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뜨거운 물 붓지 마아∼. 발에서 때밀려욧!” 코에서 울리는 특유의 오묘한 화음으로 엄정화가 제작부에게 말한다. 별로 안 뜨거우니, 걱정 말라고 하자 발을 쑤욱 ‘다라이’에 담근 그녀가 옷가지들을 신나게 밟아대기 시작한다. “자, 슛 들어갑니다” 하는 사인이 나왔지만, 꿀렁꿀렁 촉감이 좋은지 아예 물장난을 칠 기세다.
유하 감독의 재기작 <결혼은, 미친짓이다>의 막바지 촬영이 이뤄지고 있는 곳은 서울에서 얼마 남지 않은 산동네 금호동 언저리다. 주머니보단 마음이 넉넉한 부부들이 첫 보금자리로 삼기에 적당할 듯한 옥탑방에서 사이좋게 빨래를 밟고 있는 준영(감우성)과 연희(엄정화)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샘이 날 법도 한데 사정은 간단치 않다.
이날 촬영분은 결혼한 지 두달밖에 지나지 않은 연희가 남자친구였던 준영을 찾아와 빨래를 하는 등, ‘딴집 살림’을 시작하는 대목. 이날 이후 연희의 옥탑방 체류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아예 ‘본가’로 돌아가기 싫어하게 되기도 한다. 원작소설에서처럼 결혼이라는 제도를 향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잽을 날렵하게 날려대는 이 작품은 1월24일쯤 촬영을 마치고 화사한 신부들이 기다리는 4월, 이들의 마음을 더욱 싱숭생숭하게 만들 예정이다. 글 문석·사진 이혜정(1) “맛 좀 봐라, 얍!” 우성이 비누거품을 옷에 묻히자, 연희는 싫지 않다는 듯 까르르거리며 피하는 시늉을 한다. 닭살 커플이라고?
(2) 소품 담당들이 샴푸인지 물비누인지 모를 액체를 붓고 부글부글 거품을 만들고 있다.
(3) 이 영화를 통해 ‘입봉’하는 김영호 촬영감독은 <무사>에서 2조 카메라를 책임졌던 인물이기도 하다.
<결혼은, 미친짓이다>는 감독과 남녀 주연 모두에게 “처음 같은 느낌”의 영화다.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로 실패를 맛봐야 했던 유하(4) 감독이나, “아직도 <마누라 죽이기>는 못 봤어요”라고 말할 정도로 영화에 대한 부담스런 기억을 갖고 있는 엄정화(5)나, 방송을 떠나 영화에 첫발을 딛는 감우성(6)이나 모두 “시작한다는 느낌으로 영화에 임하고 있다”며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