그냥 운다.
<공공의 적>, 소름끼치도록 정확한 연기
영화의 초반부에 이미 사건과 범인의 개요가 훤히 드러난 <공공의 적>이 관객을 끌어가는 힘은 바로 이런 강철중의 감정적인 디테일이다. 그런데 이같은 연기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 본인의 해명과 관전자의 판단은 좀 다르다. “분석 같은 거 안 한다. 작품분석을 하면 그 분석에 스스로 말릴까봐 깡통으로 가버린다”는 설경구의 말과 달리, 그의 연기는 고도로 지적인 조립과정을 거쳐서 나온 것처럼 보인다. 강우석 감독 또한 “그 친구는 정말 영악하다. ‘머리를 비우고 감독님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테스트할 때마다 이것저것 내보였다. 그때마다 내가 ‘너 지금 뭐하는 거냐?’ 하면서 일일이 다 잡아줬다. ‘감정 좀 넣어라’ 그러면 ‘시나리오에 그런 지문 없는데요’ 이러면서 능청을 떨었다. 나중에 영화를 붙여놓고 보니 캐릭터의 일관성이 장난이 아니었다. 내 진을 다 빼놓고 내 장점을 다 뽑아 쓴 것이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한치의 오차나 잉여도 없이 소름끼치도록 정확한 연기에서 때때로 강한 인공의 냄새를 맡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이 글의 서두에서 설경구의 얼굴이 우리 시대의 초상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소시민의 심리적 자화상이다. 가장 이질적인 것으로 보였던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김봉수 캐릭터도, 소시민성이 훼손되지 않고 안전하게 보존되었을 때 나타나는 모습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궤적 위에 놓여 있다. 80년대의 시대적 자화상인 안성기가 착하고 수줍게 더듬거리는 이미지로 기억된다면, <박하사탕>의 영호는 사회적 좌절로 인해 내파(內破)해버린 소시민이다.
반면 <공공의 적>의 소시민 강철중은 한 단계 더 공격적이다. 조폭영화의 주인공들은 지배 질서에 굴종하는 대신 반항하는 쪽을 택한다는 점에서 강철중과 닮았다면, 최소한의 윤리적 자각도 수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강철중과 구별된다. 강철중은 비록 줏대없이 뺀질거리긴 해도, 아니 뺀질거리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가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공공 윤리를 설파하는 전도사로 나서게 된다. 스타라는 존재는 개인의 표현력 혹은 개성(personality) 안에서 어떻게 사회적인 것이 작용하고 협상하는지를 읽어내는 무대가 되며(<크리스틴 글레드힐, <스타덤: 욕망의 산업 >), 설경구는 우리에게 흥미로운 텍스트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