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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과 감독, 제작과정까지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의 모든 것
2001-12-21

피조물들아 경배하라! 전설이 살아온다

10억명이 읽었다는 20세기 최고의 판타지 소설을, 첨단 테크놀로지와 2억7천만달러라는 거대 자본의 주문이, 마침내 스크린에 마침내 불러들였다. <반지의 제왕:반지원정대>가 올 겨울 보고 싶은 영화 1순위에 꼽힌 건 당연지사. 전설과 비의로 가득찬 원작과 눈부신 영상으로 무장한 영화, 그리고 B급 호러의 대부에서 메이저의 선봉으로 깜짝 변신한 피터 잭슨, 여기에 명배우 이안 매켈런의 숨가쁜 제작일지까지, 상세히 공개한다. <반지의 제왕:반지원정대>는 1월4일 한국 관객을 찾아간다. 편집자

2001년 겨울,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과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판타지 애호가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중요한 체험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판타지’ 장르가 푸대접받아왔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두 작품의 우열을 가리기는 쉽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반지의 제왕>은 이미 검증이 끝난 ‘고전’이라는 점이다. 54년부터 출간된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C. 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U. K. 르귄의 <어스시> 시리즈와 함께 3대 판타지 소설로 꼽히는 동시에, 판타지 장르의 ‘세계’를 탄생시킨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1, 2차 세계대전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패러디’, ‘기독교 신화의 재창조’, ‘북구 유럽신화의 새로운 해석’ 등등의 절찬을 받은 <반지의 제왕>은 20세기를 마감하며 선정한 각종 통계에서는 영미문학 걸작 25위, 20세기 최고의 소설 4위, 100권의 책 4위 등을 차지했다. 인간과 엘프(요정), 드워프(난쟁이), 호비트 등의 다양한 종족이 살고 있는 중간계(Middle Earth)라는 가상의 세계를 창조하고 다양한 종족들의 언어와 풍습, 역사까지 만들어낸 <반지의 제왕>은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10억명 이상이 읽었을 것으로 추산되는 거대한 작품이다. 구미에는 중간계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사람도 있고, 중간계 백과서전도 나와 있다(하긴 <해리 포터>도 호그와트에서 배우는 교과서가 따로 단행본으로 나왔다). 딱히 판타지 애호가가 아니라도 영미권에 살고 있었다면 누구나 한번쯤은 접했을 만한, 시대를 초월한 고전인 것이다.

반면 <해리 포터> 시리즈는 최근 몇년간 전세계의 출판계를 뒤흔들며 1억부를 돌파한 판타지 소설의 신성이다. 이런 점에서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지금의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베스트셀러 <해리 포터>는 아직 완결되지도 않았고, 문학적인 평가도 합의된 것이 아니다. <해리 포터>는 분명한 판타지의 수작이지만, 아직은 그 이상이 아니다.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도 아니고, 인간사회 이면에 존재하는 마법의 세계가 주무대다. 아직 팔팔하게 움직이고 있는 소설이기에 <해리 포터>는 영화화하는 과정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우선 타깃이 분명하다. <해리 포터>를 읽은 10대 독자들은 여전히 후속편을 기다리고 있고, 각색된 영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리즈로 계속 나오고 있지만, 각부마다 하나의 큰 사건을 중심으로 기승전결이 확실하기 때문에 영화화하기는 수월하다.

