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물도 거의 없어요…. 조금만 참아요. 그리고 추운 내색하지 말고요. 자 조금만 참읍시다.”
현장진행 스탭들이 추위에 오돌오돌 떠는 보조출연자들을 독려해본다. 지난 12월15일 새벽 부산역, 난데없는 입영열차와 살수차까지 등장해서 영화 <오버 더 레인보우>를 촬영하는 중이다. 오늘은 진수(이정재)가 절친한 대학동창인 상인(정찬)의 배웅을 받으며 입영열차에 타는 신으로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상인이 달리는 기차를 따라가 진수에게 우산을 던져주는 장면이다. 스테디캠 카메라로 기차와 함께 달려가며 촬영해야 하는, 상당히 난이도가 높은 장면이라 벌써 십여 차례나 NG가 났다. 살수차에서 뿌려진 물은 금세 고드름이 되어 기차 끝에 매달릴 정도로 추운 날씨라 배우도 스탭들도 하얀 입김을 불어가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겨우 우산 건네주는 신이 끝났나 싶더니 이번에는 카메라 방향을 바꾸어 기차에서 스테디캠으로 달리는 상인을 찍기 시작한다. 시종일관 계속 뛰어다녀야 하는 정찬은 만능 스포츠맨답게 여유있게 소화해낸다. 한편 기차 안에서 상인이 던진 우산을 받아들고 예의 멋진 웃음을 날리는 이정재는 비교적 여유있어 보인다. 진우가 군대가는 이 신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회상장면으로 깜짝놀랄 만한 반전의 묘미가 숨어 있다.
영화 <오버 더 레인보우>는 교통사고로 8년 동안이나 사랑했던 여자에 관한 기억을 잃어버린 진수가 친구인 연희(장진영)의 도움으로 기억의 조각을 맞추어가며 무지개 같은 그 사랑의 실체를 찾아가는 얘기다. 상인과의 실연의 아픔뿐인 과거를 지우고자 노력하던 연희는 진수의 연인을 찾아주기 위해 옛 기억을 더듬어가다 어느덧 새로운 사랑과 만나게 된다.
이 영화는 안진우 감독이 대학 때 만들었던 자신의 단편영화를 각색한 것. “사랑을 막 시작할 때의 그 순수한 느낌을 도심의 이미지 속에서 그려보는 거죠. 멜로영화지만 액션처럼 스피디하게 풀어갈 거예요”. 미스터리 형식으로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는 영화가 될 거라는 게 감독의 얘기다. 8년 동안이나 아무도 모르게 사랑한 여자가 있는 남자 진우를 연기하는 이정재는 “나 같으면 그렇게는 안 했을 것 같지만 내성적이고 속깊은 진우가 이해는 된다”며 오랜만에 상대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정통 멜로라 연기할 맛이 난다고.
총제작비 35억원 규모로 강제규필름에서 제작하는 <오버 더 레인보우>는 지난 11월 초부터 촬영에 들어가 예정된 분량의 20% 정도를 소화한 상태이다. 과연 진수가 사랑했던 여자는 누구인지 그리고 연희와의 사랑은 어떻게 되는 것이지, 그 결과는 내년 4월쯤이면 스크린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부산=사진·글 오계옥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