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과 <반지의 제왕>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같은 주에 개봉되는 영화들은 아니지만 이 두 시리즈는 여러 가지 면에서 비교 대상이 된다. 둘 다 모두 경악스러울 정도로 성공적인 환상문학 작품이 원작이라는 것, 둘 다 시리즈물이며 앞으로 한동안 일년에 한편꼴로 개봉되어 계속 경쟁상대가 될 것이라는 것, 둘 다 원작의 명성이 불러들인 참견꾼들로 가득하다는 것…. 기타등등 기타등등….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표면상의 유사점일 뿐이다. 겉으로 드러난 숫자와 레벨들을 모두 떼어낸다면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을 1대1로 비교하는 것은 쉽지 않다. 도대체 환상물의 시리즈라는 이유만으로 이 두 작품을 직접 비교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둘 사이에 무언가 더 있는 것일까?
<반지의 제왕>, 장르팬들의 집단의식적 이미지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의 장르는 무엇일까? 가장 손쉬운 답변은 ‘둘 다 환상문학(또는 영화)이다’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어떤 이의도 제기될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에는 호빗 같은 종족들은 살고 있지 않으며 마법사 아이들을 교육하는 호그와트와 같은 학교는 없다. 이 모든 것들은 작가의 머리 속에서 나온 환상이다. 그러나 쉬운 답변이 대부분 그렇듯 이 답변도 그렇게까지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여기서부터 답변을 조금 세분화시켜야 하는데, 그러기 전에 일단 단어 정리가 필요하다.
우선 종종 오용되는 ‘환상문학’과 ‘판타지문학’ 문제부터 처리하자. 번역처리하면 동의어가 되어버리는 이 두 단어를 전혀 다른 의미로 따로 쓰는 것은 옳지 못하다. ‘환상문학’은 말 그래도 환상적인 설정을 다루는 모든 문학작품을 총칭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판타지문학’이라고 불리는 장르는 영어권에서 ‘칼과 마법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장르이다. ‘판타지문학’을 ‘환상문학’에서 분리시켜,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얄팍한 이야깃거리 정도로 정의하려는 시도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먼저 밝혀야겠다. 늘 하는 말이지만 장르는 작품의 질을 제한하지는 않는다. ‘칼과 마법사’ 장르를 정의하는 것은 작품의 질이 아니라 규격화된 설정이다.
<반지의 제왕>은 쉽게 ‘칼과 마법사’ 장르 안에 안착된다. 문제는 톨킨이 이 작품을 ‘장르물’로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에드거 앨런 포가 <모르그 거리의 살인>을 추리소설로 쓰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톨킨이 쓴 <호빗>과 <반지의 제왕>은 장르의 시조이다. 그가 자신의 작품을 위해 창조한 세계는 그뒤로 끝도 없이 모방되고 변형되어 장르를 형성하게 된다. ‘칼과 마법사’ 장르가 당연하다는 듯 ‘판타지’로 총칭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직까지 ‘환상문학’의 세계에서 이처럼 성공적으로 장르화가 성공한 예는 없었다. 톨킨이 ‘칼과 마법사’ 장르 팬들에게 그처럼 열정적인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것도 어떻게 보면 그 때문이다. 톨킨 애호는 일종의 조상숭배다.
여기서 영화화와 관련된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난다. 장르 애호가들은 개별 작품을 장르의 렌즈를 통해 바라본다. 그리고 그 렌즈는 장르 탄생부터 조금씩이지만 꾸준히 변형되어 고정된 것이다. 하지만 톨킨은 장르물을 쓰지 않았다. 그렇다면 장르 애호가의 고정된 시선은 톨킨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오히려 억제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만약 그 장르 애호가가 숭배하는 소설을 시각적인 매체인 영화로 각색하려는 감독이나 작가라면 어떻게 될까?
이런 세세한 질문에 답하려고 이 글을 쓰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다음 구체적인 문제점을 한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컴퓨터 게임이나 던전 앤 드래곤 게임의 이미지에 물든 피터 잭슨 버전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장면들은 비교적 ‘칼과 마법사’ 장르가 덜 고정된 시기에 발표된 랠프 박시의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장면들과 상당히 다르다. 그렇다면 그건 잭슨 개인의 개성일까? 아니면 21세기 장르 애호가의 시선이 고정된 결과일까? 만약 톨킨 팬들이 잭슨의 비전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면 과연 그것이 긍정적이기만 한 걸까?
롤링의, 롤링에 의한 <해리 포터…>
<해리 포터…>는 톨킨의 대척점에 서 있다. <해리 포터…>는 철저한 장르물이다. 장르의 기초를 다졌던 톨킨과는 달리 J. K. 롤링은 <해리 포터…>를 처음부터 기성품으로 만들었다. 단지 <해리 포터…>에서 주목할 것이 있다면 롤링이 기존의 장르 안에 얌전히 포섭되는 대신 몇몇 독립된 장르를 가져와 한데 묶었다는 데 있다. 적어도 <해리 포터…>에는 다음과 같은 장르들이 동시에 존재한다.