<해리 포터...>의 할아버지격인 판타지의 고전

하지만 <반지의 제왕>은 다르다. <반지의 제왕>은 50여년간 수많은 독자를 사로잡았지만, 연령층이 너무 다양하다. 초판을 읽은 독자들은 이미 노인이 되었고, 지금 막 <반지의 제왕>을 읽으려는 10대도 있다. 너무나 거대한 원작도 부담스럽다. 소설 자체가 워낙 방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고, 소설에 등장하는 종족과 풍경을 스크린에서 표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것을 새롭게 창조해야만 한다. 과거 실사가 할 수 없는 영역을 담당해왔던 애니메이션으로 <반지의 제왕>을 각색한 적이 있었다. 성인용 애니메이션 <고양이 프리츠>를 만들었던 랠프 박시는 78년 애니메이션판 <반지의 제왕>을 만들었다. 배우의 움직임을 촬영하고 이를 동화로 옮겨내는 ‘로토스코핑’ 기법을 활용한 애니메이션 <반지의 제왕>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작품이었다. 하지만 실사의 영역으로 <반지의 제왕>이 창조되기까지는, 20년의 세월이 더 필요했다. 빠르게 발전한 특수효과 기술 덕에 <반지의 제왕>의 모든 장면을 ‘그려내는 것’이 가능해졌을 때까지.

그러나 난관은 그것뿐이 아니다. 대하소설처럼 장구하게 이어지는 원작의 구성은 여전히 부담이다. <해리 포터>도 그랬지만, 원작을 심하게 각색하거나 변형시켰을 때는 톨킨 마니아들의 강력한 반발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가급적 원작의 인물과 구성을 고스란히 가져오면서, 긴박하고 역동적이고 영화적인 구성으로 다듬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원작이 없었던 <스타워즈>와 달리, 문학적 향취가 강한 <반지의 제왕>의 문체를 과연 영상으로 재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심도 강하게 들었다. 번역판으로는 감지하기 힘들지만, 언어학자인 톨킨의 원문은 시적이고 종족마다 고유한 어법이 있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반지의 제왕>은 어떤 영화사와 감독도 섣불리 도전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대작이었다.

뉴라인이 제작한 <반지의 제왕>은 몇 가지 해결책을 가지고 시작했다. 2억7천만달러의 엄청난 제작비를 감당하기 위해서 미라맥스의 밥 와인스타인과 손을 잡았고, 영화 전편을 수놓을 특수효과를 위해서는 워너의 디지털 스튜디오 부사장을 지냈던 헬렌 M. 소머즈를 끌어들였다. 피터 잭슨을 감독으로 영입한 뒤, 수십명의 문헌학자들과 시나리오 작가들을 합류시켰다. 우선 뉴라인과 피터 잭슨이 합의한 것은, <반지의 제왕>을 길어야 3시간인 한편의 영화에 축약시키기보다는 최대한 원작을 유지하며 3부작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스타워즈>나 <해리 포터>처럼 한편을 만들고, 다음편 제작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3부작을 모두 찍고 1년마다 개봉하기로 했다. 제작비도 줄이고, 상황에 따라 편집을 바꿀 수도 있도록. 올 겨울에 1편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가 개봉되면 내년 겨울에는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이, 2003년 겨울에는 <반지의 제왕: 제왕의 부활>이 찾아오게 된다.가상의 세상, 현실보다 리얼한 묘사

