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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신인감독 14인] <라이터를 켜라>의 장항준 감독
2002-01-18

웬만해선 백수를 막을 수 없다!

“저 사람 어디서 봤더라….” 장항준 감독은 방송을 통해 꽤 알려진 인물이다. 야심한 시각 모 방송의 토크쇼에 나와 ‘의무방어전’을 치러야 하는 남편의 부담에 대해서 거침없는 수다를 늘어놓았고, 얼마 전엔 시트콤 <웬만해선 이들을 막을 수 없다>에 출연해서 단짝인 윤종신과 못 말리는 악동(이면서 비실이) 형제로 등장, 마니아 팬들을 흥분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본업은 충무로와 여의도를 오가며 활동해온 재기발랄한 이야기꾼. <박봉곤 가출사건> <북경반점>의 시나리오를 썼고, <깜짝 비디오쇼> <좋은 친구들> <천일야화> 등에서 방송작가로 뛰었다.

1년 전, 그는 한 중범죄자가 새로 만들어진 재활프로그램의 하나로 평범해 뵈는(그러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은) 한 가정에 던져지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불타는 우리집>으로 감독데뷔 준비를 하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작품을 바꾼 이유는 뭘까. <신라의 달밤>의 박정우 작가가 쓴 <라이터를 켜라>의 연출 제의를 한때 익영영화사에 머무르다 인사를 텄던 이관수 프로듀서로부터 건네받았을 때, 그의 심정은 이랬다. “시나리오 작가 출신 감독이 남의 시나리오로 데뷔를 해? 세상에 이처럼 쪽팔리는 일이 있나” 처음엔 그래서 고사했다. 그런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춘 것이, 파장이 상당했다. 평소 자신이 즐겨 찾는 메뉴인 소시민에 대한 애정 듬뿍한 시선을 좀더 쳐넣거나,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한 다양한 계층들의 가지각색 반응을 통해 뭔가를 보여줄 수 있겠구나 싶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감독 데뷔는 상당한 수준의 ‘구라’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원래 말많은 집안에서 태어나” 자신이 쏟아내는 말의 3분의 2는 ‘구라’라고 서슴없이 털어놓는 그는 고등학교 시절, 영화포스터만 보고선 애들 불러모아 침 튀겨가며 정말 영화를 본 것처럼 믿게 할 정도로 스토리구성 능력을 발휘하곤 했다. 그런 그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장래 희망으로 ‘시나리오 작가’라 적은 건 자연스런 일. 하지만 그의 전공은 서울예대 연극과. 그것도 연기 전공이다. 자신의 입시지도 교사가 연극쪽이어서 할 수 없이 택한데다, 들어간 뒤에도 연출 정원이 적어 재빨리 포기하고 대신 독학의 길을 걸었다.

2년 내내 극작법 수업만을 골라 들으면서, 그가 읽은 시나리오와 극본은 무려 2천여편. 학교 도서관과 영화진흥공사 자료실을 뒤져가며 양장 표지에 등사된 <시민 케인>부터 프랑스 누아르 영화까지 종횡, 섭렵했다. 그게 살이 되고, 피가 된 것일까. 지금도 그의 뇌수에선 아이디어가 둥둥 떠다닌다. 그가 꼽는 비결은 ‘산만’. 뭐 재밌는 일 없나 싶어 더듬이를 가만두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작업에도 “공연히 웃기려 드는 건 도대체 참을 수 없다”는 명확하고 엄격한 ‘원칙’이 있다. 인간을 뒤쫓되, 삶과의 마찰이 풍겨내는 진한 페이소스가 이야기에 스며들어 있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란다. 평소 지론을 따라, 지금 그는 울산과 서울의 촬영장을 오가며 부지런히 뛰고 있다. 글 이영진 [email protected]·사진 오계옥 [email protected]

어떤 영화?

제작사 에이스타즈 출연 김승우, 차승원, 박영규, 김채연 15% 촬영중

백수 허봉구(김승우)는 오늘도 노부모의 쌈짓돈을 노린다. 예비군 훈련시에 점심값을 해결하기 위한 절박한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의 미션은 역시 임파서블. 새벽 길에 어머니가 적선해준 몇 천원으로 하루를 연명해야 했던 봉구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신의 수중에 고작 300원이 전부임을 알게 된다. 무엇을 할 것인가, 아니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가엾는 자신의 처지를 달래고자 그는 일회용 라이터에 전재산 300원을 투자한다. 훈련장에서 만난 남자의 도움으로 재수좋게 봉구는 일단 서울역까지 택시를 얻어타고 나오지만, 이때부터 봉구의 목숨을 건 라이터 되찾기 여행이 시작된다. 갑작스런 복통에 찾았던 화장실에 두고 나온 빨간색 라이터는 조폭 보스 양철곤의 손에 들어가게 되고, 이를 알게 된 봉구는 청탁을 받고서 보궐선거를 도왔지만 당선된 뒤 입을 씻은 박 의원에게서 받지 못한 돈을 돌려받기 위해 부산행 기차에 몸을 싣는 철곤을 추격하는 것. 과연, 봉구는 라이터회수작전에 성공할 것인가. ▶ 2002 신인감독 14인 출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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