기숙학교물, 어린이 추리소설, 빅토리아 시대풍 멜로드라마, 영국식 판타지, 호레이쇼 앨저식 성공담, 기타등등 기타등등…
<해리 포터…>가 ‘아동문학’이라는 사실은 종종 이상할 정도로 무시되고 있다. <해리 포터…>를 진지하게 비평하려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아동문학이라는 스티그마타를 뜯어내 이 작품을 ‘진지한 작품’으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에 젖어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해리 포터…>가 아동문학이며 환상문학이라는 사실은 아주 중요하다. 아동문학만큼이나 환상문학을 장르화시키고 지속적으로 보존한 장르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트래버스의 <메리 포핀스> 시리즈, 캐롤의 <앨리스> 시리즈, 어슐러 르 귄의 <어스시> 시리즈,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를 보라. 심지어 톨킨의 장대한 세계도 <호빗>이라는 아동문학 작품에서 시작했다. 이런 작품들이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에 끼친 영향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해리 포터…>의 창의성은 잘못 평가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우린 <해리 포터…>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구체적인 선례들을 쉽게 끄집어낼 수 있다. 특히 질 머피의 <워스트 위치> 시리즈는 중요하다. 롤링은 마녀 기숙학교를 다룬 이 시리즈에서 호그와트의 기본 아이디어를 거의 그대로 끌어오고 있다. 80년대 중반에 텔레비전 영화로 제작되었고 최근 들어 미니시리즈로 제작된 이 작품의 각색 버전과 <해리 포터…>를 비교하는 것은 여러모로 유익하다. <해리 포터…>를 평가하면서 ‘칼과 마법사’ 물과 ‘마법학교 이야기’를 비교하는 것은 두 장르를 비교하는 것에 불과하다. 제대로 된 평가는 아무것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서툰 꼬마 마녀 밀드레드와 이마에 벼락 마크가 있는 운명의 영웅 해리 포터의 비교를 통해 얻어진다.
<해리 포터…>의 영화화를 간섭하는 사람이 <반지의 제왕>의 간섭자들과 정반대인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반지의 제왕>은 수십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작품이 형성하고 다져놓은 장르와 장르 팬들의 소유가 되었다. <반지의 제왕> 영화화는 한 작가의 작품을 영화화하는 것이 아니라 수십년 동안 조금씩 발전한 한 장르에 대한 집단의식적 이미지를 구체화시키는 작업이다. 하지만 아직 장르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적 없는 <해리 포터…>는 아직 이미 존재하는 조각들을 모아 재편성한 작가의 입김이 더 셀 수밖에 없다. J. K. 롤링이 엄격하게 영화의 충실도를 검사했던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해리 포터…>의 개성은 기존 조각들을 조립한 방식에 숨어 있으므로 영화감독의 자유를 허용한다면 결국 롤링을 떠난 전혀 다른 작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단순히 좋은 장르 영화대신 ‘J. K. 롤링’ 원작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직까지 작품을 소유한 작가가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원작자와 팬들 사이에서 감독의 균형잡기
팬의 소유인가, 작가의 소유인가라는 차이는 <반지의 제왕>과 <해리 포터…>라는 두 시리즈를 갈라놓는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반지의 제왕>과 피터 잭슨쪽이 유리하다. 우선 아무리 수십년 동안 고정된 이미지라고 해도 미들어스의 이미지는 여전히 표현 폭이 넓다. 결국 톨킨이 창조한 것은 이야기라기보다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세상이다. 세상은 이야기보다 몸을 펼 구석이 넓기 마련이다. 피터 잭슨이 만든 미들어스는 분명 몇몇 관객의 맘에 들지 않겠지만, 그건 힐데브란트 형제가 그린 미들어스의 그림이 맘에 들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들의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피터 잭슨의 버전은 여전히 인정받을 수 있다. 그건 결국 자잘한 취향의 문제이다. 캐스팅 역시 마찬가지이다. <반지의 제왕>에서는 리브 타일러의 기용이 팬들의 분노를 일으켰는데, 일단 영화를 보면 리브 타일러도 꽤 괜찮다. 타일러의 엘프어 발음이 얼마나 좋은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하여간 여기서도 관객이 타협해야 할 것은 배우가 가진 기존 선입견이지 신성 모독 따위는 아니다.
사실 잭슨은 톨킨의 세계를 재창조하기 위해 열성팬들의 눈치를 봐야 할 이유도 없다. 이미 그 역시 수십년 동안 삭은 톨킨 팬이므로, 그가 창조하는 이미지는 어쩔 수 없이 일반 톨킨 팬들이 맘속에 품고 있는 이미지의 일부일 수밖에 없다. 물론 그 결과는 상당히 ‘주류적’이어서, <데드 얼라이브>의 감독에서 느낄 수 있는 팽팽한 개성은 느끼기 힘들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감독이 자신의 개성을 일부러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간섭을 받지 않고 자신이 가진 비전을 구현하는 것이다. 잭슨은 그럴 수 있는 환경에서 작업하고 있다. 결과가 비교적 덜 개인적이라고 해도 그는 여전히 자유로운 예술가다.