<반지의 제왕>의 내용은, 한줄로 줄일 수도 있다. 절대악의 힘을 가진 반지를 부수기 위한 모험. 하지만 이 모험의 역사는 그야말로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장대하다. 시작은 인간과 요정, 난쟁이에게 각각 주어진 반지와 그 모든 것을 지배하는 절대반지의 탄생이다. 인간과 엘프의 연합군은 사우론이 이끄는 암흑의 군대와 싸우고 패전 직전에 사우론의 손에서 반지를 빼내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영웅 이실두르는 탐욕에 눈이 멀어 반지를 부숴버리기를 거부한다. 그가 살해당한 뒤 반지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뒤 반지가 골룸에게 넘어가고, 다시 호비트족인 빌보의 손으로, 마침내 조카 프로도에게 임무가 주어질 때까지 중간계는 평정을 유지한다. 그러나 과거의 힘을 되찾은 사우론은 모르도르의 검은 탑에 은거하면서 조금씩 세력을 넓혀간다. 마침내 사우론은 절대반지를 찾기 위해, 검은 기사들을 보내 프로도를 쫓게 한다. 프로도는 친구인 샘과 함께 요정의 땅인 리벤델로 간다. 하지만 요정들도 사우론의 힘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처음 반지가 만들어진 곳, 운명의 산의 불구덩이에 반지를 던져버리는 것.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호비트인 프로도와 샘, 피핀과 메리, 마법사인 갠달프, 이실두르의 후손인 기사 아라곤, 곤도르의 전사인 보르미르, 요정 레골라스, 난쟁이 김리가 반지 원정대를 만들어 떠나간다.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는 이 반지원정대가 해체되기까지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이처럼 마법사, 전사, 요정, 난쟁이, 도둑 등 다양한 재능과 특기를 가진 인물들이 한팀을 이루어 모험을 떠나는 것은 판타지물에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설정이다. 함께 떠나는 여행을 통해 각 구성원들은 자신의 능력을 높이고, 정신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런 설정은 <던전 앤 드래곤>이라는 보드게임으로 만들어지고, 다시 컴퓨터게임의 <드래곤 퀘스트>나 <디아블로> 같은 롤플레잉게임으로 발전된 것이다. <반지의 제왕>은 판타지의 전형적인 설정을 만들어낸 것과 함께, 중간계라는 가상의 공간을 창조하여 완벽한 세계관을 구축한다. 선과 악이 대결하고, 다양한 종족들이 부대끼면서 움직여나가는 가상의 세계. 피터 잭슨은 “<반지의 제왕>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영화의 진정한 악당이 작은 금반지라는 사실이다. 불을 뿜는 공룡도 아니고, 로봇도 아니며 상어도 아니다. 이것은 매우 작은 것이며 악은 심리적인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영화로 옮기기 가장 힘든 부분은 바로 이런 심리적인 악이다.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삶에서 흑백으로 단순하게 가려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비록 우리가 선과 악을 매우 명확한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고 하더라도, 톨킨이 쓴 것처럼 우리는 가능한 한 원작의 복잡함을 포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한다. <반지의 제왕>은 단순한 권선징악의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보다도 리얼하고, 인간의 모든 상상력을 총동원한 듯한 ‘다른 세계’의 형상은 볼수록 감탄을 자아낸다. 프로도 역을 맡은 엘리야 우드의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마치 난 역사 속 인물을 연기하는 것 같았다”는 고백처럼, <반지의 제왕>은 판타지뿐 아니라 인류의 모든 문학과 예술이 다루어온 인간 영혼의 정수를 담고 있는 것이다. 영화도 그런 원작의 성취를 제대로 재현하고 있다. <뉴스위크>는 “<반지의 제왕>은 진한 감동과 진정한 공포를 안겨주는 동시에 마법사나 사악함 등을 다룬 다른 영화들이 놓치고 있었던 악(惡)의 본질을 잘 살리고 있다”고 호평을 했다.<반지...> 3부작, 새로운 <스타워즈>가 될 것인가?

