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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공모전 유감
2002-01-02

조종국 I 조우필름 대표 [email protected]

무슨 일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시나리오 공모에도 많은 낙수가 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심사결과나 입선작과 관련된 내용만 발표하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는다. 몇년 동안 <씨네21> 시나리오 공모와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를 진행하면서 겪은 일 중에는 묻어두기 아까운 게 좀 있다.

몇해 전 <씨네21> 시나리오 공모 마감날, 쉰을 훌쩍 넘긴 듯한 아저씨가 고운 분홍색 보자기를 들고 나타났다. 큼직한 이 보자기 속에는 볼펜으로 꼭꼭 눌러 쓴 200자 원고지 묶음이 들어 있었는데, 놀라운 것은 그 원고지의 높이가 두 뼘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또 자신이 도착할 때까지 퇴근하지 말고 기다려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던 청년도 있었다. 이 청년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전화했는데, 담당자를 만나서 직접 전달하고 싶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길이 많이 막혀 늦었다는 변명과 함께 청년이 도착한 것은 밤 10시쯤. 그는 여수에서 왔는데 돌아갈 차비가 모자란다며 2만원을 꿔갔고, 지금까지도 나는 그 돈을 돌려받은 기억이 없다.

‘잡범’들도 많다. 봉투 안에 디스켓만 달랑 넣어 보낸 사람도 있고, 시나리오 접수하러 와서 귀빈 대접을 요구하는 무뢰한도 있고, 접수 절차가 너무 간단하다며 신경질을 내고 간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 심부름 왔으니까 접수했다는 확인서 써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한 학생은 프린트할 곳이 없다며 프린트를 부탁해놓고 슬그머니 사라지는 바람에 졸지에 프린트한 시나리오를 묶어서 대신 접수까지 해준 적도 있다. 기막힌 일 한 가지 더. 마감날에 찾아와서는 한달 전에 접수했는데 몇 군데 고쳐야 하니까 자기 시나리오 찾아달라고 울먹이던 한 여고생이 있었다. 몇백편을 다 뒤져서 겨우 찾아줬더니, 쓱 훑어보고는 천연덕스럽게 하는 말이 ‘안 고쳐도 되겠다!’.

이런저런 친분과 인연으로, 이번에 처음 열린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와 출판사 실천문학사가 공동으로 주최한 인터넷 신춘문예의 시나리오 부문 공모 운영과 심사를 맡았다. 이번 공모는 인터넷으로만 접수했기 때문에 예전과 같은 뒷이야기는 별로 없었지만 심사를 하면서 몇 가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먼저 의외로 맞춤법이나 표기법을 틀린 경우가 너무 많고, 시나리오를 읽기 좋고 보기 좋게 편집하는 데 별로 신경을 쓰지 않더라는 것이다. 영화로 만들어져야 본디 의미가 살아나는 것이 시나리오의 ‘운명’이라면, 특히 공모전에서는 보는 사람들의 눈에 들도록 하는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 응모작들을 읽다보면 사투리나 은어, 속어를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쓴 것도 아닌데, 단순 실수로 보기 어려운 오자, 탈자, 오기가 심심찮게 눈이 띄고, 심지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낱말을 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뜻만 통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글을 쓰는 태도와 자세가 치열해야 하는 것은 작품의 완성도에도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 주최쪽에서 제시한 요강을 전혀 지키지 않고, 다른 공모전에 냈던 작품을 그대로 다시 내는 예의없는 응모자들도 거슬렸다. 기획의도, 시놉시스, 주요 등장인물 소개를 따로 붙이라는 공지에도 불구하고 본문만 달랑 내거나, 이미 냈다가 떨어진 무슨 공모 응모작이라는 타이틀을 고치지도 않고 그대로 낸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귀띔하자면 부쩍 공모전도 많아졌는데, 다른 공모전에서 떨어진 작품을 낼 때는 적어도 제목이라도 바꿔서 내는 것이 예의 이전에 입선 가능성을 높이는 요령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