하지만 <해리 포터…>의 영화화에는 그런 자유로움이 없다.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J. K. 롤링은 영화의 모든 면에 사사건건 간섭했다. 이런 간섭이 나쁘다고 만은 하지 않겠다. 크리스 콜럼버스의 <해리 포터…>가 지금만큼 유쾌한 판타지영화로 남을 수 있었던 것도 어느 정도는 롤링의 간섭 때문이다. 거의 그대로 사용된 롤링의 이야기는 여전히 흥미진진했고 영국인 배우들만을 기용하라는 것과 같은 고집스러운 요구의 결과도 상당히 긍정적이었던 것이다. 사실 롤링의 야무지고 종종 냉정하기까지 한 유머는 할리우드식 가족영화와는 쉽게 융화되지 않는 것이어서 롤링이 사사건건 참견한 것도 이해가 가기는 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간섭은 영화 자체의 힘을 어느 정도 빼놓고 만다. <해리 포터…> 원작의 진짜 매력은 찰스 디킨스가 썼을 법한 노골적인 멜로드라마에 영국식 메마른 위트를 뒤섞는 특유의 수법에 있었다. 영화는 줄거리나 대사 상당수를 그대로 가져왔고 할리우드식 감상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 냉정한 위트는 놓치고 만다. 위트와 유머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어서 그냥 원작의 스토리만 가져와서는 잡아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건 베토벤의 7번 교향곡을 메트로놈에 맞추어 연주하는 것과 같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살아나기 위해서는 연주자, 이 경우는 최종 각색자와 연출자의 재량이 마음껏 발휘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최종 각색자와 연출자가 서슬이 퍼런 원작자의 감시 아래에서 작업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결국 자기 해석을 넣은 여유가 줄어들고 영화는 어느 정도 김이 빠질 수밖에 없다. <해리 포터…>는 훌륭한 어린이영화지만 최상의 각색은 아니다. 영화가 날아가기 위해서는 소유자가 어느 정도 굴레를 풀어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J. K. 롤링에게 그런 여유를 바라는 건 지금으로서는 무리인 것 같다.
장기전의 개막, 누가 판타지의 절대강자가 될것인가?
<반지의 제왕>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미 우리는 원작의 내용을 다 알고 있고, 잭슨이 삼부작의 세 작품을 하나의 영화로 취급하며 촬영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잭슨이 1편의 수준만 유지한다면 <반지의 제왕> 삼부작은 흥미로운 수작으로 남을 것이다. 문제는 연결되는 스토리의 장편영화를 상업적으로 어떻게 다룰 것인가이다. 과연 열린 결말로 끝나는 엄청 긴 장편 액션영화에 관객이 제대로 호응해줄 것이가에 따라 영화사의 운명이 결정되니까. 하지만 이건 영화사 사람들이 머리를 굴려야 할 부분이지 우리 같은 관객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장기 예측이 쉽고 단기 예측이 어려운 <반지의 제왕>과는 달리 <해리 포터> 시리즈는 단기 예측이 쉽고 장기 예측이 어렵다. 1편이 대단한 흥행 성공을 거둘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아마 2, 3편까지도 마찬가지 호응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해리 포터> 시리즈는 아직도 미완성이다. 과연 롤링이 남은 세편도 같은 수준으로 유지시켜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배우들이 7년 동안 성장하면서 그만큼 성장을 보여줄지도 우리는 모른다. 관객이 거의 10년이 넘어가는 요란한 마케팅과 하이프를 견뎌낼 수 있을지도 우리는 모른다(이 점은 <반지의 제왕>이 유리하다. 유보되는 결말이 계속 우리를 기다리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걸 다 고려한다고 해도 <해리 포터> 시리즈의 앞길은 <반지의 제왕>보다 훨씬 험난하다. 대부분이 영화 자체보다는 영화사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3년 동안 우리는 이 두 작품이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반복하며 경쟁하는 것을 봐야 할 것이다. 그동안 두 영화를 비교하는 소리들도 끝도 없이 들어야 할 것이다. <반지의 제왕> 마케팅부에서는 이미 <해리 포터…>를 겨냥한 끝도 없는 홍보 문구를 뿌려대고 있다. 다음해에는 아마 <해리 포터…>가 비슷한 방법으로 반격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그런 비교에 말려들어야 할까? 지금까지 쓸데없이 긴 문장을 낭비해가며 두 작품들의 차이점을 비교해봤지만, 둘은 결코 이런 식으로 묶여 다루어져야 할 작품들이 아니다. 두 영화(또는 소설)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감상되고 비판받아야 할 자격이 있다. 영화사나 홍보사가 둘을 아무리 그럴싸하게 엮으려고 해도 그걸 무시하는 게 우리 같은 관객에게는 이득이 된다. 듀나 www.djuna.org▶ 듀나의 비교론 반지의 제왕 vs 해리 포터
▶ <반지의 제왕>의 지난날, <해리 포터...>의 앞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