1997년부터 준비에 들어가 2년6개월 동안 촬영을 마친 <반지의 제왕>의 제작과정은 이야기 못지않게 판타스틱하다. 가상의 공간을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다. 실제 세트와 CG. 피터 잭슨은 뉴질랜드의 과학기술효과회사인 웨타와 함께, 전 세계에서 모은 120명의 기술자들을 6개 분야로 나누어 작업에 들어갔다. 우선 실물 크기의 야외세트와 미니어처를 제작했다. 호비트의 마을 호비튼, 요정들의 요새 리벤델, 난쟁이들의 지하도시 모리아 등을 세트로 만들었다. 마법사 갠달프 역을 맡은 이안 매켈런이 “호비튼은 촬영세트가 아니다. 그곳은 진짜 마을이다. 풀과 꽃들이 자라고, 새들이 지저귀며, 곤충들이… 인공적인 것이나 가식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곳에 들어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스릴이 넘친다”고 말할 정도로 <반지의 제왕>의 야외세트는 사실적이면서 웅장하다. 지금 야외세트는 뉴질랜드의 관광단지로 개발되고 있다. 그 실제의 세트에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낸 거대한 탑이나 지하동굴 등을 추가하여 원작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만들어냈다. 사우론에게 굴복한 마법사 사루만이 악의 군대를 만들어내는 이센가드의 사악한 풍경을 공중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며 비출 때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환상적인 세트를 만드는 것 이상으로 힘들었던 것은 호비트, 난쟁이(드워프) 등 저마다 신체비례가 다른 종족들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호비트의 신장은 1m 정도다. 작은 호비트가 인간이나 요정과 함께 옆에 있는 장면을 자연스럽게 담아내기 위해서 호비트의 신체에 맞는 비례로 만들어진 옷을 배우들에게 입히고, 실제 난쟁이를 대역으로 쓰기도 하는 등의 방법을 썼다. 그 결과 인간, 요정, 호비트와 난쟁이가 함께 등장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전투를 벌이거나 해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뉴질랜드에서 끝마친 특수효과도 할리우드에 비교해 크게 흠잡을 곳이 없다. 격류로 만들어진 백기사가 흑기사를 덮치는 장면이나 인간, 엘프 연합군과 사우론의 군대가 혈투를 벌이는 전투장면 등 인상적인 장면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원작의 팬들을 위해 거의 내용을 바꾸지 않은 것처럼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도 거의 바뀌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원작에 등장했던 톰 봄바딜이 등장하지 않고, 아라곤과 사랑을 나누는 아웬의 비중이 약간 늘어났다는 것 정도. 다양한 어법을 구사하는 인물들의 말투가 단순해지고, 유머가 늘었으며 사루만의 캐릭터도 일면적이라는 비판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반지의 제왕>은 원작의 숭고한 주제와 장엄한 분위기, 수려한 풍경 등을 잘 살리고 있다는 평이다. <가디안>은 ‘<와호장룡>의 앵글로 색슨 사촌’을 보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하드 고어로 정평이 나 있는 피터 잭슨은 고전적이고, 우아하며 민중적 해학이 공존하는 <반지의 제왕>을 어떤 서사극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수작으로 연출했다. 이제 <반지의 제왕>에 남은 것은, <스타워즈>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는가, 이다. 소설 <반지의 제왕>이 새로운 장르 판타지의 여명을 열었듯이 영화 <반지의 제왕>은 새로운 세기의 영상으로 남을 수 있을까? 그 답은 3부작이 모두 공개된 뒤에 가능할 것이다. 최악의 경우라도 <반지의 제왕> 3부작이 반드시 DVD로 구입해야 할 작품인 것만은 확실하다. 김봉석/ 영화평론가 [email protected]원작자 J. R. R. 톨킨태초에 톨킨의 말씀이 있었다

<반지의 제왕>의 원작자 존 로널드 로웰 톨킨(John Ronald Reuel Tolkien, 1892∼1973)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블로엠폰틴에서 태어나 네살 때 영국으로 이주했다. 톨킨은 버밍햄(버밍엄???)의 킹 에드워드 학교와 옥스퍼드대학 영문과를 거치면서 요정들의 언어를 만들기도 하는 등 언어에 대한 천재적인 재능을 드러낸다. 대학 졸업 뒤 뉴잉글리시 딕셔너리사에 들어간 톨킨은 나중에 <실마릴리온>(Silmarillion)으로 이름붙여지는 신화연대기 ‘잃어버린 이야기들’(The book of lost tales)’을 쓰기 시작한다.

톨킨은 1925년 옥스퍼드대학 문헌학 교수로 부임했고, 유럽의 신화와 언어를 연구한다. 그러던 중 신화학적인 상상력을 가정적인 주제와 연결시켜보라는 가족들의 권유로 아이들을 위한 동화 <호비트>(The hobbit)를 쓰게 된다. <호비트>는 골룸에게서 절대반지를 뺏어온 빌보 배긴스의 모험을 그린 동화다. 그뒤 12년간 판타지 문학의 시원이 되는 <반지의 제왕>의 집필을 하게 된다. ‘기독교인이 성서를 읽지 않는 것은 용서될 수 있지만, 판타지 소설의 독자들이 <반지의 제왕>을 읽지 않는 것은 용서될 수 없는 일’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절찬을 받은 작품이다. 1973년 세상을 떠난 뒤 중간계의 신화와 역사를 담은 <실마릴리온>은 아들의 손을 통해 완성된다.

