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제는 강한섭씨 글에 대한 속좁은 필자의 꼬투리 잡기다. 먼저, 딴 이야기 잠깐. 영화평론가 박평식씨가 단단히 화가 났다고 한다. 며칠 전 청룡영화상 부문의 하나인 정영일 영화평론상 수상자로 결정됐으니 상 받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주최가 스포츠조선이지만 사실상 조선일보에서 주는 상이라서 받지 않겠다고 했더니, 주최쪽에서는 박평식씨는 후보 중의 한 사람이었다고 둘러대며 오히려 자신을 궁지에 몰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박평식씨는 수년 전 한 에로영화에 대한 평을 쓰면서 영화 만든 이들을 향해 일갈했다가 봉변까지 당했던 적이 있지만, 반골적인 우직한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사람이다. 박평식씨는 수상 거부와 관련한 이번 소동에 대해 “심사위원들의 양식을 믿는 나는, 그들이 진실을 밝혀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 심사위원 중의 한 사람이 공교롭게도 강한섭씨다.
강한섭씨는, 그 액수가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한국에서 최고의 원고료를 받는다고 떠벌리면서 한 월간지에 칼럼을 쓰고 있다. 이 달에 그는 자신이 주장한 한국영화 거품론에 대해 제기했던 반론에 대한 재반론 형식의 글을 썼다. 한국영화의 거품론을 ‘선정적으로 부풀린’ 강한섭씨의 주장이 나오자, 몇몇이 ‘대체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강한섭씨의 문제제기에 동의(또는 수긍)하나, 거품 발생의 원인과 크기를 좀 다르게 본다는 정도의 ‘정중한’ 반론을 제기했다. 그런데 강한섭씨는 신경질적인 변명에 급급한 글을 썼다. 의아할 따름이다. 강한섭씨야 격이 안 맞다고 생각했겠지만, 어쨌든 외람스럽게 나도 미약한 반론을 제기했던 당사자이다. 그 반론을 쓰면서 기회있으면, 점잖게 ‘선생님, 그건 이렇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라고 묻고 토론도 해보리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상대를 ‘적’이라고 몰고 시종 비아냥과 조소로 일관하는 재반론을 읽고는, 그 글과 격에 맞게 응전해야겠다는 전의가 생겼다.
날카로운 분석과 심오한 논리를 담고 있지도 않은 강한섭씨의 재반론에 대해 내용적으로 공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내가 겨냥된 부분에 대해서만 응수하겠다. 강한섭씨의 주장에 따르면 나도 ‘통계를 잘못 인용했다고 열을 내고’ 있는 ‘왕구라들’ 중의 한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결코 열을 내지 않았다. 심지어 ‘실수로 보인다’고까지 전제하면서, 인용한 통계가 틀리면 그 통계를 근거로 한 주장이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고 지적한 것뿐이다. 양식있는 대학교수에 자칭 ‘영화철학자’라면 명백하게 잘못 인용한 통계에 대해서는 실수라고 인정하고 다른 논거를 보강하면 되는 것 아닌가. 이에 대한 변명 또한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흥행수익은 부풀리게 마련이고, 극장의 온갖 할인 혜택 때문에 통계는 믿을 게 못 된다는 것이다. 서울시극장협회 등에서 취합한 자료를 토대로 만든 <한국영화연감>의 통계를 그렇게 배척하고, 애초 그 따위 통계들은 믿을 게 못 된다고 ‘씹어버리면서’ 정작 자신의 논거가 되는 각종 수치와 통계는 어떤 공신력이 있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그리고 ‘자동차산업도, 컴퓨터산업도 단 1%의 이익을 남기지 못하고, 금융산업도 파산의 역사’라면서 ‘한국영화산업도 어쨌든 적자’라는 주장도 합당한 비유는 아니다. 누구처럼 유학도 못 갔다 왔고 가방끈이 짧아서 피터 드러커가 우리 시대 최고 경영학자인지 NBA 농구선수인지 모르지만, 자동차산업도 컴퓨터산업도 수치로 이익을 남기지 못했더라도,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벌어먹고 살고, 다른 부문의 이익 창출에 연계되고… 뭐 그렇게 경제가 굴러가는 것 아닌가.
나름대로 튀게 쓰느라고 좀은 과장해서 쓴 글인데, 그렇게 정색하고 난리 치느냐고 둘러댈까봐 겁난다. 조종국/ 조우필름 대표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