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한 어떤 주석도 사랑의 실체를 콕 짚어내지는 못한다. 연애담의 원전 격인 <트리스탄과 이졸데> 역시 마찬가지다. 익히 알고 있듯이, 두 남녀가 영원한 사랑을 약속할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미약(媚藥)을 마셨기 때문이다. “참된 연애는 마치 유령과 같아서 그것이 어떤 것인지 말하는 사람은 많아도 정작 그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랑에 관한 연구는 그러니까 400년 전 한 프랑스 작가가 남긴 잠언에서 그닥 나아간 것이 없다. 사랑의 근원을 파악할 수 없으니 사랑의 역학을 살피는 일만이 남는다. <우리도 사랑일까>의 마고(미셸 윌리엄스)가 더없는 짝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저울질하는 걸 보라. 사랑의 원천은 몰라도 사랑의 거처를 짐작할 수 있을지 모른다.
마고는 출장길에 대니얼(루크 커비)을 만나 호감을 품는다. 괜한 오지랖으로 사람을 곤란하게 하는 얼치기인 줄 알았는데, 막상 대화를 나눠보니 다감하고 근사한 남자다. 하지만 로맨틱한 상상은 잠깐의 공상에 그친다. 알고 보니 대니얼은 마고의 집 앞에 살고 있다. 비밀연애는 애당초 글렀다. 마고는 루(세스 로건)와 결혼했음을 고백하지만 대니얼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곁을 맴돈다. 마고는 30년 뒤에 만나면 키스 한번쯤은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선을 그어도 보지만, 그 약속을 어기는 건 본인이 먼저다. 마고와 대니얼의 관계는 그러나 급진전되지 않는다. 둘도 없는 친구 같은 루를 포기할 수 없는 마고는 결정적인 순간에 매번 돌아서고, 얼마 뒤 대니얼은 마고의 곁을 떠난다.
<우리도 사랑일까>는 사랑을 충만한 완전태라고 섣불리 규정하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이 세 남녀의 러브 스토리는 마고가 누군가를 선택한 순간 일찌감치 막을 내렸을 것이다. “비행기를 놓치는 건 두렵지 않아요. 비행기를 놓칠까봐 걱정하는 게 두렵지.” 대니얼과의 첫 만남에서 공항공포증을 털어놓는 마고. 마고의 불안은 외부에 있지 않고 내부에 있으며, 집요하게 반복된다. 마고가 루에게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질문은 당신은 나를 정말로 사랑하느냐다. 사랑한다고 물어서 상대가 사랑한다고 답했는데, 마고는 그걸 사랑이 아니라고 받아들인다. 대니얼에게 던지는 유혹의 말도 다르지 않다. “나는 당신을 사랑해”라고 말하는 대신 마고는 “나를 어떻게 하고 싶은지 알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오랫동안 갈망했던 무언가를 손에 쥔 순간, 또 다른 매력적인 것이 우리에게 다가오곤 한다.” 사라 폴리 감독의 말을 조금 바꿔 해석하면, 사랑이라는 풍선을 부풀케 만드는 건 다름 아닌 불안이다. ‘이 사람이 진짜 사랑일까?’ 불안이야말로 사랑을 작동케 하는 동력이다.
전작 <어웨이 프롬 허>에서 생의 막다른 문턱에 선 남녀의 복잡한 감정 회로를 세심하게 헤집었던 사라 폴리는 두 번째 연출작 <우리도 사랑일까>에서도 장기를 맘껏 발휘한다. 한발 다가서면 연기처럼 사라지는, 그래서 다시 물러서서 의심하게 만드는 사랑이라는 요상하고 괴팍한 마법의 순간들을 그는 놓치지 않는다. 사랑이 잠깐이라도 현실에 머무르는 짧은 순간들은 대부분 마고가 두 남자를 훔쳐볼 때에 발생한다. 결혼기념일에 대니얼이 끄는 인력거에 남편과 함께 올라탄 뒤 대니얼의 얼굴을 힐끗거릴 때, 사랑은 마고의 눈 속에만 있다. 물론 이 미묘한 암시는 미셸 윌리엄스의 디테일한 연기 때문에 분별 가능하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는 필히 무엇을 결여한 자이나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랑받는 이는 자신이 무엇을 갖고 있으나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사랑하는 이가 갈구하는 것이 사랑받는 이가 지닌 것은 아니라는 점이 특히 중요하다. 인간의 정신구조에 대한 명제를 빌려오면, 사랑은 거듭 반복되는 실패다.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실은 에필로그인 미셸 윌리엄스의 멍한 시선이 그걸 일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