“톨킨은 언어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언어로서 세계를 창조했다. 굳이 기표가 기의에 앞선다는 소쉬르의 이론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언어가 문화와 불가분의 관계임은 분명하다. 톨킨의 가상세계는 50년 동안 무수한 애호가들이 매달려 연구하게끔 만들 정도로 완벽하다. 그 이유는 그가 언어를 만들고 그 언어로써 세계를 창조했기 때문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던 것이다.”(<드래곤 라자>의 작가 이영도) 이 말처럼 톨킨은 말로써 모든 것을 만들어낸 프로도와 갠달프가 살아가는 중간계의 창조자다. 톨킨이 창조한 판타지의 세계는, 100% 현실인 동시에 100% 거짓인, 어디에나 존재하며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시공간이다. 판타지의 세계는 우리 세계와 평행으로, 다른 걸음걸이로 나아가는, 또 하나의 현실인 것이다.감독 피터 잭슨괴짜 감독, 웅장한 서사극 빚다

당연히 피터 잭슨은 <반지의 제왕>의 팬이다. 만약 팬이 아니었더라도, 반드시 팬이 되어야만 했을 것이다. <반지의 제왕>을 이해하고 또 영화로 옮겨내려 했다면.

뉴질랜드 태생의 피터 잭슨이 유명해진 것은 ‘악취미’ 영화 덕분이다. 21살에 찍은 데뷔작의 제목이 바로 ‘Bad Taste’. <고무인간의 최후>라는 제목으로 비디오 출시된 영화다. 이브닝포스트에서 기자로 일하던 피터 잭슨은 주말마다 친구들을 소집해가며 4년 동안 영화를 찍었다. 1988년, 애초의 러닝타임은 15분이었지만 90분으로 늘어난 <고무인간의 최후>가 완성된다. 감독, 각본, 촬영, 편집, 주연, 특수효과와 분장까지 담당한 피터 잭슨의 데뷔작은 칸에서 상영되고 각종 판타스틱영화제에서 공개되어 호평을 얻었다. 기상천외한 인형영화 <밋 더 피블스>를 만든 뒤, 피터 잭슨은 대표작이 된 <데드 얼라이브>를 감독한다. <사이코>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 <이블 데드>와 <좀비오>를 마구 뒤섞은 <데드 얼라이브>는 기묘한 유머 감각과 도저한 폭력성으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피터 잭슨이 생각하는 자신의 영화는 ‘코미디’.

사춘기의 여자아이들이 공모하여 부모를 죽인 실화를 바탕으로 한 <헤븐리 크리처스>는 극찬을 받으며,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까지 오른다. 96년 뉴질랜드 최초의 영화감독 이야기를 담은 가짜 다큐멘터리 <포가튼 실버>를 만든 뒤, 피터 잭슨은 할리우드로 향한다. 로버트 저메키스와 손잡고 만든 영화는 <프라이트너>. 그러나 <프라이트너>는 흥행과 비평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피터 잭슨은 어린 시절 열광했던 <킹콩>의 리메이크를 시도한다. 지지부진하던 <킹콩>의 제작이 엎어지자, 피터 잭슨은 <반지의 제왕> 3부작을 감독하게 된다. 하드 고어와 엽기적인 코미디에 능했던 피터 잭슨이 과연 웅장한 서사극을 소화할 수 있을까? 이미 답은 나왔다. 영국의 영화잡지 <엠파이어>는 <반지의 제왕>이 “장르영화이고, 완벽하지도 않다. 그러나 완벽한 장르영화다. 게다가 <매트릭스> 이후 다시 한번 우리가 왜 극장에 가는지를 일깨워주는 영화다.”라고 찬사를 늘어놓았다. 그건 분명 피터 잭슨의 힘이다.▶ 원작과 감독, 제작과정까지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의 모든 것

▶ 마법사 간달프 역 이안 매켈런의 제작 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