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자크 라캉에서 물어보고 싶었으나 감히 데이비드 린치에게 물어보지 못한 것.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에서 흔히 부모들은 앉아서 TV를 보거나 음식을 차리는 설정으로 되어 있다. 무기력한 생물학적 부모들이 아이들을 방치하는 사이 아이들은 흑발의 요부에게 이끌리고 정원에서 잘린 귀를 줍는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보면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는 오이디푸스 궤적에 대한 완벽한 대리경험을 시켜준다. 흔히 그의 영화에서 무자비한 악당들은 주인공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아름다운 여인을 강제로 소유한 일종의 대리부이기도 하다. 그래서 <블루 벨벳>의 악당 사이코는 끊임없이 ‘이제 어둠이야’라는 말을 되뇌인다. 그곳에서 제프리가 벽장 안에 갇혀 무기력하게 도로시의 정사를 훔쳐보는 대목은 마치 부모의 정사장면을 처음 보는 어떤 원경험의 이미지를 선사한다. <로스트 하이웨이>의 정비공 피트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와 금발의 요부 앨리스는 사막 한가운데의 집에서 성적 결합을 시도하는데 남는 것은 활활 타오르다 재가 된 집이다. 그것은 피트의 오이디푸스적 무의식이 뿜어내는 엄청난 에너지를 시각화할 뿐 아니라 그 에너지가 다 소진되고 남은 뒤에는 차디찬 무덤 같은 폐허화된 영혼을 상징하기도 한다. 결국 린치의 영화에서 자주 발견되는 가부장제에 대한 조롱이나 사지절단된 육체는 바로 린치적 얼룩이 뒤범벅된 실재계의 귀환이다.
또한 기호학적으로 보자면 린치는 우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느껴져서 아무 거부감도 없이 받아들이는 현실의 법칙을 낯선 방식으로 되돌아보게 만든다. 예를 들면 ‘헐리우드-LA’라는 번쩍이는 지상낙원으로서의 기호들은 갑자기 그 의미를 상실하고 비틀거리고, 선량한 노부부 같던 이웃은 갑자기 난쟁이가 되어 여주인공을 쫓아다니는가 하면, 200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할리우드에 갑자기 리타 헤이워스 같은 60년대적인 영화적 배경이 툭툭 끼어드는 식이다. 린치의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데자뷔는 바로 기호학적으로 상징계의 질서가 표지하는 모든 것을 뒤흔드는 린치적 반란인 셈이다.▶ <멀홀랜드 드라이브>, 악몽의 린치 타운
▶ 데이비드 린치 영화의 정신분석학적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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